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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빚은 권진규 | ARTLECTURE

영원을 빚은 권진규


/Art & Preview/
by 박미란
영원을 빚은 권진규
VIEW 1910

HIGHLIGHT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영원을 빚은 권진규’가 전시 중이다. 권진규 생애 전반에 걸쳐 제작한 작품 120여 점과 아카이브, 드로잉 50여 점을 선보이는 회고전으로, 작가의 작품 활동 시기별 세 섹션으로 구분하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권진규의 전시 공간은 마치 성스러운 예술 사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찰나를 통해 영원을 경험할 수 있을까?’ 전시장을 돌며 내내 맴돈 생각이다.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으나,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잘 썩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테라코타는 1만 년 전의 것이 있지요.

작가로서 재미가 있다면

불장난에서 오는 우연성을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점과

브론즈와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딴 사람(끝 손질하는 기술)에게 가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권진규-



권진규, <마두A>, 1965

 


권진규는 일찍이 그 해답을 찾은 듯하다그는 진흙이 갖는 영원성에 주목했다권진규가 사용한 테라코타 기법은 석고모델과 석고틀을 사용해 진흙으로 형태를 빚고 구워내는 방식으로당시 금속 조각이 유행하던 한국 조각계에서는 이질적인 것이었다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의 최신 조소 기법을 배웠으나 동서양의 미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권진규는 수수하고 꾸밈없는 형상에 숭고한 아름다움을 풀어낼 방법으로 테라코타를 선택한다.

 

그러나 당시 미술계에서 권진규의 언어가 불러일으킨 이 흥미로운 파장은 냉대를 받았고그는 끝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비운의 라벨은 그의 삶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형용이다나는 그에게서 겨울 참나무의 나력(裸力·벌거벗은 힘)을 본다"는 권진규의 조카이자 권진규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허경회 박사의 말처럼 단순히 그를 비운의 천재로만 각인이 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그래서인지 치열하게 예술에 임하였던 조각가 권진규로 마주하길 바란다는 이번 전시가 더욱 와 닿는다.




광주시립미슬관 전시전경



전시장에 들어서면 유독 눈을 사로잡는 여인의 흉상들이 있다감정의 부침의 세월을 보냈을 작가가 보여주는 이 여성상들은 강인했다특히 지원의 얼굴은 어깨를 생략하고 가파르게 상승시킨 긴 목수녀인 양 스카프로 감싼 머리깊은 눈매가 어우러져 강한 정신력을 발산하며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



불필요한 살을 깎아 내고 형태를 단순화의 한계까지 추궁해 소름 끼치는 긴장감을 표현했다중세 이전 종교상이 갖는 극적인 감정의 고양이 느껴진다는 평론가들의 찬사가 절로 수긍되는 작품들이었지만매번 스스로 설정한 세계에 육박하고자 치밀하게 살아야만 했던 그의 힘든 여정이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들었다.



권진규, <가사를 걸친 자소상>, 1969-1970



권진규, <십자가 위 그리스도>, 1970



후기로 갈수록 권진규는 작품에 정신성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일에 천착한다자기 자신을 승려로 형상화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 삼베의 거친 질감을 살린 건칠 작업으로 예수의 고뇌를 형상화한 '십자가 위 그리스도등이 그런 작품이다생을 마감하기 전 그는 작품에 대한 회의와 삶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던 듯하다.


특히 자소상의 눈빛, ‘그리스도 상의 표정, ‘가사를 걸친 자소상의 얼굴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건조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에 두려움과 슬픔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특유의 질감과 명암으로 표현되어 우리의 감정의 울림을 증폭시킨다.


권진규는 작품의 대상이 동물이건 사람이건 특별한 위계를 두지 않고 일관되게 본질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고자신만의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를 통해 영원성을 구현하려 했다.


보통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영적이라는 말이 권진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작품을 통해 대상의 존재그 정신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집요한 의지가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권진규, <>, 1963 (사후제작)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기존의 미술계가 만들어 놓은 굴레를 벗어던지고 홀연히 내 식대로 내 생각대로 나의 작품을 하고 싶었던 권진규그는 무엇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천착(穿鑿)하는 손'이었다그는 끝까지 순간을 영원으로 고양 시키고영원을 순간 속에 압축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권진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이 세계에 없는 영원불멸의 빛과 자유의 순간적인 반짝임을 느껴보고그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박미란_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