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은 ‘여기까지 왔네요’다.
이 문장을 듣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내’가 아닌 ‘타자’, 혹은 타 자화된 ‘내’가 ‘어떤 곳’에서 ‘여기’로 온 상태다. 이 문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온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에 온 사람, ‘여기’에 온 사람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나, 그리고 타인, 그리고 떠나온 공간, 이동의 시간을 동시에 상상해야 한다. ‘여기’로 오기 위해 다른 ‘여기’는 상실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는 상실과 재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공간이 된다.
전시를 꾸리는 얌스 레지던시의 12명의 작가들의 작품도 이 맥락과 유사하다.
나와 타자가 ‘여기’에서 만난 것처럼, 작가들은 ‘연결’에 집중한다. 몸짓의 언어로 상호 대화하거나, 계단 밑에서 뽑기를 뽑고, 계단 위에서 뽑기를 돌려보내 내가 넣은 뽑기를 다시 누군가가 뽑을 수 있게 하거나, 나의 고민을 ‘별일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타자화 된 나, 혹은 타인이 존재하거나, 이미 사라진 인류를 재생시키기도 한다.
어떤 것을 재생시킨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문자언어가 상실한 세계에서 몸짓으로 언어를 재생시키거나, 어떤 ‘사건’을 문자로 복원시켜, 다시 별일 아닌 일로 재생하 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10년 동안의 꿈을 기록을 언어로 재구조화시켜 2024년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로 재생시키기도 한다. 실의 연결과 연결로 형태를 만들어가는 뜨개 작업은 이 실에서 저 실로 대체되는 작업이자 대체와 동시에 상실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누군가 ‘여기’로 오기까지의 이동의 경로와 시간을 우리가 상상하듯이 나의 선택으로 만나지 못했던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갈래들에 형태를 입히기도 한다. 이 상실에 대한 재생의 작업은 지금은 사라진 인류의 형태를 복원시키거나, 별일에서 별일 아닌 것으로 재탄생되는 것과 같이 재생과 동시에 애도를 표하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이 애도의 작업은 아주 멀리 돌아 과거로, 그리고 미래로, 나에게 오지 않았던 가능성으로, 예 언으로, 별일이 아닌 것으로 관객들을 마주한다.
여기까지 와주신 사람들을 상상한다. 따뜻한 커피가 있는 공간에서 우리의 순환의 과정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 잡아 ‘여기’에서 다른 ‘여기’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여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참여 작가
고혜진, 김기석, 김영탁, 김지연, 김청아, 김현정, 박은지, 박지형, 이무진, 정유리, Yams(엄효빈, 조시안)
기획: 박지형,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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