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 몬드리안,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있는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캔버스에 유채, 45x45cm, Kunsthaus Zürich, Online Collection. © 2022 Kunsthaus Zürich.
이미지 출처: https://collection.kunsthaus.ch/en/collection/item/2455/
자연과학과 종교적 믿음의 만남은 영감과 정신적 직관에 따르는 회화 스타일, 추상미술로의 전개로 이어졌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신지학에 따르면, 자연-대상을 시각이 인지한 대로 모방하고 재현하는 행위는 그저 외피를 그려내는 행위에 불과하였으며, 이는 소위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정신적 생활’과는 멀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회화의 평면을 이루는 요소 간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작가-대상, 작가-작가의 정신, 회화-관람객, 작가의 정신-관람객의 정신 간의 매개체 역할을 의미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전체적 각성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매개체 적인 의미를 칸딘스키는 자신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1912>에서 ‘진동(Vibration)’이라 표현하였다.
피에트 몬드리안, 진화(Evolution), 1911, 캔버스에 유채, 중앙패널: 183x87.5cm,
양쪽패널: 각 178x85cm, 헤이그 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이미지 출처: https://www.pietmondrian.eu/english/individualworks/evolution-1911/evolution.html
몬드리안의 경우에도 신지학은 작가 스스로의 내적계몽, 나아가 인류의 내적계몽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작품 또한 그러한 일종의 ‘사명’을 품고 있었다. 그의 상징주의 계열의 작품 <진화(1911)>는 이러한 목적을 토대로 세심하게 제작되었다. 세 개의 패널은 중 가운데 패널만 양 날개 패널의 높이 보다 높게 설치되었다. 세 개의 패널은 인간의 영적 진화 과정을 의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려진 인물의 성별은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기 존의 몬드리안 작품 중, 이와 유사한 구성으로(양 어꺠에 꽃을 올린 여성) 여성을 그렸기 때문에, 여성으로 추측할 수있는 측면이 있으나, 이러한 면에서도 작가의 각성을 이루었다 가정하여, 성별의 특징적인 부분을 배제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본 작품을 해석하는 순서는 일반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이지만, 많은 학자들은 오른쪽으로 간 후에 다시 중앙의 패널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전체 패널을 볼 때, 본 작품은 어깨를 기준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먼저, 왼쪽 날개 패널은, 물질적 충동, 심장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충동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을 의미한다. 기하학적 도형의 형태로 묘사된 붉은 꽃 내부에는 검은색에 가까운 삼각형이 위치하였는데, 이 삼각형은 하단부를 향하고 이는 형태를 취한다. 삼각형이 하단부를 향할 때는 물질적인 것에 지향을 뜻하며, 반대로, 오른쪽 날개 패널처럼 상단부를 향할 때는 정신적인 것에 지향을 뜻한다. 이 것은 색채에 있어서도 유사한데, 검은색은 죽음의 무, 가능성이 없는 무를 뜻하며, 흰색은 시작 전의 무, 가능성의 무를 뜻한다.
양 날개의 패널의 인물들은 아직 눈을 감고 있는데, 상징주의 계열의 회화에서 눈을 감은 인물의 두상은, 죽음 또는 명상을 의미하는 주요 표현이다. (자세한 설명은 15분 1화, 오딜롱 르동 편 참조). 반면, 중앙 패널은 눈을 뜨고 있는 상태인데, 이는 정신적 각성을 이루어 냈음을, 또는 이루어 내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흰색 원 안에는 오른쪽 패널에 그려진 흰색 삼각형이 존재하며, 머리 상단 부에는 아래를 향하는 흰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이 삼각형은 서로 교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 이는 물질-정신의 교류가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어 냈음을 의미한다. 즉, 가운데 패널이 순서상 두번째 패널이라고 볼 때, 3번째 패널은 정신적 진화를 이루어 낸 최종 단계라 볼 수 있으며, 중앙 패널은 각성 과정 중의 최고 단계라 볼 수 있다. 가운데 패널이 세번째 순서라면, 이상화된 균형을 찾은 최종 단계에 다다른 인류의 진화형태라 볼 수 있을 것이며, 이 세개의 패널을 잇는 삼각형을 그린다 가정할 때, 중앙패널이 상대적으로 위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최종단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개념을 미술사적 해석에 적용했을 때, 형식주의와 유사함을 볼 수 있는데, 미술의 양식적 발전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작가 스스로의 내적 계몽을 통해 형태의 발전을 전개해 간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나무 형태를 탐구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설명된다.
상단 왼. 피에트 몬드리안, 붉은 나무(The Red Tree), 1908-1910, 캔버스에 유채, 70x99cm, 헤이그 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2022 Mondrian/Holtzman Trust,Photo: Musée d’Art de La Haye.
상단 오. 피에트 몬드리안, 나무(Tree), c. 1912, 캔버스에 유채, 74.9x111.8cm, Munson Williams Proctor Arts Institute, Museum of Art, Utica, NY. © 2022 Mondrian/Holtzman Trust, Photo:bpk/Staatsgalerie.
하단 왼. 피에트 몬드리안, 꽃이 핀 사과나무(Apple Tree in Bloom), 1912, 캔버스에 유채, 78.5x107.5cm, 헤이그 미술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2022 Mondrian/Holtzman Trust, Photo: Musée d’Art de La Haye.
하단 오. 피에트 몬드리안, 구성 2(Composition no. II), c. 1913, 캔버스에 유채, 88x11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 2022 Mondrian/Holtzman Trust, Photo: Rik Klein Gotnik.
첫번째 <붉은 나무(1908-1910)>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이, <나무(c. 1912)>와 <꽃이 핀 사과나무(1912)>에서는 입체주의 영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제목에서 또한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음을 주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프랑스 입체파(피카소와 브라크를 한정으로)가 나아간 방향과 몬드리안이 것이 다소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톤다운 된 색채로 형태를 강조하는 행위는 부정할 수 없이 입체파의 색채이나, 몬드리안은 마치 데카르트의 코키토 처럼, 대상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거듭하며, 대상의 외피를 벗겨내고 있다. 물질의 세계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정신 세계의 각성을 이루어 내면, 최종 단계인 <구성 2(c.1913)>에 이르게 되어 대상의 외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존재하게 되는가, 회화로서의 회화, 정신으로서의 순수한 형태, 다시 말해, 순수한 조형만이 회화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 역시도 사회가 부여한 대상의 물질적 이름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1879-1935),
흰 바탕에 검은 사각형(Carré noir sur fond blanc), 1915, 캔버스에 유채, 79.5x79.5cm,
트레티야코프 주립 갤러리, 모스크바, 러시아. Public Domain.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이 단계에서 나아가 절대주의를 탄생시켰지만, 몬드리안의 형태적 전개는 디자인의 방향, 데 스틸(De Stijl)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데 스틸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지학의 영향을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 수학자 숀메이커즈의 수학적 척도와 더불어 예술행위를 수학적 기초 위에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데 스틸의 회화들은 수직, 수평, 삼원색과 무채색만을 활용한 절제된 양식을 보인다.
테오 반 뒤스부르흐(Theo van Doesburg, 1883-1931)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구성을 위한 연구[소](Study for Composition [The Cow]), 1917, 종이에 연필, 11.7x15.9cm
(MoMA), 2. 1과 같음, 3. 구성[소](Composition [The Cow]), 1917, 종이에 과슈, 유채, 차콜, 39.4x58.4cm(MoMA).
이미지 출처: https://www.khanacademy.org/humanities/art-1010/cubism-early-abstraction/de-stijl/a/de-stijl-part-ii-nearabstraction-
and-pure-abstraction
테오 반 뒤스부르흐(Theo van Doesburg, 1883-1931), 구성 8[소](Composition VIII [The Cow]), 1918, 캔버스에 유채,
37.5x63.5cm, MoMA, 뉴욕, 미국. 이미지 출처: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189
테오 반 뒤스부르흐는 몬드리안의 엄격한 조형정신과는 조금 더 다른 길을 걸어가지만, 형태 연구를 통해 조형 성찰의 확창을 이루어 내려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몬드리안의 나무 연구와 유사하게 소를 형태와 조형적 구성에 대한 연구한 그의 작품은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없이, 본질에 대한 탐구와 분석으로 예술가들이 추상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추상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은 점차 물질적 대상에서 비 물질적 대상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데, 이는, 자연에서 얻을 수 없는 수직과 수평, 그리고 사각형으로 구성된 미적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신 조형주의의 양태를 의미한다.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Woogie), 1942-1943,
캔버스에 유채, 156x156cm, MoMA, 뉴욕, 미국.
이미지 출처: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8682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은 이러한 양태가 잘 관찰되는데, 검은 선 대신 색선을 사용하고, 작은 사각형 모듈을 황금비가 의도적으로 배제된 화면에 제시하여 음악적 리듬감을 화면에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이라는 대상에서 예술가 상이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세잔은 자연의 본질을 직선이 없는 세계로 표현했고, 입체주의자들은 모든 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도록 관찰하여 분해했으며, 러시아의 추상은 색과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세상 모든 물질과 물질 간에 존재하는 진동을 화폭 내외에 담아냈다. 그리고, 몬드리안은 우리에게 뉴욕 거리와 어딘가의 재즈바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부기-우기 리듬을 들려주는 듯 하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세상의 매개자가 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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