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많은 영상물과 사진물, 기록물들을 분별해 내면서 내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미디어 속에서 보낸다. 콘텐츠는 넘치고, 모든 것을 볼 시간은 없기에 사람들은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나한테 맞는 관심사를 귀신같이 찾아서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 덕에 어느 순간부터 미술 작품 역시나 영상 속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 전시가 어떤지, 이 작가의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누군가가 제작한 영상을 통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미술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서칭을 할 필요도, 미술관과 아트페어에 방문할 필요도 적어진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에서는 수많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고, 청년작가들은 도시를 작품으로 꾸며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반 관람객들을 휴대폰 속이 아닌 미술관에서, 공원에서, 도시 곳곳에서 만난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에서는 가을을 맞아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Freiburg Artfair(프라이부르크 아트페어)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되었는데 2020 아트페어에 1500명의 관람객이 참석한 만큼 2021 아트페어도 그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아트페어는 미술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고파는 대규모 미술장터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 ‘아트 바젤(Art Basel)’이 아트페어의 대표적인 예시다. 전 세계의 미술 동향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아트 바젤은 9월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동시에 개최했으며 아트 바젤답게 아트페어 기간 동안 스위스 바젤은 전 세계의 관람객과 컬렉터들을 맞이했다. 아트페어 기간이 되면 스위스 바젤은 아트 바젤이 열리는 Messe(박람회장)를 중심으로 온 도시가 예술의 도시로 바뀌며 주변 미술관들도 아트페어에 맞춰 마감 시간을 늦추고 하루 종일 미술관의 문을 열어두는 등 축제에 동참한다. 굵직한 각국의 아트페어 이외에도 지역별로 개최하는 아트페어도 큰 사랑을 받는데. 최근 들어 MZ 세대들의 미술작품 구매 빈도가 증가하면서 작은 규모의 아트페어에서도 꽤나 많은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그들이 미술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다는 말이 이제는 농담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프라이부르크 아트페어에서는 60명의 예술가들이 심사위원과 전문 자문 위원에 의해 선정되었고 초대된 예술가들은 프라이부르크에서 살거나 태어났거나, 혹은 이곳에서 공부하거나 오래 일했기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와 개인적으로 관련이 있다. 60명의 예술가들이 현장에 상주하며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덕분에 관람객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 뒤에 있는 작가까지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작품에 보다 더 깊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2021 아트페어에는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초청되었는데 이들로 인해 프라이부르크 아트페어는 현대 미술 판매 및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이 아트페어를 통해 수많은 관람객을 만났는데, 프라이부르크 아트페어는 작품 판매와 관련하여 작가와 도시가 갤러리와 경쟁하지 않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신생 작가들 역시나 일반 관람객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아트페어 이외에도 프라이부르크 현대미술관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예술 재단의 협력 프로젝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Ping Pong’이란 이름으로 도시 전체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프라이부르크의 청년 작가들은 미술, 음악, 공연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데, Ping Pong이라는 주제에 맞게 작품은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프라이부르크 도시공간을 장식한다. 미술관의 벽이 아닌 기차역의 전광판과 광고 기둥 등을 무대로 그들의 작품을 약 두 달간 감상할 수 있고 공연과 콘서트 역시나 공원의 임시 무대에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과 소통한다.

탁구라는 것은 공정하면서도 역동적인 스포츠로 그의 모양새가 끊임없이 바뀌고 움직인다. 미술재단은 젊고 떠오르는 미술가들을 장려하는 한편 미술관은 청년 작가들이 도시의 주요 미술관을 통해 많은 관람객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가시성을 제공한다. 이들은 탁구공 놀이처럼 미술관과 도시의 모양새를 끊임없이 바꿔가면서 그들이 일반 관람객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커피를 마시러 가듯이, 집에 가는 길에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소통하는 문화의 장이 국내에도 많아지기를 바란다. 집에서 조그만 핸드폰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위드 코로나 시대에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청년작가들과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소규모의 아트페어부터 즐겨본다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기보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일상’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집 동네에서도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예술 형태는 서울에 몰려있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은 미술 작품의 구매를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규모의 아트페어나 도시 미술을 통해 이런 사치품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부담스럽지 않게, 일반 시민들도 예술 작품과 쉽게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처럼 한국도 소도시 자체가 청년 작가들과 신진 작가들의 무대와 관람객과의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