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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관점 시리즈 1] 엠마누엘 레비나스_타자와 인상 | ARTLECTURE

[인간과 관점 시리즈 1] 엠마누엘 레비나스_타자와 인상

/Art &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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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기

살면서 많은 질문을 만난다. 사실은 질문하는 인간이기에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일 게다. 그러다가 문득 거인들도 나와 같은 질문과 고민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참 위안이 되고, 그의 해답이 나의 정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부터는 내가 했던 고민에 대한 철학자들의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으로 오늘 나의 고민이 내일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러한 고민들은 


<인식방법론 5P> 오늘부터는 인식론의 관점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 윤리적인 인간, 엠마누엘 레비나스


<엠마누엘 레비나스>


Q. 전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랑 친한 사람과만 만나는 것이 옳을 것일까? 내가 정말로 못 받아들이는 저 사람 때문에 나는 언제까지 힘들어해야 할까? 나는 나랑 맞는 사람 하고만 만나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존재와 무에서 샤르트르가 했던 고민처럼 타자는 자아의 적이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은 방법이 있다면?


1. 철학에서는 보통 '인식론-존재론-윤리론'으로 관점을 전개해 나간다.

독일 철학에서는 당연히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가 결정되면, 그 기준으로 존재들을 설정하고, 그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들길의 사상가라고 하는 하이데거의 전형적인 생각의 흐름이었고, '존재와 시간'에서는 존재가 존재자로 가는 사이 나치즘의 원초적 사상이 잉태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젊은 두 제자는 하이데거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깊은 상처를 받고 그를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젊은 애인이자 제자였던 한 사람이 '인간의 조건'을 쓴 한나 아렌트였고, '시간과 타자'를 쓴 다른 제자가 바로 엠마누엘 레비나스였다. 두 사람은 정확히 자신의 스승이 가지고 있던 존재론과 인식론을 전복하면서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냈다. 한나 아렌트에게는 '행위'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 탄생했고, 레비나스에게는 '무한한 얼굴, 타자'가 탄생했다.


2. 레비나스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철학의 순서를 뒤집에서 '윤리론-존재론-인식론'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인간은 상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한한 윤리가 발생한다. 존재인지 아닌지 인식하기도 전에 무한한 윤리가 요청되는 것이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인간의 얼굴은 신의 얼굴과 같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항상 윤리가 먼저이다. 누군가 타자를 죽이려고 한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타자의 얼굴을 지우거나, 자신의 눈을 가리거나. 하이데거는 타자의 얼굴을 지우는 동일성의 철학으로 존재자들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레비나스에게는 '그저 있는' 존재들의 존재를 '부정성' 자체로 놓고 어떻게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무한한 '윤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뱀을 부리는 여자> 앙리루소_타자의 얼굴은 그 자체로 신비이다


3.레비나스를 만나고 나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어떤 사람의 얼굴도 순간을 잡아낼 수는 있어도 계속해서 그 사람을 똑같이 인식할 수가 없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이 완전히 정의 내릴 수 없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자신의 존재도 정의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수줍어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나에게 너무 많은 잣대들로 내면의 공간으로 언제나 도망치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순간에 스스로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그들처럼 되어버리고 싶은, 그래서 비판과 판단에서 자유롭고 싶은 노예근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비나스를 만나고 나서는 나 자신에게도 '윤리와 무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을 느꼈고, 나를 이해하고 화해하자 결국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타히티의 여인들> 폴 고갱_다른 관점으로 사람을 보게 되면 다름이 선물이 된


4.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삶 속에서 다른 이들을 표현할 때 '신비'라는 단어와 함께 '무한'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누구도 정의 내릴 수 없고,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주체. '한 말'은 기억할 수 있지만 '하는 말'은 예견할 수밖에 없고 잠재태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상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한한 영감과 존재의 향연이 일어나는 순간들을 경험했고, 비로소 나는 자유롭게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언제나 윤리가 먼저다. 만나보면 달라진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아무것도, 어떤 것으로도 타자를 평가 내릴 수 없다. 동일자의 철학에서 걸어 나오면 함께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 서게 된다. '같음을 상정하고 다름을 찾게 되면 발견되는 순간마다 적이 되지만, 다름을 상정하고 같음을 찾을 때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 원초적으로 우리는 타자의 내면에 절대로 들어가 볼 수 없는 다름의 존재들이다. 그게 사실이고 그게 진리이다. 다름에서 시작하는 무한과 신비로 나아가는 길, 레비나스에게서 배웠던 인간 주체의 본질이었다.


+1. 나오며

같은 질문에서 다른 답이 나온다. 앞으로 질문을 해보고 그 질문에 나름대로 답변을 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생각이다. 인간과 관점 시리즈로 오늘은 레비나스를 알아보았다. 앞으로 줄리아크리스테바, 샤르트르, 가다머,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이 했던 고민들과 그에 대한 답을 들어보면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우리는 다양한 관점 위에서 사물들과 인간의 관계를 풍성하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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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nation-

정치학과 헌법을 공부했고, 유기적인 제도가 가능한지 고민하고 있어요. 철학과 교육을 통해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싶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