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몽마르트의 모델에서 화가로. 전통적인 남성적 시선에 맞서다, 수잔 발라동 | ARTLECTURE

몽마르트의 모델에서 화가로. 전통적인 남성적 시선에 맞서다, 수잔 발라동

-인상주의 시대 가려진 여성 화가들 3-

/Art & History/
by 김가희
몽마르트의 모델에서 화가로. 전통적인 남성적 시선에 맞서다, 수잔 발라동
-인상주의 시대 가려진 여성 화가들 3-
VIEW 1030

HIGHLIGHT


19세기 인상주의 시대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몽마르트에서 지내며 어깨 넘어 그림을 배운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델을 서며 어깨너머로 습득한 실력으로 스스로 화가가 되었던 수잔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남성주의적 시각에 맞서 여성과 사회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몽마르트의 사생아


1885년경 수잔 발라동

 

수잔 발라동은 1865년 프랑스 서부 지역의 베씬느-쉬르-갸흐텅프(Bessines-sur-Gartempe)에서 태어났다. 이후 파리로 가게 되면서 세탁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몽마르트에서 지낸다. 수잔은 어린 나이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서커스의 무용단원으로도 일했지만,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화가들 작품에 모델을 서는 일을 시작한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와 물랭루즈에서 그림을 그렸던 앙리 드 툴르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의 모델을 섰는데, 앙리는 원래 이름이 마리-클레멍틴(Marie-Clémentine)이었던 그녀에게 수잔(Suzanne)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예술가들의 뮤즈


<르누아르, 부지발에서의 춤, 1883>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숙취, 1888>

 

 

사실 수잔 발라동은 수 많은 예술가들과 만나며 이름이 알려졌다. 1893년에는 음악가 에릭 사티(Éric Alfred Leslie Satie, 1866-1925)를 만났다. 에릭은 수잔과 만나며 나는 <너를 원해(Je tu veux)>를 작곡한다. 에릭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을 만큼 사랑했지만 결국 수잔을 그를 떠나게 되었고, 에릭은 1925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른 여성을 만나지 않았다.

수잔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모델을 서면서 그의 연인이 된다. <부지발에서의 춤, 1883>처럼 수잔이 그를 위해 모델을 선 그림을 보면 행복의 화가라는 별명답게 행복한 여인의 모습을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와 색감으로 그려 넣은걸 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야외 무도회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을 추고 있다. 그림 속 그녀는 한없이 밝고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사실 수잔은 절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가난했기 때문에 안 해본 일이 없었으며, 곡예사로 일을 했지만, 부상을 당하며 그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화가들의 모델을 서며 수많은 남자와 만남으로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낳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로 이후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 앙리 드 툴르즈-로트렉의 <숙취, 1888> 작품 속 수잔은 테이블에 고뇌가 가득한 표정으로 카페로 보이는 장소에서 값싼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위에서 본 오귀스트의 그림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앙리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신체적 장애로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던 인물로 주로 몽마르트의 카바레인 물랭 루즈에서 그림을 그렸다. 수잔과 같이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화가로 이런 공통점이 있는 둘은 금방 깊은 사이가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런 오귀스트보다 앙리의 시선에 담긴 수잔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보이며 와닿는다. 이렇게 수잔은 여러 화가의 모델을 섰지만, 그림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그녀는 모델 포즈를 서면서 동시에 그들의 어깨를 너머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후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를 알게 되며 그의 도움을 받아 공식적인 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수잔의 예술세계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83> /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98>



188318살이었던 수잔은 모리스를 낳았다. 아이 아빠는 누군지 몰랐다. 같은 해 그녀는 처음 파스텔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자화상, 1883>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나중에 수잔은 모리스에게 위트릴로라는 성을 붙여주게 되는데, 시인 미겔 위트릴로의 성을 딴 것으로 이 시기 수잔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1892년이 되어서 수잔은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변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정물화부터 해서 풍경화, 초상화를 그린다. 기법 면에서는 인상주의보다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상징주의에 영향을 더 받았다. 캔버스 안에서 뚜렷한 색채와 윤곽이 살아나고 있으며, 수잔은 빛에 의한 인상 표현보다는 인물의 심리 상태에 더 집중했다. 이런 점은 그녀가 남긴 자화상에서 잘 드러난다. 수잔의 자화상 속 얼굴은 창백하며 눈빛이 매섭다.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외롭고 사연이 많은 여인의 모습이다. 수잔 발라동은 동시대의 인상주의 여성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처럼 자주 여성을 주제로 담았지만, 부르주아 계층에 속했던 그녀들과는 여성을 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소외된 계층에 속해 자랐던 수잔은 자신처럼 노동자 여성의 삶에 주목했다. 그렇게 자기 주변의 모습을 담으면서 인상주의 남성 화가들 그리고 부르주아 여성 화가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한층 자유로운 붓질이 가능했다.

 


수잔 발라동, 목욕하는 여인들, 1923 / 수잔 발라동, 푸른방, 1923

 


수잔은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던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와는 다르게 자기 모습을 자주 남겼다. 특히 이 시기 여성이 누드화를 남겼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성 누드의 작품은 전통적인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지만, 여성이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누드화에서는 남성의 시선 속의 여성 모습이 담기며 자연스레 그들의 욕망 또한 투영되었는데, 19세기 인상주의 남성 화가들 작품들 또한 그랬다. 19세기에 들어서 그림 속 여성들의 신분은 바뀌었지만, 남성들의 본능적 욕망은 계속 투영되었던 것이다. 반면 수잔 그림 속 여인들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푸른 방, 1923>을 보면, 통통한 몸매에 편안한 차림의 여성이 집 안 침실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이는 수잔의 자화상으로 그녀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져 있다. 옷차림도 지금 우리가 즐겨 입는 편안한 파자마 같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도 실내라는 주제를 주로 담았는데, 이는 19세기 프랑스 여성들의 제한적인 활동 영역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수잔 그림 속에 여성은 실내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가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그냥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이다. 누워있는 여성의 누드는 전통적으로 자주 다루어져 왔던 주제였다. 19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자주 다뤄졌는데 대표적으로는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비너스의 탄생, 1863>을 전통적인 규칙에 따라 충실히 그렸으며, 인상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수잔의 연인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누워있는 여성의 누드를 즐겨 담았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즉 순간의 인상을 담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반영되었던 점은 오귀스트 그림 속에서 잘 드러난다. 윤기 나는 머리카락, 우윳빛 피부의 풍만한 몸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답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여성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수잔 그림 속 여성들은 달랐다. 사회에서 규정짓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이나 미모가 빼어난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평범한 인간적인 여성의 모습처럼 보인다.

 


수잔 발리동, 아담과 이브, 1909

 


<아담과 이브, 1909>처럼 전통적인 주제인 성경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사과를 잡고 있는 여성이 바로 이브이고 옆에서 그런 이브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남성이 바로 아담이다. 성격 속에서 등장하는 남녀를 그렸지만, 사실 수잔과 그녀의 애인을 모델로 그린 것이다. 이브의 표정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반면에 아담은 안색이 창백해 보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사과를 먹게 되었고, 아담에게도 이를 권하게 되며 이 둘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인간의 고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악의 근원이 된 이브는 서양 미술에서 단골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 그림 속 이브는 어떤 죄의식도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당시 여성 화가들은 남성의 누드를 그리지 않았지만, 수잔은 성경을 소재로 남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누드로 담았다. 그림 원작의 이브는 완전한 누드로 그려졌지만, 살롱에서의 전시를 위해서 이후 아담에게 나뭇잎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런 검열은 당시 여성 예술가가 남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보수적인 예술계 분위기를 보여준다.

 

 

수잔의 마지막

 

1896년 부유한 은행가 폴 무시스(Paul Mousis)와 결혼 한 수잔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작업 활동에 몰두하게 되지만, 이 결혼 생활도 그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며 끝난다. 그 인물이 바로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며 만난 아들의 친구 앙드레 우터(André Utter)라는 화가로 그는 수잔에게 예술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1914년 결혼으로도 이어졌다. 이 관계는 무려 30년간 지속되었지만 결국 이 관계도 끝나면서 수잔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수잔은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되며 해외에서 여러 전시에 참여했으며, 1932년에는 아주 중요한 회고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1933년에는 현대 여성 아티스트 그룹인 FAM에 합류하며 사망할 때까지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다행히도 수잔은 살아 생전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인정을 받았는데, 하지만 사망 후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을 빠르게 잊혀졌다. 19세기 여성 예술가에게 더욱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예술계에서 관습을 깨는 작품들을 선보였던 수잔 발라동.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남성 화가들의 욕망에 따라 포즈를 취하는 모델을 넘어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예술가가 되었으며, 정면을 응시하는 자신의 자화상 속 모습처럼 예술가로서 직시해야만 하는 현실 속의 여성의 삶을 그려내며 자신을 둘러싸는 온갖 제약들과 투쟁하는 예술가였다.

 

수잔 발라동 연대기

- 1865년 베씬느-쉬르-갸흐텅프(Bessines-sur-Gartempe)에서 출생

(본명 : Marie-Clémentine Valadon)

- 1870년경 어머니와 함께 파리 몽마르트에 정착

- 1880년 예술가들의 모델 일을 시작

- 1883년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출산

- 1895년 은행가 폴 무시스(Paul Mousis)와 결혼

- 1914년 화가 앙드레 우터(André Utter)와 결혼. 1934년 이혼

- 1911년 첫 번째 개인전 개최 이후 활발하게 전시에 참여

- 1938년 파리에서 사망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김가희 ㅣ 예술로 만드는 일들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