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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노-히스패닉 예술운동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 | ARTLECTURE

라티노-히스패닉 예술운동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

-아스코 Asco – 코코 푸스코 Coco Fusco-

/Art & History/
by 오신혜
라티노-히스패닉 예술운동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
-아스코 Asco – 코코 푸스코 Coco Fu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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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게재 특집] 푸스코는 다문화주의가 흥행하던 1980년대 후반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라티노 예술 공동체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탁월한 비전을 제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정체성의 정치학은 1990년대 미술계를 장악한 가장 논쟁적인 화두였다. 이는 후기 민권운동의 영향 속에서 시작된 다문화적인 감각과 정체성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사상적 흐름들, 그리고 1980년대의 보수주의적 정치 경향과 인종차별적인 관행들로 인한 저항적인 움직임들 속에서 시작되었다. 정체성의 정치학의 정치사회문화적인 기반은 1960년대로 흑인 민권운동으로 미국 내 흑인의 권리를 공식화하고 폐쇄적 이민법을 개정하여 백인중심의 미국사회를 다른 문화권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에게 개방하면서 다원화된 문화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서 1970년대 확산된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 주체를 해체하며 성적 차이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아가 정체성이 구성되는 사회적 조건과 맥락에 대한 논의를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기구조주의는 정체성의 기원과 뿌리에 대한 오래된 가정을 전면적으로 재고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단일하고 고정된 인식을 거부하였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후기식민주의 담론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 젠더, 민족, 계급, 종교, 공동체, 국가와 같은 여러 변수가 구조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종에 따른 식민주의의 위계적인 차별구조가 유럽의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적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개인의 정체성의 형성에 억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사상적 흐름은 단일한 가치체계로부터 다가치와 무질서, 그리고 해체의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새로운 시각을 향한 역동적인 벡터들의 가능성을 미술계에 열어놓았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은 미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과 순수한 지각을 전제한 모더니즘적 세계에 대한 회의로 나타났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따라 작품 해석에 있어 작가와 수용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맥락과 토대가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게 되면서 작품의 의미와 해석의 방식이 독자와 시대, 그리고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술계에 미술 작품이 전제하고 있는 미술의 형식과 제도적인 틀에 대한 의구심으로 나타났다. 특히 순수한 지각에 대한 미니멀리즘의 전제를 전면적으로 재고하는 제도비판 미술은 박물관과 갤러리가 가정하고 있는 객관성과 권위에 대해 질문했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적인 이해가 중요한 방법론으로 등장했다. 이는 주체의 지각이 객관성이나 절대성을 상실하고 포스트모던 담론의 지각 방식에 따라 탈환영을 지향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한편 사회의 저변으로 확대된 다문화적인 정체성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면서 미술계에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흑인과 여성,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기 시작한 소수자 집단들은 자신들이 처한 사회문화적인 차별의 기제들을 지적하고 정책적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이들에게 정체성이란 상관적인 것으로써 개인이 속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와 연계되어 정의되는 것이었다.(1) 작가들은 또한 인종 민족 젠더의 측면에서 규정되는 정체성에 주목하였고 주류세계로부터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내고 다양한 정체성을 재현해내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흐름의 한편에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라틴계 미술운동이 있었다.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국 사회는 많은 수의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들을 수용했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인식 수준은 매우 낮았다. 이들의 식민적인 상황은 이민자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과 인식적 차별에 반대하는 소수자 운동이 본격화되어 인종적, 민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철폐법안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지리적 근접성과 언어적 유사성으로 인해 이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계 이주민들은 로스앤젤레스의 치카노(2), 뉴욕의 푸에르토리코인, 마이애미의 쿠바인과 같이 그들이 정착한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차별철폐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멕시코계 이민자인 치카노는 인권운동의 선두에 있었는데, 이들은 1968년과 1973년 사이 로스앤젤레스 동부 지역에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펼쳤다. 미국에서 가장 광범위한 치카노 거주지에서 펼쳐진 이 운동은 치카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무시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표면화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하게 받아들여져 반란 또는 폭동으로 간주되었다. LA시 당국과 경찰은 이에 강력히 대처하였고 당시 로스앤젤레스타임즈는 이를 갈색파워의 탄생이라고 평가했다.(3)

 

대대적 민권운동에 수반된 치카노 벽화운동은 최초의 집합적 라티노 미술이라 할 수 있는 치카노 벽화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아마추어 미술 공동체 집단으로 일상의 공간에 저항적 문화를 담아내었다.(4) LA 동부지역에서 경찰과 바리오의 충돌이 빈번하던 시기인 1972년에 조직된 치카노(Chicano) 미술 그룹 아스코(ASCO)(5)는 차별적이고 열악한 교육에 반대한 학생 시위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6) 윌리 헤론(Willie Herrón), 그롱크(Gronk), 팟씨 발데즈(Patssi Valdez), 해리 갬보아 주니어(Harry Gamboa, Jr.)로 구성된 이들은 벽화 작업으로 대표되는 치카노 미술을 제도권과 주류 미술계의 인식적 차별에 대항하는 게릴라성 거리 퍼포먼스로 바꿨다. 이들의 전위적인 퍼포먼스와 멀티미디어 작업은 최근 예술의 생산, 배급, 수용과 전시의 측면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모던 미술의 선구적인 사례로 재조명되고 있다.

 


<걷는 벽화(Walking Mural)>(1972) / <즉석벽화(Instant Mural)>(1974)

 


아스코는 기괴한 옷차림과 과도한 분장을 하고 LA의 주요 상업지구인 위티어 대로(Whittier Blvd.)를 따라 활보하면서 정치적 긴장과 통행금지로 가득찬 공공장소에서 사전 통지나 당국의 허락도 없이 거리 퍼포먼스를 펼치며 통제적인 거리 풍경에 대항했다. 이들의 위험한 정치적이고 행동주의적인 퍼포먼스는 이후 치카노 미술에 대한 폄하적인 통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된다. 치카노의 벽화미술에 대한 해체적 패러디인 <걷는 벽화(Walking Mural)>(1972)<즉석벽화(Instant Mural)>(1974)는 정적인 벽화 전통을 움직이는 벽화 퍼포먼스로 대체하며 역동적이며 유동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치카노의 미술은 민속 미술이라는 편견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치카노 특유의 갱 스타일 패션으로 로스앤젤레스 미술관 입구에 서명하고 이를 개념적인 순수예술 작품으로 명명했다.

 

 


<최초의 만찬(The First Supper After a Major Riot)>(1974)

 

 

아스코의 활동은 <-무비(No-Movies)>(1977)를 통해서 보다 구체화되며 선명해진다. 아스코 스스로 영화의 기술 스텝, 제작자, 감독 그리고 배우가 되어 만든 독립적인 미디어를 통해 치카노가 매체로부터 은폐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들의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냈다. 이들은 하위계급의 역할로 고정된 치카노의 재현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치카노의 이미지를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것으로 생산함으로써 치카노 예술가들이 어떠한지, 또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입견을 해체했다. 이처럼 사회적인 논평으로써의 이들의 전위적 예술 활동은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초의 정체성을 다루는 작가들의 선구적인 작업이자 포스트모던예술이 가진 많은 특징들을 앞서고 있다고 평가된다.(7)

 

이와 같은 아스코의 활동은 정치사회적인 주제와 아방가르드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라틴아메리카와 라티노 미술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정치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인 퍼포먼스 장르를 선호하는 경향을 띤다.(8) 그리고 라틴계 미술이 민속미술의 범주에서 인류학적 연구대상으로 다뤄지는 것에 반발하여 의도적으로 과도한 이미지를 만들어 고정된 이미지에 혼란을 야기하는 전략을 빈번히 사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스코의 작업은 치카노 집단 내에 머물지 않고 라틴계 미술가를 포함한 미국 사회의 소수자 집단들과 공명한다. 그리고 이후 푸스코와 고메즈-페냐(9)를 비롯한 저항적인 라틴아메리카 미술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소위 라틴 미술의 붐으로 일컬어지는 라틴아메리카 미술에 대한 관심은 콜럼버스 아메리카 대륙 도착 500주년 기념인 1992년을 전후로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이민자 인구의 증가와 주요 소비자 집단으로 부상한 이들에 대한 대기업의 후원, 그리고 정부의 다문화주의적 정책과 학계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관심 등의 요인으로 인해 더욱 확대되었다.(10) 초반의 대규모 전시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다소 낭만화 된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이러한 전시들은 환상적’, ‘이국적이라는 단어로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다루며 원시적이고 추상적인 미술은 포함시키되 정치적인 미술은 전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며 대중의 흥미를 충족시키는 전시 기획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고, 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미술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더해지면서 라틴계 미술가와 연구자들의 주도 하에 기획된 전시도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전시들은 라틴아메리카와 라티노 미술에서 사실상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사회적인 테마를 다룬 작품들을 대거 포함하여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치우친 관심을 수정하는데 기여하였다.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 근대적인 것과 부족적인 것의 친화성('Primitivism' in 20th Century Art: Affinities of the Modern and the Tribal, The Museum of Modern Art)>(1984), <대지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 Centre Pompidou)>(1989)



 

1990년대를 전후한 많은 미술 전시들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 출신의 예술과 작가들을 주류 문화와 평등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다문화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였다.(11)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는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 근대적인 것과 부족적인 것의 친화성('Primitivism' in 20th Century Art: Affinities of the Modern and the Tribal, The Museum of Modern Art)>(1984), <대지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 Centre Pompidou)>(1989), <10년 전 : 1980년대 정체성 담론의 주요작품(The Decade Show : Frameworks of Identity in the 1980s, the Studio Museum in Harlem)>(1990),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1993) 등의 문화적 다양성을 기치로 내세운 전시들이 열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시들은 정체성의 정치학을 미술작품은 물론 미술계 전반에 적용하여 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둘러싼 논쟁의 불꽃을 점화시켰다.


푸스코는 다문화주의가 흥행하던 1980년대 후반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라티노 예술 공동체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탁월한 비전을 제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12) 그녀는 자신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세계화 시대에 문화적 경계지점에서 발생하는 인종 간, 젠더 간의 교차가 타자의 몸에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그녀의 상호문화적 퍼포먼스는 장소가 지닌 의미와 함께 관객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푸스코의 작업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경계지점을 드러내는 인식적 리트머스지와 같은 상호문화적이며 장소특정적인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푸스코는 인종차별의 역사와 동시대의 문화적 실천을 재연(re-actment)하는데, 이는 작가가 정전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 다시쓰기로 대표되는 탈식민주의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스코는 과거의 역사와 동시대의 문화적 실천들을 원전으로 하여 이를 재구성한다. 그녀는 역할극에서 탈식민적인 텍스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되묻기에서부터 이중성, 패러디, 풍자와 형식전환에 이르기까지 전복적인 모든 전략을 시도한다.(13) 그리고 이와 같은 전략은 관람객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욕망을 배반하며 관객을 괴롭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원본의 틀을 상당부분 그대로 유지하지만 관람자로 하여금 기본 가설들을 의심하고 재고하도록 하는 비판적인 지점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공연상의 새로운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들을 제공하여 정전 텍스트에서 작동하는 권위와 권력의 기호들을 해체하고, 재현에 가해진 제약들을 무효화하고, 사회적 규제에 넌지시 개입하는 대항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다.(14)


퍼포먼스 장르는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대항적 정체성을 재연하는데 장르적 적합성을 띤다. 공연 내 외적 요소들을 변주하여 문화적 코드들을 유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변성 때문이다.(15) 따라서 완결되어 있는 텍스트의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불협화음을 만들면서 정전의 권위를 훼손하고 주어진 권력 구조를 허무는데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퍼포머와 관객들은 우리와 그들’. ‘1세계와 제3세계’, ‘흑과 백’,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등의 이항대립에 근거한 주체와 객체의 고정된 정체성의 위치, 퍼포머와 관객의 위치 그리고 주어진 배역과 퍼포머 개인의 위치를 지그재그로 오고가면서 서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횡단하는 전이의 과정을 겪는다. 푸스코의 퍼포먼스는 문화적 실천이라는 현실을 텍스트로 삼아 이를 재연하되 이에 허구적 상상력을 추가하고 예외적이며 이질적인 요소들을 첨가하여 텍스트를 혼성적으로 변주한다. 그리고 문화적 전형성과 예외성 사이를 오고가면서 관객들이 고정된 정체성과 유동적인 정체성의 사이 내(in-between)공간에 머물며 타자성에 대한 신뢰를 재고하기를 요청한다. 이는 단지 이항 대립관계를 뒤집어 주체들의 위치를 맞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횡단하는 과정 속에서 양쪽의 어느 지점도 아닌 유동적인 제3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변위(transpositions)의 단계로 나아가는데 기여한다.



각주/문헌


(1)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 『테마 현대미술 노트 : 1980년 이후 동시대 미술 읽기- 무엇을, 왜, 어떻게』, 문혜진 역, 두성북스, p.72. 참고.

(2) 치카노는 미국에 사는 멕시코 이민자와 그 후손을 지칭한다. 멕시칸 아메리칸 또는 멕시코계 라티노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멕시칸 아메리칸은 미국인으로 동화된 멕시코계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치카노는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하의 의미를 담는다. 시민권 운동 과정에서 치카노라는 용어에 담긴 비하와 경멸의 의미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과 인종적 정체성을 긍정하는 자기 확인의 표현으로 재규정되었다. 임상래, 이담,『라티노와 아메리카 : 라티노, 히스패닉, 치카노 그들은 누구인가?』, 어울누리 학술연구 15, 2013. p.39~43.

(3)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사상자 수에 있어서 치카노가 현저하게 높은 비율을 기록한 것에 대한 불만과 함께 LA 동부 지역의 표준이하의 정규교육 시스템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당시 멕시칸 아메리칸의 전체 인구의 1/4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가필드 고등학교의 유급률은 전국의 최고였으며, 59%의 학생들이 전체 커리큘럼을 완전히 이수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1968년 미국에서 가장 광범위한 바리오 지역인 동부 LA의 다섯 개 고등학교의 학생 1000명이상의 들이 표준이하의 교육체계에 대항하여 거리에 나왔다. 이후 시 당국은 대규모 시위 이후 치카노를 공적 영역 외부로 몰아내고 이들 간의 소통을 차단하기 위한 징계적인 조치로 준군사상태의 경찰을 배치하여 치카노가 공공장소에서 회합하고 활동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했다. C. Ondine Chavoya. “Orphans of Modernism: The Performance Art of Asco", Corpus Delecti - Performance Art of The Americas : Coco Fusco(ed),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2000, p.241. 

(4) 김진아, "20세기 말 미국의 라티노/라틴아메리카 미술전시-변화양상과 쟁점", Revista Iberoamerica 23.3(2012), p.118, 참고.

(5) 메스꺼움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6) Marvin Carlson, Performance : a critical introduction, Routledge New York and London, 2004, p.180-182, 참고.

(7) C. Ondine Chavoya(2000), p.252.

(8) 라틴아메리카의 퍼포먼스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을 보인다. 가톨릭에 기반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식의 성격을 띠거나 대중문화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패러디를 사용하고 카니발리스크적인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반제도적이고 반전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Coco Fusco(2000), "Introduction: Latin American Performance and the Reconquista of Civil Space", Corpus Delecti - Performance Art of The Americas : Coco Fusco(ed),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2000, p7. 참고.

(9) 푸스코는 초기의 퍼포먼스 활동에서 퍼포먼스 작가이자 이론가인 고메즈-페냐와 여러 설치작품, 퍼포먼스와 해적 라디오 방송 작업을 함께 만들었다. 푸스코는 퍼포먼스 미술가이자 이론가로서 샌디에고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고메즈-페냐를 뉴욕의 춤연극워크샵 컨퍼런스에서 1988년에 만났다. 그 이후 라디오방송 <라디오해적: 콜럼버스는 나가라(RADIO PIRATA: COLÓN GO HOME!)>(1992-1993), 퍼포먼스 <북 : 남(NORTE: SUR)>(1990) 등과 라티노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생산하는 파트너쉽 관계를 이어갔다. 이들의 협동작업은 1995년까지 지속되었고, 그 이후 각자 독립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다.

(10)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만큼 많은 라틴아메리카와 라티노 미술전시가 개최되었다. 김진아(2012), pp.114, 참고.

(11) 김진아(2012), pp.113, 참고.

(12) Mary Ellen Croteau, "“Coco Fusco”. In The Latina Artist: The Response of the Creative Mind to Gender, Race, Class and Identity", Exh. cat., New Brunswick, NJ: The Center for Latino Arts and Culture, Rutgers,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 1998, p.20.

(13) Jean Fisher, "Witness for prosecution: the writings of Coco Fusco", the bodies that were not ours - and other writings : Coco Fusco,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inIVA, 2001, p.228. 

(14) 헬렌 길버트, 조앤 톰킨스, 『포스트 콜로니얼 드라마 : 이론, 실천, 정치』, 소명 출판사 , 문경연 역, 2006, p. 33.

(15) 소설이나 시에서 표현되는 의미와는 달리 공연 중에 코드화 된 의미와 지식이 소통하는 다양한 층위들은, 독자적으로 혹은 다른 것들과 결합하면서 제각각 대항 담론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공연에서 소통 가능한 기호학적 약호에는 의상, 세트 디자인, 극장 설계(공간 설계), 조명, 음악, 안무, 사투리와 억양을 포함한 구두 언어와 몸짓언어, 배역 선정 등과 이 외에 여러 텍스트 외부적 요인들, 즉, 역사적 맥락, 유명 스타들의 출연료 등과 관련된 경제적인 요소 등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어떤 장면을 연출하거나 인물의 의상을 선택하는 것은, 패러디를 통해 일반적인 규범을 전복하든 보통 지배적인 문화에만 특권화 되었던 재현의 기호를 전유하든 간에, 정전 텍스트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부가적인 다른 층위를 제공할 수 있다. 정해진 대사와 종결된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공연 기호들과 맥락을 조작하는 것만으로 원래 대본에서 이미 결정되어 버린 권력 구조를 얼마든지 생산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앞의 글,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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