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지를 보지만, 그 이미지가 남긴 감정의 밀도는 쉽게 보지 못한다.” 김성룡의 회화는 익숙한 현실의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 위의 형상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장면 뒤에 남아 있는 감정의 기류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드러낸다. 그의 회화가 묻는 것은 무엇이 보이는가가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에 가깝다.
그의 작업은 반복적인 붓질과 축적의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화면은 단순히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흔들리고 유예된다. 분명했던 형태는 서서히 흐려지고, 경계는 풀어지며, 선과 색은 점차 독립된 정보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적 밀도로 응축된다. 그 결과 화면 속 이미지들은 명확한 설명을 거부하면서도 더욱 강한 현존감을 획득한다. 이는 회화를 재현의 평면으로부터 지각의 경험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현실의 외관이 아니라, 현실을 통과하며 축적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내면의 진동이 응결된 심리적 풍경에 가깝다.
동시대 구상 회화가 종종 이미지의 확장, 서사의 강화, 혹은 사회적 알레고리의 생산을 통해 동시대성과 관계 맺는다면, 김성룡은 그보다 한 걸음 뒤에 남는 것을 붙든다. 사건 이후의 공기, 말해진 뒤에 남는 침묵, 지나간 장면이 감정의 형태로 침전되는 시간. 그는 화면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부에 머무는 정동의 층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 점에서 그의 회화는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 것에 앞서, 장면이 지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내면의 진폭을 가시화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서정적인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과잉된 정보와 즉각적인 반응이 지배하는 시대에, 감정의 체류 시간을 회복하려는 회화적 실천에 가깝다.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시각 환경 속에서, 그의 화면은 속도를 늦추고 감정이 머무는 시간을 회복하게 만든다. 김성룡의 회화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해, 그 아래에 놓인 보이지 않는 층을 끌어올린다. 화면 속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정들이 공존하는 밀도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가능하게 하고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감각의 층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김성룡의 회화는 대상을 단정하기보다 그 대상 아래에 잠재한 정서의 지형을 드러내며, 무엇이 보이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이는 물질성과 감각, 그리고 인식의 경계에서 예술의 역할을 탐구해온 THEO의 큐레이토리얼 방향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이 전시는 이미지의 표면을 넘어, 그 아래에서 오랫동안 침전되어온 감정의 시간을 바라보게 하는 자리다.
김성룡의 그림은 명확한 결론 대신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대상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 대상을 가능하게 만든 감정의 잔향인가. / T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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