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자들에게 온다”는 식상한 말.
너무나 진부한 말이고1+1=2 라는 공식처럼 당연시 되지만 최근 큰 화제였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준비 된 사람만이 어떠한 기회가 왔을 때 온 몸을 던지면서 그것을 낚아 챌 수 있다. 준비가 미미하게 되어있으면 기회가 와도 그게 기회인지 모를뿐더러 영리한 기회는 나를 피해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뒤돌아보고 나서야 그게 기회였구나! 하며 그 티켓이 적격자로 지목된 타인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 프로그램에서 세미 파이널까지 간 한 댄서가 울면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참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좋아서 그냥 춤을 춘 것뿐이다. …… 목표를 세우면서 하면 그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괴로움이 크다. 그래서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서 했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댄스라는 장르가 대중문화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가수들을 뒷받침 해주는 춤꾼으로 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간혹 유명 가수들의 안무가 화제 되어 미디어에 노출되고 유명세를 떨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며, 댄스라는 장르를 통합적으로 예술이라는 스펙트럼으로 옮겨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현저히 적었다. 특히 여성 댄서들에게 이런 기회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2021년은 그들에게 모든 끼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고 그들은 지금까지 하던 데로 그 무대에서 놀았으며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준 것이다.
미술에서도 스우파 여성 댄서들이 조명을 받은 것처럼 재조명되며 사랑받게 된 여성 아티스트들이 있다. 여성 작가들의 존재나 작품 세계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지는 불과 몇 년 안되었다. 유명 작가의 여자 친구, 부인, 모델, 등 파생된 존재로 흥미거리로만 여겨졌는데 이들의 작품들을 보게 되면 왜 역사 속에서 드러날 수 없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
1. 선이 굵은 묵직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바로크 하면 바로크 건축이 생각날 정도로 웅장하고 선이 굵은 곡선과 큰 덩어리들의 무게 감이 매우 인상적이다. 장식과 구조물의 대비 감이 높고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들이 역동적이라 당시 왕권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탁월했다.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의 작품을 보면 당대의 권력과 역동적인 드라마가 고스란히 잘 전해진다. 감히 이 작품이 여성이 그렸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자비한 이미지들이 재현되었다. 사실 젠틀레스키는 실력이 뛰어났지만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티스트 커뮤니티에서 배척당하고 후원자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미술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결국 여성 최초로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그녀의 대표작 <홀로페르네스와 유디트>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 듯 젠틀레스키의 작품은 여성의 기강과 용감무쌍함을 보여준다. 똑똑한 두뇌와 용맹함은 대부분은 재현된 남성의 이미지에 드러나지만, 젠틀레스키는 이러한 스포트라이트를 여성 인물에 실어준다. 마치 연극 속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클라이맥스 장면을 진땀 흘리며 보게 만드는 것 처럼 그녀가 그린 인물들은 과장된 몸짓과 무게감 있는 서사가 특징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 <홀로페르네스와 유디트>
2. 여성의 부드러움을 무기로 사용하는 아델레이드 라빌 기아드 Adélaïde Labille-Guiard
아델레이드 라빌 기아드는 18세기 프랑스 여성 미술가들이 거의 전무하다고 여겨진 시기, 비제 르뷔륀을 포함해 유일하게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받아들여진 작가이다. 여성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초반에는 미니어처 초상화와 파스텔로 그림을 익히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자신의 작품 활동에 힘쓰는 동시에 여성으로서 프랑스 혁명 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한발 앞서는 혁명가이자 교육자였다. 복고 왕정의 몰락과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격변으로 인해 대부분 많은 예술가들은 망명을 택했지만, 그녀는 파리에 남으면서 새로운 후원자들의 환심을 사며 최초 국회 멤버들의 초상화들을 그렸다.
라빌 기아드의 대표작 <두 제자와 함께한 자화상> 은 실제 인물의 크기를 옮긴 듯한 대작이다. 이 작품은 살롱에 출품 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 기회를 통해 여성도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양성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갖춘 다는 것을 정치적 이미지로 보여준다. 누군가의 서브 형태로 도움을 주는 조연이 아닌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아델레이드 라빌 기아드 <두 제자와 함께한 자화상>
3. 150 cm의 거인,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프랑스 출생으로 대형 스케일의 조형 작품을 만드는 페미니즘 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지레 겁을 먹을 정도로 거대한 거미 형상을 한 <엄마 Maman> 조각품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70이 넘은 나이에 무명 예술가에서 인정 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는 수학을 좋아했던 수학 학도의 길을 걸었고 수학의 절대적인 불변의 공식에 매료 되었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수학을 그만 둔 후 파리 예술 대학교를 입학해 미술로 전향했다. 자신을 지켜주던 어머니의 부재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공포감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자신의 내면 치유의 일종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그녀가 작업을 끊임 없이 할 수 있었던 계기는 현실의 두려움을 거부하기보다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9미터 높이가 훌쩍 넘는 은 테피스트리 직조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케 한다. 부르주아 기억 속 어머니는 거미 처럼 똑똑하고 자기 자식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강인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 <엄마 Maman>
4. 우아하고 심플한 몸짓의 브리짓 라일리 Bridget Riley
브리짓 라일리는 영국 출생 옵 아트 (Op Art)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단순하고 심플한 기하학적 도형을 배열하여 평면에서 다이내믹한 시각적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필자의 안구를 움직일 때마다 작품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라일리가 초반부터 이렇게 심플한 시각적 언어를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기법인 점묘법 같은 회화 작을 했었지만,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지속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자 하는 주제나 대상을 보고, 인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 문제점을 다시 처음부터 직시하며 도형의 가장 기본인 사각형, 정사각형, 삼각형, 원형 등 심플한 도형들을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색이나 도형의 배열에 따라 추상적인 움직임을 만들지만, 그 속에서 흐르는 강물,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 남녀의 키스 등을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이후 색채 조합을 공부하고 점차 다양한 색들을 중첩 시키며 입체 공간, 인테리어의 내벽에도 그녀의 작품을 채워나갔다.
브리짓 라일리
5.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하는 함경아
작가 함경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자수라는 기법으로 거대한 샹들리에 시리즈를 제작한다. 자수 샹들리에 시리즈는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에 대한 간극을 보여준다. 전시 조명 아래 전시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실제 샹들리에 만큼이나 눈부시고 그 스케일에 압도되어 버린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한 땀씩 떠져 있는 실들을 관찰 살 수 있게 된다. 마치 컴퓨터 픽셀들이 모여 우리가 이미지를 인식 하듯, 함경아의 샹들리에는 가까이서 보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 숨어있다. 이 작품은 그녀가 북한의 카드 섹션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기계처럼 조작된 듯한 한 치의 오차도 찾아 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퍼포먼스를 대표한다.
자수라는 영역은 북한에 특화된 노동집약적인 예술이라 볼 수 있다. 함경아는 작품 제작을 북한의 자수 노동자들에게 맡긴다. 밀착된 관계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대부분 구현할 이미지를 보내면 1년 이상이 걸리는데 이러한 과정도 작품의 일부분이다. 또한 작품이 남쪽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몇개는 실종되기도 한다고 한다. 오래 세월이 걸리기도 하고 불특정 노동자에게 맡기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그 불확실함까지도 작품에 녹여낸다.
스우파에서 땀을 흘리며 열정적인 춤사위를 펼치는 댄서들을 보며 미술 분야에서도 이 만큼의 열정을 작품으로 증명 하는 여성 작가들이 무수하게 많이 떠올랐다. 위 5명 이외 생각나는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점점 여성 작가들의 재능이 더 세상에 많이 보여지고 해석되며 전시장에서도 많이 볼 수 있길 바래본다.
함경아 출처: 뉴욕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