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광파 (plein-en-air)라고 불리던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이 작업하기 좋은 봄 계절이 다가왔다. 겨울 잠자고 있던 꽃들은 봉우리를 틔우고 새싹은 힘차게 흙을 뚫고 나오며 봄맞이 준비를 한다. 피크닉을 가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 인상주의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부지발 (Bougival) 이라는 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벨 에포크 시절 이 소도시는 “인상주의의 요람”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19 세기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도시 근처 인상주의의 화가 클로드 모네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좋아하던 장소가 있다.
바로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의 르 그르누이에흐 (La Grenouillère)이다.
센느 강의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곳이며 물 위를 떠다니는 레스토랑과 선착장이 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영, 목욕, 뱃놀이, 낚시 같은 야외 활동과 술 한잔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인기 만점인 장소였다. 당시 교통 및 철도 산업의 발달로 기차를 타면 편하게 다닐 수 있었기에 파리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외각으로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다. 사회적 계층의 구분 없이 남녀노소 모이는 장소이니 사람 구경 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곳이다.
르누아르와 모네가 좋아하던 스팟 장소가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듯 동그랗게 생긴 모양 때문에 ‘까망베르 치즈’ 라고 불리던 조그만 섬이 보이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그다지 특별해 보일 거 없는 자연 풍경인데 어떤 특별함이 모네와 르누아르를 이 곳으로 오게 한 것일까? 당시 인상주의 작가들이 관심있어 하던 주제들은 자연 풍경,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일상모습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곳은 종합선물 세트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좌) 개구리 연못 풍경 우) 프랑스 부지발(Bougival) 풍경
두 화가가 그린 이 연못의 풍경을 비교해서 보면 비슷하면서도 서로의 다른 관심사가 상이하게 반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로드 모네, 개구리 연못 La Grenouillère, 1869
출처: The MET
모네의 작품: 햇빛에 반짝이는 움직이는 물결이 특징이다.
1869년 작 클로드 모네의 <개구리 연못>을 보면 클로드 모네가 빛에 의해 형성되는 음영, 사물과 인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자연이 일깨우는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물을 사랑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작품의 2/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강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반짝이고 있다. 물결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 빛에 닿는 물 표면의 일렁이는 움직임을 짧은 붓 터치로 그려낸다. 사용한 물감을 자세히 해체해서 보면 검은색과 갈색 조합의 진한 선, 중간 톤의 파란색 선 그리고 제일 밖은 부분에 노랑과 흰색의 터치 감이 보인다. 색들의 배합은 단순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라인이 나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다섯 발자국 뒤에서 보면 물결의 파동이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시기에 그린 르누아르이 작품은 어떨까?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개구리 연못 La Grenouillère, 1869
출처: National museum Sweden
모네가 풍경과 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반면 르누아르의 작품은 인물들과 패션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르누아르 역시 이 장소에 대한 애정이 컸고 모네와 함께 동행했을 때 그렸다.
모네가 동료 작가 바질에게 쓴 편지를 보면 르누아르도 얼마나 이 장소에 대한 환상과 작업에 대한 열망이 컸는지 알 수 있다.
“난 ‘개구리 연못’ 풍경을 그려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 그래서 좀 엉망인 스케치들을 해 놓은 게 있는데 우선 희망사항이야. 여기서 두 달 보낸 르누아르도 이 회화 작업을 해보고 싶어해” (모네의 편지 1869년 9월 25일)
(르누아르의 작품: 크기는 작아도 돋보이는 인물 개개인의 화사한 복장과 즐거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르누아르의 특기이자 작품의 매력은 모든 인물들을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으로 그려 미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에서도 인물이 자연 풍광보다 더 화사하게 돋보인다. 옹기 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복장에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빨간 리본을 머리에 묶은 여인, 그 옆에 잘 보이기 위해 검은 정장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신사, 그리고 앉아있는 여성의 화사한 노란 드레스와 빨간 모자 등 인물들의 패션에 대한 센스가 멀리에서도 보인다. 인물 개인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이 그림에 시선을 조금 둔다면 뒤편에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모자를 쓴 부르주아 여성이 양산을 쓰고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도 포착할 수 있다.
르누아르의 관점에서 나타낸 강물, 선착장의 배와 무성한 숲은 인물들을 받쳐주는 소품과 배경 역할을 하고 옹기종기 몰린 사람들의 왁자지껄 담소 나누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확장되며 들리는 듯 하다. 확연히 모네가 그린 작품과 다른 느낌이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법이 참으로 흥미롭다. 르누아르와 모네가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끼고 해석하는 방향성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꽃샘 추위는 사라지고, 두꺼운 옷을 벗고 다닐 수 있는 봄기운이 만연한 날이 올 것이다. 바이러스와 온갖 제약으로 인해 요즘의 나날들이 답답하지만, 벨 에포크 시절 인상주의 작가들처럼 각자가 느끼고 싶고 보고 싶은 관점으로 올해의 봄을 힘껏 느껴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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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Michael Wilson, ‘From Plein-en-air to Impressionism: Monet at La Grenouillere’, Technical Bulletin Volume 5, 1981.
-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37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