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 동안 작업한 [연작] 꽃을 2016년 첫 번째 연작으로 공개합니다. 꽃을 찍기 전에는 꽃이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꽃 연작은 I, II, III 등으로 유형별로 확장됩니다.”([연작] 꽃, 작업노트 중에서)
꽃은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골 소재이다. 꽃을 작업한 대표적인 사진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와 아라키 노부요시(1940~ )를 예로 들 수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꽃 작업이 조형성을 강조한 정물 사진이라면, 아라키 노부요시는 꽃을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꽃 연작을 하기 전에 두 대가들의 작업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들이 이미 정점을 찍은 꽃 작업을 하겠다고? 그렇다. 나는 꽃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번 비두리의 사진이야기에서는 어쩌면 너무 흔한 소재일 수도 있는 꽃 연작을 하는 이유를 말한다.
# 풍경, 꽃을 만나다
[연작] 꽃I 중, 2015, photo by 비두리
내 사진은 6년 주기로 변화를 맞이했다. 2003년 사진을 시작했다. 6년 뒤 2009년 연작을 시작했다. 다시 6년이 흐른 2015년 새로운 변화를 주고자 했다. 사진을 한 지 12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분야를 하기로 했다. 접사 촬영인 매크로 기법으로 새로운 주제를 찾으라고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콤팩트 카메라인 리코 카메라를 장만했다. 이 카메라는 최소 거리 1.5cm부터 초근접 접사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코앞에서 사진 찍을 수 있다.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는 대상에 무엇이 있을까? 꽃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정했다. ‘풍경, 꽃을 만나다’. 풍경 사진이라고 하면 광활한 초원이나 바닷가 등을 떠올리겠지만, 접사 촬영으로 작은 풍경을 담고자 했다. 거대한 풍경은 <한강>을 계획해 2016년부터 작업하고 있다.
꽃의 생김새나 모양이 비슷하다 보니 일관된 형식으로 묶어낼 수 있다. 그래서 꽃 연작은 필연적으로 유형학적 사진이 될 수밖에 없다. 유형학적 사진은 동일한 특성을 지닌 구성 요소들의 집합을 통해 개념을 강조한다. 같은 소재만 모아놓은 작업처럼 보이지만, 통일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작업량이 쌓이면 쌓일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단조로운 구성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형학적 사진의 시초는 독일의 아우구스트 잔더(1876~1964)의 인물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1910년부터 1930년까지 2500명의 인물사진을 남겨, 동일한 사회구조에서의 인간상을 만들어냈다.
# 꽃에서 삶과 죽음을 보다
[연작] 꽃II 중, 2015~2016, photo by 비두리
꽃 연작은 한 두해하고 접을 작업은 아니라서 매년 시리즈를 이어가야 했다. 책상에 앉아 기획안을 정하고 그에 따라 실행하기보다는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흔한 소재인 꽃을 주제로 작업하기로 했으니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겠지?
우선 1년 동안 꽃을 촬영했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꽃은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쓸쓸히 죽어갔다. 1년 끝에 꽃 연작의 방향은 ‘생로병사’라고 결론지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를 거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꽃의 ‘생’과 ‘사’를 엮어서 작업하기로 했다. 늙고 병듦을 일컫는 ‘노병’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기에 ‘사’에 포함하기로 했다.
블로그에 꽃I을 연재하고 있던 2016년 2월 11일 늦은 밤에 이르러 꽃 연작에 대한 작업노트를 쓰고 싶어졌다. 사진을 기록하는 공책을 꺼냈다. 펜으로 적어 내려갔다. 퇴고를 거쳐 공개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꽃도 예외는 아니다. 꽃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보여준다. ‘생’, 그것이다.
화려한 절정 이후에 꽃은 시들어져 간다. ‘노병’을 거쳐 ‘사’ 하는 것이다.
나는 꽃에서 삶과 죽음을 본다. 나무에 달린 꽃이라면 매년 꽃은 피어나지만 어떤 꽃들은 한 해도 아닌 몇 개월 살다 죽는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산다 했던가. 살고 죽는 꽃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생명은 병들고 쇠약해져 결국 죽음으로 간다. 삶과 죽음은 극단적인 반대처럼 보이지만 서로 맞닿아있다.
나는 [연작] 꽃을 통해 삶과 죽음을 담기로 했다. 꽃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걸 기록하고자 한다. 꽃I, II, III 이후 꽃 연작은 계속 확장된다. 작업이 멈추면 그것은 완성이 아닌 죽음이다.
[연작] 꽃, 작업노트
자연생태계는 생명들의 순환으로 이어져 있다. 땅에서 피어난 식물들은 초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초식동물은 상위 포식자인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육식동물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 식물의 양분이 된다. 식물의 생장은 꽃을 통해 이루어진다.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은 벌, 나비 등의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함이다. 곤충의 도움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꽃이 사라진다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꽃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표현해왔다. 결혼식이나 졸업식 같은 기념행사에는 꽃으로 기쁨을 나타내고, 장례식에는 꽃으로 슬픔을 대신한다. 꽃은 인간사에도 밀접히 관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꽃에서 삶과 죽음을 본다.
# 꽃 연작을 하는 이유
꽃 연작을 통해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인 만큼 삶을 먼저 보여주고 죽음을 뒤로 이었다. 꽃I이 가장 화려하게 피었을 때의 ‘생’이라면, 꽃II는 지고 난 후의 ‘사’, 꽃III은 병들고 죽어가는 ‘사’로 다루었다. 꽃III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연작] 꽃III 중, 2015~2017, photo by 비두리
꽃이 피고 지다
내가 살고 죽다
죽어가는 꽃이
나에게 말을 건다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나를 잊어 달라고
- [연작] 꽃III, 2018
이제까지 공개한 꽃 연작의 실제 꽃은 모두 지고 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생생히 남아있다.
돌이켜보니 사진가로서 나는 삶과 죽음을 기록하고 있었다. 태어나고 자라온 배경이 된 부모님을 통해 내 삶의 여정을 기록하는 <일하는 부모님>, 동물원에서 살고 죽는 동물들을 기록하는 <동물원>,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생을 마감하는 고양이를 기록하는 <길고양이>. 그리고 꽃 연작은 이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연작] 꽃III 중, 2017, photo by 비두리
그렇다. 나는 삶과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은 죽음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그때 그 순간을 기록한, 어찌 보면 시간의 죽음이다. 사진에 기록된 순간과 그 피사체는 되돌아올 수 없기에 사진의 본질은 죽음이다. 사진에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삶과 죽음이 담긴다. 그것이 사진을 하는 이유였다. 꽃 연작을 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결국 한 사람의 사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과 관점으로 사진에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꽃이 아닌 나무를, 돌을, 하늘을 작업했어도 나는 삶과 죽음으로 만들어냈을 것이다.
꽃 연작은 1년의 작업을 모아 매년 연재하기에 올해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작업하고 있다. 내년 초에 꽃IV를 공개할 예정이다. 꽃 연작의 네 번째 시리즈이지만, ‘사’ 보다는 더욱 화려한 ‘생’을 다루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지런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