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빛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김태연은 온라인 환경에 드러난 사람의 이미지들과 정보를 조합하여 인터넷 공간의 형태에 맞게 변형된 동시대 인간을 그려낸다. 기술의 발달은 계층에관계없이 정보를 공급받는 속도를 빨라지게 했고 소통에 있어서 물리적 거리를 축소시키며 편리를 가져왔다. 이로써 인터넷 이전 시대의 불편함이 지니던 절차와 시간이 생략되었고 온라인에서 상대방에게 보이는 자신의 정보 역시 실제 육체와 관계없이 식탁에 오르는 고기처럼 손질된 채 공개된다.
멀지 않은 지난날 인터넷 초기 가상의 공간에 몰두하는 인간은 육체를 초월한 상태로 존재했다. 실제 만남에서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감각들이 유발하는 논리적이지 않은 분위기는 잘려나가고 화면에 보이는 언어가 곧 자신이다. 하지만 오늘날로 다가올수록 공감각적 정보는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사람들은 자신의 자격지심이나 욕망이 투사되어 왜곡된 자화상을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고 여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신체기관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자신의 다듬어진 모습을 타인에게 선보이고 자극적인 관심을 얻기 위해서 다시 매력적인 외형과 운동으로 단련된 육체가 필요하기도 하다. 인간성이 압축되고 소비되기 위해 가공되는 시대의 사이에서 김태연은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효율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우스꽝스럽게 재현한다.
작가에게 있어 회화는 의미가 흐릿해진 육체를 되새기게 해주는 통로이다. 화면 속 광경을 받아들인 인간의 모습은 척추가 휘고 등과 어깨가 굽고 가느다란 팔다리에 배가 나온 모습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람의 신체구조가 지닌 자연스러운 특성과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도구를 거쳐 화면에 그려진다. 작품의 표면을 긁고 지나가는 붓질은 방향이나 속도 등 모든 면에서 서버의 상태나 신호의 세기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작가 자신의 의지를 투사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선들로 이루어진 그리드(Grid)는 인물의 형태와 겹쳐지며 디지털 이미지의 단위인 픽셀처럼 작품을 분할하고 때로는 형태에 개입하기도 한다. 신체기관을 드러낸 인물의 모습은 가상공간에 녹아들어 필요에 따라 분열되고 왜곡되는 인간의 정체성인 동시에 사람이란 원래 무엇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 역설한다.
디지털 소통방식에 존재하는 핑(Ping)은 시간차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소통방식의 성질과 닮은 부분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시간차는 사람에게 주는 기다림에는 인내와 간절함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전의 침착함이 포함되어있지만 디지털 시대의 시간차는 찰나의 가벼운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김태연은 찰나의 지연이 용납되지 않는 쾌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회화라는 잠시 동안의 느린 속도를 제공하며 이미지를 소비하는우리의 육체를 느낄 수 있도록 꼬집는다.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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