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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 ARTLECTURE

No.32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Artlecture/
by Celest
Tag : #신체, #, #현대미술
No.32 현대의 몸(The Body of Contemporary Era)
-몸과 미술(The Body and Visual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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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클라인과 만초니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몸이 더 이상 재현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라인에게 몸은 회화를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도구이자 매체가 되었으며, 만초니는 살아 있는 몸 자체뿐 아니라 몸에서 나온 숨과 배설물까지 작품의 영역으로 편입하였다. 이들의 작업은 미술의 재료가 캔버스와 물감, 돌과 청동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흔들었다. 미술이 몸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몸을 통해 만들어지고, 나아가 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흔적과 오브제, 매체가 된 몸

 

20세기 미술에서 과 관련한 획기적 전환은 몸이 재현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작품을 직접 만들어내는 매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몸은 선사시대부터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지만, 몸 자체가 작품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작품이 되는 방식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나타난다. 이후 몸을 미술의 매체이자 재료로 삼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지는데, 그 출발점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이브 클라인과 피에로 만초니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출신의 이브 클라인(Yves Klein, 1928-1962)은 몸의 매체적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초기 작가이다. 그는 여성 누드모델들의 몸에 자신의 대표색인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IKB)를 칠한 뒤, 모델들이 캔버스나 종이에 몸을 접촉하거나 움직이면서 신체의 흔적을 남기도록 하였다(그림 1). 클라인은 이러한 작업을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회화를 창작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간주하였으며, 모델들의 몸을 살아 있는 붓(living brushes)’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은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30-2003)에 의해 인체측정(Anthropometry)’이라 명명되었는데, 인체측정이라는 용어는 본래 신체의 크기와 비례 등을 측정하는 방법을 의미하지만, 클라인의 작품에서 인체는 객관적으로 측정되거나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물감이 묻은 몸이 화면에 직접 접촉하면서 신체의 크기와 형태, 움직임의 흔적을 유동적으로 남긴다. , 화가가 붓으로 인체를 묘사하는 대신 실제 몸이 화면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회화로 만들어내는 것이다(그림 1).



그림 1. 이브 클라인, <청색시대의 인체측정(Anthropometry of the Blue Period)>, 1960

출처: https://www.yvesklein.com/en/archives/index?c%5B%5D=246&c%5B%5D=298&sb=serie&sd=asc&c%5B%5D=254#/en/archives/view/artwork/595/anthropometrie-de-l-epoque-bleue-anthropometry-of-the-blue-period?c[]=246&c[]=298&c[]=254&sb=serie&sd=asc



<청색시대의 인체측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이 그려지는 대상에서 그림을 만드는 도구이자 매체로 바뀌었다는 점이다(그림 1). 클라인은 1960년 파리에서 이러한 형식의 작품의 제작 과정을 관객들에게 공개하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누드모델들은 청색 물감을 몸에 묻힌 뒤 종이 위에 몸을 누르거나 끌면서 흔적을 남겼고, 그 과정에서 클라인의 단조-침묵 교향곡(Monotone-Silence Symphony)이 연주되었다(이 곡은 클라인이 1949년경에 직접 구상한 것으로, 하나의 화음을 20분간 지속한 뒤 20분간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형식이다). 이 이벤트를 통해 관객들은 완성된 회화뿐 아니라 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행위 자체를 함께 바라보게 되었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화가의 행위가 완성된 작품 뒤로 사라졌다면, 여기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신체의 움직임까지 관객 앞에서 드러난다.

 

클라인과 동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전위예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 19331963)는 몸에 관한 문제를 또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작업하였다. 클라인에게 몸이 회화를 제작하는 매체였다면, 만초니에게서는 살아 있는 몸 자체와 몸에서 나온 물질까지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술가의 숨(Artist's Breath)>(1960), <살아 있는 조각(Living Sculpture)>(1961), <예술가의 똥(Artist's Shit)>(1961) 등의 작업에서 잘 나타난다. <예술가의 숨>에서 만초니는 자신의 숨을 풍선에 불어넣고 그것을 작품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 풍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예술가의 몸에서 나온 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호흡이 예술가의 신체를 거쳐 작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선에서 공기가 빠지고 형태가 변한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을 영구적 물질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조각과 구별하게 만든다.


그림 2. 피에로 만초니, <살아있는 조각(Living Sculpture)>, 1961

출처: https://www.pieromanzoni.org/pieromanzoni/biographies/30/sculture-viventi?lang=en


 

<살아 있는 조각>에서 만초니는 사람의 몸에 자신의 서명을 남긴 뒤 그 사람을 살아 있는 조각으로 선언하였다(그림2). 여기서 사람의 몸은 조각을 만들기 위한 모델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전통적인 조각이 돌이나 청동을 이용하여 인간의 몸을 재현했다면, 만초니는 이러한 전통적 발상을 뒤집어 실제 살아 있는 몸을 조각으로 제시하였다. 조각과 실제 몸, 예술과 삶을 구분하던 경계가 이 작품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예술가의 똥>은 만초니의 사유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작품이다. 1961년 만초니는 예술가의 똥(Merda d'artista)’이라는 문구가 적힌 90개의 작은 통조림을 제작하여 작품으로 발표하였다. 작품의 제목과 라벨에 따르면, 각각의 통조림에는 예술가의 배설물이 들어 있다. 만초니가 던지는 질문은 도발적이면서도 단순하다. 예술가의 몸에서 나온 것까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미술에서 배제되었던 신체의 가장 비천한 부산물마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작품이 될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이다.

 

클라인과 만초니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몸이 더 이상 재현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라인에게 몸은 회화를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도구이자 매체가 되었으며, 만초니는 살아 있는 몸 자체뿐 아니라 몸에서 나온 숨과 배설물까지 작품의 영역으로 편입하였다. 이들의 작업은 미술의 재료가 캔버스와 물감, 돌과 청동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흔들었다. 미술이 몸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몸을 통해 만들어지고, 나아가 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도 현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하고자 한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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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Celest_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며 예술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