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지극히 사적이지 않은 | ARTLECTURE

지극히 사적이지 않은

-에피메테우스의 열여섯 번째 질문-

/Picture Essay/
by youwallsang
지극히 사적이지 않은
-에피메테우스의 열여섯 번째 질문-
VIEW 535

HIGHLIGHT


가끔 공공의 장소에서 세금 운운하며 따지는 일부 사람들이 미술관에도 온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왜 이런 것을 뭐 좋으라고 전시해서 허튼 곳에 세금을 낭비하냐’며 일선의 도슨트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입 바르신(!) 분들이다. 세금이 어떻게 쓰여야 맘에 드실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을 왜 자신이 들여다봐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색을 원하는 곳에 바르고,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려서 어떤 속박도 강압도 없이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무한히 펼치는 예술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미술관을 찾고, 어떤 예술가가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작업한 작품을 우리가 바라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진경 0322>,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100X100


 


맑은 쪽빛의 바다가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하게 시야를 채운다. 하늘과 바다가 고요하게 색을 가르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섬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섬의 모습은 마치 레토가 약속하기 전의 델포이 섬처럼 뿌리 없이 떠 있는 듯하다, 거품처럼 뜬 섬은 물속으로 얕은 몸을 담근 채 얼굴만 내민 사람처럼 고요한 숨을 내쉰다. 간송미술관의 연구원이라는 그의 이력이 물빛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오랜 응시가 배어든 아사천에 그려진 수묵채색화의 담담함은 간결한 배치와 농담의 깊이만으로 자연의 추상미를 보여주고 있다. 하늘과 바다, 그 사이의 섬. 고졸古拙한 자연의 모둠만으로 천지간의 모든 것이 눈앞에 드러난다. 어둑새벽의 정화수井華水처럼 청량한 풍경이다.

 

유화 채색이 층층이 올려진 색들의 두께로 존재감을 보인다면 수묵화의 채색은 바탕에 스며들어 자국 없이 말끔한, 그 자체가 바탕이 돼버린 일체의 모습으로 은근함을 내보인다. 소위 말하는 화장이 잘 먹었다는 날의 얼굴처럼, 테 없이 곱다. 작가 김현철은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저 불쑥 내민 손처럼 일부만 드러난 자연과 맑은 색감,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긴 공간. 묘사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자신의 경험 속에서 불러와야 하는 시간, 오래도록 바라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을 통해 기억을 불러오고, 기억을 통해 마음속에 재현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을 영원으로 만드는 작업이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오래도록 바라보며 그림을 읽어내는 일을 배운 적이 없어 생소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어떤 일이건 연습이 필요하고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 앞의 긴 의자는 풍경風景이 진경眞景이 되어갈 시간을 위한 배려다.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민음사



 

어쩌면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이 다른 책이었더라면, 나는 다른 생각의 꼬리를 잡았을 수 있다. 이슬람 세밀화의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더라면, 시선의 반은 다른 의미들을 향해 뻗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신의 눈은 창조물을 밝게 비추기에 그들은 그림자를 갖지 않는다. 술탄의 얼굴은 똑같고 상징만을 입을 뿐 로서의 특징을 갖지 않는다. 인물의 묘사를 부정하고 식물과 쿠란의 구절에 치중하는 세밀화는 신의 눈으로 그려진다. 그러기에 신 앞에 그들은 평등하고 어둠을 갖지 않는다. 인간의 눈이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 올 때, 세상은 흔들리고 신은 부정된다. 왕궁의 세밀화가들에게 닥친 변화는 시대를 바꾸려는 저항의 몸짓이 되어버렸다. 차례차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살인자를 찾는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매일 확인해야 한다. 서쪽에서 들어 온 그림의 시선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에게 나의 시선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다. 신의 시선을 거두는 일, 시선의 자리에 인간의 눈을 가져다 두는 일. 그저 회화의 양식일 뿐인데, 그림자가 있든 없든, 얼굴이 똑같이 생겼건 아니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원근법과 명암법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큼 대단한 것이라도 된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눈에 맺히는 상의 재현과 마음에 맺히는 상을 그린다는 것이 그토록 등을 맞댈 일인가.


 

<진경 제주>,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53X73

 



다시 김현철의 그림을 바라본다. 동양화는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다. 관념 속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야 하기에 그곳에 현장은 없고 이상향만 남는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섬은 물 밑으로 옅은 존재감을 살짝 드러낸다. 그것이 그림자일지, 그저 가라앉은 존재의 무게일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사실들에 대해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실은 존재를 표현하는 것에 너무나 많은 제약과 억압이 숨어있고, 개인의 자유로울 수 있는 선택이 때론 혁명적 도발이 될 수도 있다면. 전통과 새로움의 차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매번 판단해야 한다. 하나의 전형은 시대 전체의 요구이고 쉽게 방향을 틀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익숙한 눈은 새로움을 알아보기보다 벗어난 것을 가려내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예술은 생을 걸어야 한다.

 

미술관에는 자신의 그림 솜씨를 자랑하는 일부 또한 종종 등장한다. ‘나도 저만치는 그리는데, 내가 그려도 미술관에 걸어 줄 거요?’ ‘, . 선생님께서 인생을 걸고 그리신다면, 모든 시선과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실 수 있다면, 가능할 겁니다.’ 뻔뻔함과 당당함이, 도발과 타협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표현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진경 0323>, 2016, 아사천에 수묵채색, 181X681



 

두 개의 액자로 걸린 바다를 바라본다. 육지 쪽의 패널이 조금 더 길고 왼쪽의 작은 패널은 오로지 바다만 담고 있다. 누군가 왜 화면이 나뉘었나 묻는다. 화면이 분할된 만큼의 거리를 우리는 무한대로 상상할 수 있다.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갇힌 바다가 아닌, 원하는 만큼 길게 늘여 놓을 수 있는 바다. 말줄임표처럼 침묵하며 늘어나는 바다. 파도 소리도 침묵시킨 바다를 바라보며 예술가의 붓질이 그저 기술에 관한 일,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을 물리친다. 소설 속의 에니시테는 스스로 충분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 숨죽였다. 새로운 자각과 기술 앞에서 예술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음.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됨. 사회의 규칙과 철학, 그 모두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예술이 선택해야 하는 태도는 어떤 것일까. 태도가 예술이 될 때,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삶과 예술이 이토록 맞붙어 있음에 진저리를 친다.

 

옆집에 사는 예술가, 2018, 경기문화재단

 

바다의 깊이는 쪽빛의 농담으로 심연을 실감하게 만든다. 바다 위 그늘 속으로 가벼운 듯 잠겨있는 섬은 작가가 선택한 방식을 통해 우리 눈 속을 파고든다. 그의 선택이 무엇을 걸고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아들어야 한다. 마음의 단단한 방어막을 걷어내고 날 것으로 다가가 부대껴봐야 한다.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렸던 이들, 재현과 원근, 명암의 지극히 당연한 이치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순간을. 고요의 청명한 바다 앞에서 강렬한 빨강의 예술혼을 만난다.

 

몇 년 뒤 기내의 잡지 속에서 한눈에 그의 바다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 작품 앞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벌떡 일어섰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망망한 바다, 앞으로 쏟아질 듯 물들이던 쪽빛, 그리고 벽을 타고 흐르던 초록의 바람까지. 상처 위를 걸어가는 산들바람처럼 따갑지만 상쾌한 감정이었다. 지극히 담담하지만, 눈에 와 닿는 저 감각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무수한 벽과 단단함을 두드리고 깨서 일으켜 세운 지극히 사적이지 않은 것들임을, 우리는 매 순간 미술관에서 만난다. 시선은 의도적인 것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