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내 안의 어둑시니 | ARTLECTURE

내 안의 어둑시니

-에피메테우스의 스물두 번째 질문 (김명진, 생생화화生生化化2017 <이면 탐구자>展, 2017.12.15.~2018.3.25, 경기도미술관 김영훈, 한국현대판화 60년 <판화하다>展, 2018.7.4.~9.9, 경기도미술관)-

/Art & History/
by youwallsang
Tag : #어둠, #이면, #탐구, #판화
내 안의 어둑시니
-에피메테우스의 스물두 번째 질문 (김명진, 생생화화生生化化2017 <이면 탐구자>展, 2017.12.15.~2018.3.25, 경기도미술관 김영훈, 한국현대판화 60년 <판화하다>展, 2018.7.4.~9.9, 경기도미술관)-
VIEW 541

HIGHLIGHT


어둑시니 : 어덕서니, 아독시니, 아둑시니.. 표준국어 사전에 “어둑서니”로 등재
‘어둠’과 ‘시니’-신위神位-가 합쳐진 말.
밤에 보이는 헛것을 일컫는 말로 계속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커지는 어둠에 대한
공포를 일컬음. 장님을 이르는 말로도 쓰임.

제 몸이라고, 살살 달래기는커녕 실컷 부려먹기만 했으니 사달이 날밖에. 별을 헤아리듯 수술대 불빛을 헤아리다 보니 세상이 잠시, 불을 껐다. 깜깜-.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이 불을 켜니, 파란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듯 맑고 청량한 세상이, 뻔뻔하다. 한창 납량 특집이 시작되는 여름의 한가운데(하필이면 지금! !) 나는 근거리 활자인간에서 원거리 TV 시청 최적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이건 기회일까, 재앙일까. (습관에 따른) 문자 발신만 가능하고 수신은 불가능한, 반쪽이 까막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덩치가 커지는 어둠 속으로 활자가 사라진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까막눈이 어둠에 지지 않으려면, 어둠에 갇힌 빛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빛을 찾고자 어둠에 고갤 돌린 두 작가에게 길을 묻는다.

 

잃어버린 바늘을 찾으려 줄곧 등잔 밑만 뒤질 수는 없다. 등잔 밑이 아무리 밝아도 여기 아닌 곳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어떻게 여기 매번 찾기를 바랄 수 있으랴. 사물은 사라진 곳에 그대로 머문다. 사물은 제자리에 있건만 사람의 흔들리는 기억은 사물에 대해 잊기도 하고, 그 사물을 잃기도 한다. 기억이 잊거나 잃으면 방법이 없다.

 


김명진, <소녀상 Girl Statue>, 캔버스에 한지, , 안료, 콜라쥬, 116X97, 2017

 


모이고 흩어지길 되풀이하는 뿌연 형상은 현실 위로 덧붙여진 투명스티커처럼 끈적거린다. 검은 바탕 위로 연기 같고 입김 같은 흰빛이 자국처럼 머문다. 김 서린 거울 위로 드러난 희뿌연 얼굴은 그 속까지 까맣게 물든 눈으로 바라보는 자를 바라본다.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얼굴, 알 것도 같지만 반드시 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얼굴이 검은 심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창백하고 푸석거리는 질감을 가진, 얇게 쪼개진 유리 파편처럼 까슬 거리는 얼굴이다. 시선만큼 따가운 감각, 시선의 방향은 또렷하다. 나를 바라본다. 나를 알고 있다고, 너도 그렇지 않냐고,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라고. 희미하고 가느다란 입꼬리를 위로 들어 올린다.

 


김명진, <소년에게 To a Boy>, 캔버스에 한지, , 안료, 콜라쥬, 130X194. 2016~17

 


희미하게 튕긴 선이 수평으로 사라진다. 선 끝이 어디에 가닿았는지 알 수 없기에, 잘려나간 그곳에는 아마도 내가 있을 것이다. 파편처럼 부서진 기억의 잔해 위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나에게로 어떤 기억을 발신하고 있다. 해독할 수 없는 깨진 소리가 가느다란 선을 타고 흐른다. 불투명하게 움직이는 손동작을 보면, 어쩌면 그것은 이 아니라 선을 튕겨 보내는 울림일지도 모른다. 언어인지 몸짓인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줄 밑으로 쌓여있는 조각들의 반짝임은 무한히 슬프다. 상대편으로 다가가지 못한 부스러기들, 끌어 올려도 하나의 형상이 되지 못하는 먼지 같은 의미의 무덤. 사금파리를 입힌 연실처럼 선 위로 쌓인 이야기들이 공간에 상처를 남기며 기억의 주변에 매달린다. 이야기될 수 없는 이야기, 수평의 발신은 평행선처럼 달린다. 각도角度 없이, 속도速度 없이, 목적目的 없이.

 

작가 김명진의 작업은 빛을 길어 올리는 어둠의 우물에서 시작된다. 캔버스에 빼곡히 먹빛의 어둠을 채워 입체의 깊이를 만들면, 그 어둠의 먹먹함 속으로 흐릿한 기억이 점점이 모여 눈을 뜬다. 그건 마치 잠이 들고서야 꾸는 꿈처럼 어둠에서 시작된다. 몇 번이고 덧칠한 먹빛은 빛을 길어 올리기 위한 밑 작업이다. 잠들기 위해 잠자리에 눕고 눈을 감는 것처럼 기억을 밝히기 위해 빛은 그렇게 어둠에서 잉태된다. 한지 하나하나에 사물의 표면을 옮겨 담고(탁본 뜨기), 잘게 찢거나 꼬아 어둠의 면위에 형상을 올린다(콜라쥬). 조각들은 반짝이는 패각貝殼처럼 끊기고 채워져 빛을 발한다. 그렇게 검거나 하얀 음영만으로 서사는 고정된다.

 


김영훈, <M12-13>, 메조틴트, 85X65, 2012

 


하얀 바탕 위에 까만 형상이 봉긋하게 서 있다. 한 손을 구부리고 손가락 끝을 묘하게 구부린 모습이 커다란 물음표를 떠오르게 한다. 뚜렷하게 대비되는 색은 바탕과 형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며 다른 세상을 꿈꾸듯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동그란 머리, 한 뼘도 안 될 갸름한 어깨, 새까만 몸 위로 솟은 둥근 얼굴과 손은 열쇠 구멍을 비집고 나온 먼 세상의 비밀스런 모습이다. 생각에 잠긴 걸까. 혹시 어떤 주문, 어떤 저주를 읊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입가의 옅은 미소가 바람에 휩쓸리는 모래알갱이들처럼 가볍게 흔들리며 모였다 흩어진다.

 

메조틴트mezzotint는 동판화의 일종으로, 약물에 의한 부식이 아닌 직접 판에 새김을 하는 평면 판화 기법이다. 동판 전체에 로커(rocker 톱니 모양의 예리한 날을 지닌 조각도)를 이용해 잉크가 채워질 작고 무수한 구멍들을 만든다. 다양한 방향과 무수한 수로 작업 된 어둠의 결은 스크레퍼(scraper)로 다듬어져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부드럽고 미묘한 형상을 만든다. 얕고 옅은 섬세한 작업을 통해 형상은 음영을 가지고, 깊이와 매끈함의 차이를 통해 비로소 어둠에서 빛으로 떠오른다. 어둠의 다양한 톤 차이와 부드럽고 미묘한 빛의 질감, 사막 위를 스치는 바람에 들춰진 신기루처럼 가볍고 날렵하다. 달처럼 동그랗고 밤처럼 어둡지만, 오아시스의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이 난다.

 


김명진, <알 수 없어요 I can’t know>, 캔버스에 한지, , 안료, 콜라쥬, 182X454, 2017

 


동동 거라는 손은 그들의 소통이 얼마나 간절한지 말하고 있다. 간결한 직선이 아닌 나무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는 지그재그 선처럼 우리의 소통은 힘겹고 어렵다. 너무 많은 방해와 장애물 때문에 종종 길을 잃는다. 우리의 의미가 서로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I can’t know. 의지라는 것이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하는 꿈속이라면, 서사는 줏대도 없고 개연성도 잃는다. 그러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전개, 개입할 수 없는 과정,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결말임에도 뒤돌아본 기억 속에는 어쩐지 우리를 눈물짓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미친 듯이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시작부터 비극적 냄새를 풍기는 인어공주의 물거품 같은 것이 발밑에 녹아 있다.

 

빛과 어둠은 등을 맞댄 반대편이고 결코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잃어버린 바늘은 등잔 밑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그 장소에서 찾아야 하고, 물에 담근 노는 매번 다른 물살을 저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믿음이 항상 진실 전부는 아니다. 다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예술가는 바로 그 순간이 오면 알차게(!) 벼려둔 칼을 꺼낸다. 어둠을 베어낼 칼을 불러와 조심히 휘두른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칼 매무시는 벼려둔 시간만큼 세상을 공들여 다듬는다. 모두의 미래가 가닿을 어둠에는 죽음의 냄새가 나고, 짙고 질긴 냄새는 살갗을 말려 올릴듯 두렵다. 빛의 기억이 어둠에 끌려갈 때, 먼지처럼 사라질 부질없는 존재가 느껴지면 손을 뻗어 허공을 어루만진다. 눈 뜨면 사라지고 눈을 감아야만 또렷해지는, 어둠 깊숙이 손에 잡히는 그것, 여기 있구나, 여기 있었구나, 눈물 같고 한숨 같은 내 안의 어둑시니. 어둠에서 길어 올린 빛의 두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뒤집어쓴다. 돌돌 말린 실타래처럼 어둠이 부피를 줄이고, 언제고 다시 나를 덮칠 거미줄처럼 어둠이 시간을 재고 있을지라도, 지금은 눈을 감고 어둠을 어루만진다. 어둠 속에서 참으로 편안하게, 부시지 않은 빛을 향해 눈을 뜬다. 나는 위로 받는다. 덕분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