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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조화 속으로 | ARTLECTURE

균형과 조화 속으로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Picture Essay/
by 이지아
균형과 조화 속으로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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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작품 안의 수많은 점은 모두 제각각의 색을 내지만 결국 전체의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외로운 점으로 존재한다. 각자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삶은 캔버스 위의 다채로운 색만큼이나 제각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다른 요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작품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을까?...

업무상 미팅이 있어 한 시간가량의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둘째 아이를 가지려고 아내와 한참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대표님이 내게 물었다.

 

육아가 힘들기는 한가 봐요. 아내가 도무지 설득이 안 되네요.

지아 씨는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뭐에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집에 오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낳고 내 삶이 완전히 바뀌긴 했는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뭘까?

 

 

낯선 이름, 엄마

마흔이 되던 해에 뒤늦게 엄마가 됐다. 10년 이상 하루 세잔 이상 마시던 커피, 짙은 화장, 내 자존심이라 여겼던 굽 높은 구두…….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일일이 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 졸이는 열 달이 흘러 2017.11.19. 드디어 딸아이가 태어났다. 3.19kg의 매우 건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내 육아는 퇴원한 첫날부터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노산 탓인지, 출산 과정이 힘들어서인지 모유 수유부터 쉽지 않았다. 분유 타기,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평소 아이는 물론이고 타인의 삶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결과였다. 이제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기분이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몸으로 밤새 우는 아이를 안고 엉엉 울며 일주일이 흘렀다. 5평 남짓한 내방에서 나와 아이만 세상과 동떨어져 사는 기분이었다. 사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답답한 마음에 산부인과로 전화를 했다.

 

아이가 1시간 간격으로 깨요. 뭔가 잘못된 건가요? 어쩌면 좋죠?”

간호사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원래 그래요. 신생아들은 1시간~1시간 반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합니다. 당분간 그럴 거예요~”

 

원래 이렇다고??? 모든 여자가 이렇게 아이를 키운다고???’ 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백일이 지났고 내 몸도 아이도 서서히 적응되어갔다. 아니 돌이 다된 지금도 적응을 하는 중이다. 출산 이후 나의 관심은 9할이 육아가 되어버렸다. 여느 엄마들처럼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아이가 되었다. 집의 가구 배치, 장바구니 리스트,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전부 아이가 정해버린다. 이렇게 나는 내 삶으로부터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박탈감과는 별개로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 처음엔 초점도 없는 눈으로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일 년이 다된 지금은 옹알이든 몸으로든 의사 표현이 가능하며 걷고 눈치 보고……. 심지어 특별한 생각이 있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볼 때도 있다. 일 년 새 아이는 서서히 사람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그렇다면 난? 나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아직은 엄마인 것이 어색하지만 나에게도 아이의 변화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주변을 향한 관심과 여유,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것이다우연히 신문 칼럼에서 본 글이다. 그렇다. 아이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인간적인 성숙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책이나 글 혹은 엄마의 잔소리가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분명 익숙했던 작품인데 아이를 낳고 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그림이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1884-1886, 시카고 미술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작품이다.

그랑자트는 큰 접시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파리 북서쪽에 있는 긴 접시 모양의 섬이다. 1876년 증기선이 정기적으로 운행되면서 19세기 파리지엥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센강의 시테라라 불리기도 했다. ‘시테라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섬으로 센강의 시테라는 매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품 속에는 동행 없이 혼자 나온 여성들이 눈에 띈다. 특히 강가에서 낚시하는 여인은 물고기가 아닌 다른 것을 낚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낚시는 매춘부를 연행하는 경찰을 속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을 것이다.


 

 


또한, 작품에는 원숭이가 한 마리 등장하는데 애완용으로 원숭이를 키우는 일은 지금도 매우 드문 일이다. X선 투시 결과 특이하게도 원숭이만 밑그림이 없었는데 이는 작가가 그림을 완성한 후 마지막에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학자들은 암컷 원숭이는 매춘부를 뜻하며 원숭이를 데리고 나온 여성을 코케트 즉 상류층 정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엔 작품의 크기에 압도되고, 다음엔 무수히 많은 점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2년간 가로 3세로 2의 대작에 두 번이나 점으로 화면을 채우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팔레트에서 색을 섞은 후 캔버스로 가져가는 방식을 버리고 직물에 수를 놓듯 캔버스 위에 원색 그대로 찍어서 그렸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점들을 서로 이웃되게 나란히 병치시킨다. 가까이 보면 무수한 점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원색의 점들이 혼색 된 것으로 보이는 원리이다. 즉 우리의 망막에서 색이 섞이는 것이다.


 

 


특히 화면 중앙의 잔디는 마치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 수백 수천 번 붓질해야 했다. 화가는 이렇게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색깔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점묘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화면 중앙에 흰옷을 입은 아이만 정면을 응시하고 점묘법으로 그리지 않았다. 이는 색상환 표의 중심을 이루는 흰색과 같은 효과를 의식한 듯하다.

 

하지만 대작을 그리기에 작업실이 워낙 좁고 가스등 불빛으로 인해 자신의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기가 어려워 실패한 부분도 많다. 또한, 당시는 물감품질이 불안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변색 되었다는 점과 당대 색채이론의 오류인 영향도 있다.

 

 

, , 우리

무수한 점들을 보며 문득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작품 안의 수많은 점은 모두 제각각의 색을 내지만 결국 전체의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외로운 점으로 존재한다. 각자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삶은 캔버스 위의 다채로운 색만큼이나 제각각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다른 요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작품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을까?

엄마가 된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 그리고 타인을 위해 나의 작은 부분일지라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꽤 냉소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이었다. 남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타인을 그렇게 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주기적으로 고개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주변을 둘러본다.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현재 위치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이 나를 바꿀 수 없듯, 나도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엄마가 되면서 늘 찌뿌둥한 몸으로 아침을 맞는다. 온종일 집안일과 아이 뒤치다꺼리에 개운할 날이 없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없지만, 여유 있게 사람을 대할 수는 있다.

육아는 아이와 나, 모두를 키우는 일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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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_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하며 겪었던 일상과 예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수 있는지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