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들뜸과 넓게 드리우는 파문
황지원
천문학 용어인 ‘충돌 들뜸(Collisional excitation)’ 현상은 입자와 원자가 충돌할 때 에너지가 전달되면서 약간의 들뜸이 일어나는 상황을 일컫는다. 원자는 들뜸 상태에서 곧바로 가라앉기도 하고, 광자를 방출하기도 하는데 광자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분광선 스펙트럼이 생성된다. 이 현상을 삶에 대입해 보자면, 주체란 ‘들뜸’을 통해 ‘이질적인 무언가’에게 받은 에너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들뜸은 삶에서 잠깐이지만, 그로 인한 파문은 삶 전반에 무한하게 퍼진다. 충돌 이후의 주체는 이전과 또 다른 삶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경유해, 본 전시에서는 자아가 자기 외부의 타자적인 것들과 마주할 때에 거치는 충돌의 과정에서 외부를 새롭게 흡수-재정립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삶의 감각들을 직시해 보고자 한다.
최윤영은 삶의 전반에 난무하는 ‘이질적 상태’(충돌)로 인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온전하지 않은 정착 즉, ‘일시적 정착’ 상태의 다면성을 회화, 오브제 설치, 드로잉으로 표현해왔다. 특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고정된 풍경>, <돌아보았더니 뒤로 물러나는 바람만이>에서는 뚜렷한 하나의 이미지보다는 충돌하는 이미지들이 여러 겹으로 표출되어 있다. 서사적 측면에서도 경험/상상/신화적인 이야기가 동시에 출몰하여 관객이 이미지를 보았을 때 여러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작가에게 ‘일시적 정착’을 통해서 감각하는 총체적인 ‘풍요로움’과 ‘상상력’이 주요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한편, 작가는 이번 신작 드로잉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알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과 캄캄하게 보이는 열린 창문 틈새라는 빈 공간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전 작업인 <걸려있는 날>보다 여백이 꽉 채워진 프레임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작가는 “여백의 자리를 상상할 수 있게 된 지금에서야 꽉 채울 수 있음을 스스로 직시하며” 신작 드로잉 시리즈를 선보인다.
한윤진은 ‘정동’과 ‘변용’이라는 개념을 경유하여 개인과 타자적인 것의 관계를 천착해왔다. 특히, 주체에게 타자는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서로를 위한 마음인 ‘염원’이라는 감정을 눈여겨본다. 염원을 기르는 의례로써 축제에 주목한 작가는 <원인감싸기-7 : 축제>에서 스웨덴 하지축제 미드소마(Midsummer's day)의 상징물인 미드솜마르를 천으로 감싸낸 것처럼 형상화하였다. <원인감싸기-6> 또한 같은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분명히 천이지만 플라스틱처럼 뻣뻣하게 굳어진 독특한 물성과 그것이 지닌 칠흑 같은 검정을 보고 있으면이내블랙홀에빠지는것만같은 아득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작가가 생(生)에서 유한함이 인지되지 않음을 인식할 때 느끼는 ‘아득함’이라는 감정과 상통한다. 나아가 이번 신작에서는 자/타자 간의 충돌이 내뿜는 쪼개짐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직조된 것인지 탐구하기 위해 죽음과 제례에 주목한다. 작가는 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사물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고 시신을 하나의 사물로 인식한다.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살아있음의 감각이 충돌하는 역설적 순간의 감각과 장례에서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히는 염(殮)하는 과정을 숙고하여 동일한 신체임에도 변화되는 존재론적 차이를 탐구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제껏 구축해온 나만의 세계가 파괴되는 사건을 경험하곤 한다. ‘충돌’이라는 현상은 각기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서로 부딪히는 사건을 말하며 주로 갈등, 대립과 같이 개인의 삶에 출몰한 크고 작은 아픔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과연 충돌은 부정적인 사건에 불과한 것일까? 그 충돌로 인한 여파는 우리 삶에서 계속해서 작동되는 것은 아닐까? 앞서 두 작가가 각자의 삶에서 나타난 충돌을 다채롭게 사유한 것처럼 우리들도 자신과 충돌한 타자, 사건, 그것과 충돌한 시점과 상황을 무한히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복할 때마다 넓게 퍼지는 파문을 새롭게 (재)흡수하면서 또 다른 (충돌)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시가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획: 황지원
참여작가: 최윤영, 한윤진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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