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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하며 감응하는 자유 – 키키 스미스 (Kiki Smith, 1954. 1. 18~) | ARTLECTURE

하강하며 감응하는 자유 – 키키 스미스 (Kiki Smith, 1954. 1. 18~)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

/Artist's Studio/
by 김현진
하강하며 감응하는 자유 – 키키 스미스 (Kiki Smith, 1954. 1. 18~)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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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미(美)의 정의를 파기하며 우주라는 정원을 배회하는 키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입니다.” 떨어질수록 더 많은 존재와 공명할 수 있다고, 새로운 미(美)를 개척하며 자유로워진다고.


하강하며 감응하는 자유


아름답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기꺼이 떨어질 수 있는가. 키키 스미스의 전시(키키 스미스-자유낙하, 2022.12.15~2023.3.12, 서울 시립미술관)를 보고 되뇌었던 질문이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은 여성, 인체, 자연을 심미적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 점에서 신선했다. 작품을 보는 사이 때로 통쾌했고 내내 가뿐하게 자유로웠다. 



** <자유낙하>, 1994



인체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신체 주요 장기를 해부학적으로 작품에 등장시켰다. 본인의 사진을 이용한 작업도 다수. 작품 속 그녀는 중성적 이미지를 띠며 낯설고 기이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얼굴에 털이 돋아 있거나(<무제(두폭화)>, 1999) 날개를 단 채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며 괴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라스 아니마스(las animas)>, 1997, <나비, 박쥐, 거북이>, 2000). 기꺼이 아름답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 


관념에서 벗어나기 - 몸에 대한 응시


키키 스미스(1954년 1월 18일~)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아버지 토니 스미스와 오페라 가수이자 배우인 어머니 제인 로런스 스미스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했지만 스물 네 살에야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스미스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동성애, 에이즈, 낙태권, 페미니즘 등의 이슈와 결합하여 ‘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다. 



** <나비, 박쥐, 거북이>, 2000



그즈음 가족의 죽음(아버지와 동생 베아트리스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스미스 또한 신체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 갔다. 위계에서 벗어나 파편화된 장기를 표현하고 피와 체액을 흘리는 몸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몸’에 대한 관념적 혐오적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신체 그 자체의 취약함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서의 몸이라는 관점이 담겨 있다.  


이러한 스미스의 생각은 재료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청동과 같은 견고한 물질이 아닌 유리나 테라코타, 밀랍 등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재료를 사용해 인체의 유약함을 표현했다. 사람의 피부를 닮은 네팔 종이로 조각을 만드는 등, 신체 장기를 표현하는 재료에 있어 실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녀 작품을 보며 떠올린 질문, ‘아름답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는 필자 내면에 뿌리 박힌 강박을 깨닫게 했다. 삶의 안팎에서 심미적인 것을 추구했던 태도는 통념에 의해 받아들인 미(美)의 기준을 쫓았던 결과는 아니었을까. 아름답다는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삶과 생각에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 속에 존재하는 미(美)란 진정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여성과 남성, 미(美)와 추(醜), 영혼과 육체, 상승과 하강, 인간과 자연.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통념은 무의식적으로 대상과 나를 분리하고 위계를 형성한다. 이분법의 이면에는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가 숨어 있다. 위계의 낮은 위치에 있는 대상에게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를 부여한다. 여성 혹은 누군가에게 강요되는 미(美), 미적인 생활을 위한 노동과 애씀, 그것을 강제하는 시선은 어디에서 나와 누구를 억압하는가. 



** <라스 아니마스, las animas>, 1997



키키 스미스의 작품은 우리 안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기준, 혹은 강압을 가뿐히 벗겨낸다. 메두사에 덧씌워진 ‘악녀’라는 가면(<메두사>, 2004), 여성 신체에 드리워진 미(美)의 관념(<가슴 II>, 1994)을 제거한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생명의 본질로, 유한하고 연약한 몸 그 자체로 재현된다. 아니마¹는 배제되고 일시적으로 현현하는 animas²만이 존재한다. 옳고 그름은 사라진다.

¹anima, 라틴어, 고대 철학에서 생명, 사고의 원리가 되었던 영혼이나 정신

²스페인어, 혼을 불어넣다, 생기를 불어넣다



공존과 감응을 위한 떨어짐 - 자유낙하


키키 스미스는 2000년대부터 종교, 신화,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작업을 전개했고 동물과 자연, 우주로 주제의 범위를 확장해 가고 있다. 본인의 예술 활동을 일종의 ‘정원 거닐기’*라고 칭하는 스미스는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생명체를 작품으로 초대해 연결하고 감응하길 멈추지 않는다. 이는 조각에서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법을 넓혀 온 행보와 맞물린다. 




** <무제(여자와 나뭇잎)>, 2009



이분법적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키키 스미스의 움직임은 ‘자유낙하’(그녀의 대표작이자 지난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의 제목)로 대표된다. 여기에는 인간이 지구상의 생명체 중 특별한 지위를 점한다는 통념에서 과감히 뛰어내리는 시도 또한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그녀 작품에서 인간은 파편화된 장기와 유약한 형태로 표현된다. 힘을 지니고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피 흘리고 배설하는, 몸이라는 기관 없이 생존할 수 없는 동물적 존재다. 신이 되려는 상승 욕구 대신 하강의 힘,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부과되는 중력을 따른다. 


떨어질 수밖에, 소멸할 수밖에 없는 몸이라는 인식. 그러므로 인간은 탄생과 죽음으로 순환하는 동물과 식물,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동등한 지위에 놓인다. 그/그녀는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점하기보단 뒤섞이고 넘나 든다. 손바닥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고(<무제(여자와 나뭇잎)>, 2009) 사슴의 몸에서 태어나거나(<탄생>, 2002) 늑대의 배를 찢고 나오기(<황홀>, 2001)도 한다. 


나방, 박쥐, 다람쥐, 사슴, 여인 등 다양한 생명체는 눈에서 나오는 빛(시선)으로 서로를 연결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태슬 같은 것이 늘어져 있는데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같다. (<회합>, 2014). 스미스의 작품에서 인간은 홀로 특별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체는 서로 깊이 연계되어 있다. 시원으로 거슬러 가면 동물과 사람, 식물과 동물의 경계마저 허물어질 것이므로. 모든 생명체는 서로에게 눈빛을 보내고 감응하며 지구라는 정원에서 공존한다.  


그 관계는 자연을 넘어 우주로 확장된다. 작품의 주제로 별과 달이 등장하고 사람의 얼굴에도 별자리가 새겨진다(<별자리>, 1996). 바다의 불가사리가 하늘의 별이 되고, 해변에서 놀던 소녀가 불가사리처럼 팔을 뻗는다(<푸른 소녀>, 1998). 경계는 계속해서 사라지는 중이다.   



맴돌고 배회하며 허물고 넘나들기



*** 키키 스미스 

나의 일은 맴돌기랍니다-

관습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트는 모습에 사로잡혔거나-

석양이 나를 보고 있으면 그래요-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예요, 선생님,

-히긴슨에게 보낸 디킨슨의 편지 중에서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에밀리 디킨슨, 박혜란 옮김




에밀리 디킨슨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겪고 세계(통념)의 밖으로 걸어 나가 은둔의 삶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풍요로운 정원을 가꾼 이. 맴돌기가 특기라던 흰 옷 입은 여인은 정원에서 끝없이 풀려나오는 시를 지었다. 그 여인이 검은 옷을 입고 환생한 것은 아닐까. 미(美)의 정의를 파기하며 우주라는 정원을 배회하는 키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입니다.” 떨어질수록 더 많은 존재와 공명할 수 있다고, 새로운 미(美)를 개척하며 자유로워진다고. 


맴돌고 배회하는 발자국들이 경계를 지운다. 그 정원에서 아름답지 않을 용기는 필요하지 않다.



[출처]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 리플렛 

**그림 사진 – <키키 스미스-자유낙하>(열화당) 도록 

***키키 스미스 사진 – Vogue 인터뷰 

https://www.vogue.co.kr/2023/01/06/%ED%82%A4%ED%82%A4-%EC%8A%A4%EB%AF%B8%EC%8A%A4%EC%9D%98-%EC%84%B8%EC%83%81%EC%9D%84-%ED%83%90%EA%B5%AC%ED%95%98%EB%8A%94-%EB%A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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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현진 (춤추는 바람)

작은 목소리로 작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은 미약하고 사소한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