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IGHT
페페라는 개구리가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담아낼수 있는 것에는 작가의 평소 작업세계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만화적인 요소와 환각적인 역동성을 보이는 작가의 그림에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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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접하는 밈(meme)은 어떠한 농담이나 사상을 담아 복제되고 변조되는 패러디 이미지다. 특정한 만화,
영화 등 미디어의 팬클럽에서 쓰이기도 하고 일상 채팅에서도 자주 보이는 밈은 대화의 주제를 정리하기도 하고 강조하기도 하며 사용자에 의해 원본과 개연성이 없는 의미를 가질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밈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원작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페페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만화책 Boy’s Club
2005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거주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매트 퓨리 (Matt
Furie)는 4명의 의인화된 동물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화 <보이즈 클럽 (Boy’s Club)>을 연재했다. 만화에서 4명의 친구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보냈다. 특히 개구리 페페는 주름진 이마와 튀어나온 눈이 졸립고 피곤해보이는 인상을 주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놀림을 당해도 “Feels good man(기분좋은걸)” 이라는 대사를 날리며 우스꽝스러움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상적인 페페의 외모는 이후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여지며 슬픔,
분노,
허무함 등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2017년 개구리 페페는 인터넷에서 정치적 논쟁의 얼굴로 쓰여졌다.
다소 폭력적이고 증오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쓰여진 이러한 현상은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자신이 창작한 순수한 캐릭터가 이상하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변질되는 것에 크게 상심하였다.

Matt Furie, Various Pepe animations, 2022
매트 퓨리는 ‘페페를 구해라 (Save
Pepe)’ 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개구리 페페에서 논란과 증오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했다. 평화를 원하는 페페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멸종 개구리를 위한 자연보호 운동에 페페를 아이콘으로 그리기도 하던 중, 작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경찰 폭력에 반항하는 시민들이 페페를 그리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페페는 폭력의 상징에서 비폭력의 상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작가는 짧은 개구리 페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캐릭터의 세계관을 넓혔다. NFT 아트 갤러리에 올리는 이 애니메이션들은 페페와 다른 개구리 캐릭터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해부 시간에 동족을 풀어주는 이야기,
심야 지하철에서 곤히 잠든 사원의 모습,
모험을 떠나며 생존하는 모습,
죽음의 인물과 마주하며 끌어안는 모습 등 많은 강렬한 이야기들은 깊은 희노애락을 담은 페페의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Matt Furie 의 작품들
페페라는 개구리가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담아낼수 있는 것에는 작가의 평소 작업세계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만화적인 요소와 환각적인 역동성을 보이는 작가의 그림에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행복해 보이는 캐릭터들과 상반되게 그려진 음침하고 우울한 무채색의 캐릭터들은 밝은 세계만큼 짙은 현실 속 그림자를 나타낸다.
페페의 평온하면서 피곤해 보이는 눈이 많은 이들의 감정을 대변해 주었듯이 작가의 세계관 속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괴로움과 허망함 그리고 즐거움을 담아 증폭시키고 있다.
글_조혜연_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 이야기들_heyonch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