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특정한 단어에 발이 묶인다. 위대하거나, 곰삭았거나, 추억과 기억을 먹어 몸집을 부풀린 어떤 말. 삼손의 머리채처럼 힘의 근원이기도 하고, 뒤따라오는 에우리디케의 발소리처럼 애를 태우기도 하며, 아킬레우스의 뒤꿈치처럼 숨길 수 없는 약점이 되기도 하는, 사적私的인 역사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말이 있다. 우리는 그런 말에 기꺼이 나를 내어주고 옴짝달싹 못 한다. 예술가는, 미련을 무게추 삼아 기억을 끌어 올리고, 닿지 않는 바닥을 발길질하면서도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말 하나쯤 가슴에 횃불처럼 밝히고 있지 않을까. 폐허, 발굴, 유물, 인류학, 고고학적 상상, 발이 묶였다.
Members of the future in the Cave of Zeus, 2024, 아크릴, 102X127.3
한때, 사람의 마음이 아닌 진짜 땅을 파서 손에 흙을 묻히며 땀으로 건져 올리고 싶던 것이 있었다.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연필이 아닌 삽을 쥐고, 미래 어느 날 벌어질 발견의 기쁨을 상상했다. 그렇게 헤집어 꺼낸 시간을 들어 올리며 오래된 기억에 취해 눈물을 흘릴 각오까지 미리 상상했다. 하지만 나의 땀은 얕았고 삽은 헐거워서 단단한 시간을 손으로 움켜쥐고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시간이 내놓은 모서리는 상상을 허락하기에 턱없이 모자라거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바스러져 버리는, 부실한 귀퉁이 모래알에 불과했다. 눈앞에 두고도 그것으로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상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땅이 입을 다물었는지, 인간이 귀를 닫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웠던 어느 날, 새하얀 공간 속에 투명한 폐허가 보였다. 발굴된 기억과 고의적 상상으로 무장된 그곳에 나는 낡은 갑옷을 두른 채 투항했다. 폐허가 눈부셔서, 어쩔 수가 없었다.
Cold Waterfall, 2025, 아크릴, 150.2X107.8
폭포 위로 거대한 머리가 보인다. 긁히고 깨졌으나 선명한 인간의 얼굴이다. 오랜 길 끝에서 만나는 하나의 풍경은 인간의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폐허, 시간에 의해 무너지고 삭아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전체가 소실된 장소. 그곳은 존재의 확신을 부재가 증언하는 현실적 비현실감의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부서진 틈 사이로 채워 넣은 상상의 풍경은 편편한 가벼움으로 존재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오로지 어떤 징후만으로, 압도하는 위대함의 비가시적인 상상만으로, 풍경은 다시 세워진다. 알아볼 수는 있으나 알지는 못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의 어떤 범위를 뛰어넘어야 겨우 알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조바심이 낡은 갑옷 밑으로 흘렀다.
The Haze in the Water, 2025, 아크릴, 150.2X107.8
깨진 콧날은 처음의 콧날보다 수려하게 상상된다, 느닷없이 마주하는 유물遺物 같은 풍경은 현실을 초월하는 크기로 다가와 과거의 위대함과 함께 현실의 쇠락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을 인간의 모습에서 지나간 시간의 두께를 확인한다. 고고학적 발굴 현장에서 거대유적을 바라보는 작고 검은 실루엣의 뒷모습은 관람자의 시선마저 같은 크기로 만들어 경이로운 풍경의 목격자가 되게 한다. 오랜 전통의 시선, 정교하게 재연된 마주침의 순간. 작가는 예술사적 선례를 바탕으로 상상의 고고학Fictional Archaeology을 펼쳐 보인다. 지금 또한 미래에 과거가 될 시간의 순환을 캔버스 위에 기록한다.

Stairs in the Labyrinth, 2025, sand, 73X45X46.4
기록의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젖은 모래 같은 여인의 얼굴이다. 사람 같고, 사람 같아, 그저 사람일 뿐인 여인의 얼굴이다.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세상이 지루하고 게을러졌다. 고의적故意的 상상이 필요하다) 곱게 갈린 모래 얼굴 뒤로 이미 오래전부터 깊고 긴 미로가 창조되어 있었다고 여인의 얼굴을 돌리며 작가는 말한다. 긴 열주와 계단과 지붕이 벽으로 나뉜 길을 이루며 사람을 부른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얼굴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다. 그 실재를 이제야 땅에서 파내 마주하는 우리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알 수 없고 설명되지 못하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에는 급진적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도 고된 노동이라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상상의 노동은 보폭이 동일한 계단으로 이루어진 도시 산책이 아니라, 추락하거나 뛰어오를 절벽을 마주한 거대한 대륙의 오지 탐험이 아닐까. 고고학은 고의적 상상으로 인해 한 걸음 앞으로 나간다.
Amalgamized Crouching Venus, 2022, 스테인리스 스틸 황동, 91.4X30.5X43.2
녹슨 청동과 매끈한 광택의 스테인레스 스틸로 이루어진 미美의 여신은 과거의 형태와 현대의 소재로 마감되어 고대와 현대의 상상적 조우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는 숱한 상처와 상실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아름답다. 모든 오래된 것은 인간의 약한 감정을 건드린다. 발굴된 기억은 ‘지금’을 위협하지 못하기에 시간이 건넨 거리만큼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는 과거를 향해 고갤 돌린 채 미래에 서 있는 지금을 상상하고 있는, 시간의 선 위에 서 있는 하나의 점點일 뿐이다. 기억을 발굴하고 고의적인 상상을 통해 한 점의 세계는 확장되고 깊어진다. 우리는 미래의 영원한 과거다.
“...모든 예술 작품이 가장 웅장한 범위에 이르려면, 무한한 인내와 노력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죽은 자들이 모여있는 태고의 밤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작품 앞에서 죽은 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열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