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와 보이스의 굉음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는 그의 앳된 모습으로 시작한다. <손과 얼굴>(1961)의 묵상에 잠긴 듯한 손짓을 지나쳐 다음 전시실로 들어가니 강렬한 붉은색 벽지에 흑백의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1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60년대 초반~1980년대 중반”은 백남준의 플럭서스(Fluxus) 활동을 다룬다. 플럭서스는 1961년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1931-1978)가 설립해 그가 사망한 1978년까지 지속된 국제적 예술 운동으로, 실험적인 재료와 다양한 예술적 매체를 통해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서 탈피하여 예술과 삶의 경계를 와해하고자 했다.
백남준, <보이스 복스 Beuys Vox>, 1988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플럭서스의 일원이었던 백남준의 예술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86)를 위해 따로 마련된 전시 공간이 나온다. 공간은 보이스를 추억하는 여러 매체로 구성된 <보이스 복스 Beuys Vox>(1988)가 전시되어 있다. 1986년 1월 23일 보이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추모의 마음을 담아 제작한 작품으로 ‘보이스의 목소리’라는 의미를 담는다. 자신만의 상징인 펠트로 만든 중절모를 항상 쓰고 다니던 독일의 예술가 보이스는 백남준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였다. 교육자, 정치인, 환경 운동가, 샤먼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며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말했던 보이스는 대중의 예술적 실천을 통한 사회의 치유와 변화를 꿈꾸었다.
원화랑, 현대화랑에서 열린 전시 《보이스 복스 Beuys Vox》(1986) 도록 표지
둘의 인연은 1961년 7월 5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제로 그룹(Gruppe Zero) 전시의 개막식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두 예술가가 우연히 한 화면에 담긴 이날의 사진이 <보이스 복스>에 포함되었다. 그 밖에도 두 사람이 함께 참여한 작업의 사진과 포스터, 보이스 사후에 백남준이 제작한 판화, 지도, 조각 등이 넓은 좌대 위에 올라와 있다.

백남준, <총체 피아노>, 1963 (출처: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의 첫 개인전인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1963)에서 발생한 뜻밖의 사건으로 둘은 다시 만난다. 독일 부퍼탈(Wuppertal)의 갤러리 파르나스(Gallery Parnass)에서 열린 전시에서 백남준은 처음으로 TV 작업을 선보였으며, 갤러리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상정해 공간, 사물, 소리, 관객이 한데 뒤섞인 혼란스러운 환경을 만들었다. 작품과 일상적인 사물은 구별되지 않고 중구난방 흩어져있었으며, 관객은 작품과 접촉해 그 혼란스러운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홀에는 <총체 피아노 Klavier Intégral>(1963)라는 제목이 붙은 네 대의 피아노가 ‘소리를 연주한다’라는 제 기능을 잃은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 방식은 각각 달랐다. 어느 피아노는 바닥에 쓰러져 관객이 건반을 밟아 연주하도록 의도되었는가 하면, 건반이 널빤지로 고정된 것도 있었다. 나머지 두 피아노에는 플라스틱 장난감, 동전, 달걀 껍데기, 브래지어 등 각종 잡동사니와 전선이 어수선하게 뒤엉켜 있었다.
요제프 보이스에 의해 파괴된 피아노의 모습 (출처: 백남준아트센터)
사건은 개막일인 3월 11일에 발생했다. 개막식이 끝나고 약 한 시간 후 들어선 보이스가 커다란 망치를 휘둘러 바닥에 쓰러진 피아노를 내리친 것이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피아노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백남준과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파괴는 거대한 굉음을 만들어내며 전시 공간에 혼돈을 더했다. 백남준의 반응은 어땠을까. 개막식에 참석했던 또 다른 플럭서스 예술가 토마스 슈미트(Tomas Schmit, 1843-2006)는 백남준의 반응을 한 마디로 기록하고 있다. “난 좋았어(I liked it.)”라고.
유라시아의 비전을 공유하다
두 예술가는 어디에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그 힌트는 ‘유라시아(EURASIA)’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통칭하는 이 단어는 보이스의 작업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그에게 유라시아란 단지 두 대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이분법적 극단을 연결하는 유토피아적 비전에 가까웠다.
유라시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보이스는 지방과 펠트로 대표되는 ‘유동적인 재료’를 사용하였는데,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 ‘보이스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으로 참전했던 경험과 관련된 가상의 이야기로, 전쟁 당시 러시아군의 폭격에 맞아 크림반도에 추락한 그를 타타르족이 구출해주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보이스의 몸을 지방과 펠트로 덮었고, 이러한 치유의 기억이 예술의 재료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라시아 개념은 백남준과도 공유되었던 이상이었다. 물론 이를 실천하는 방법은 달랐다. 보이스가 유동적인 물질을 사용했다면, 백남준에게는 텔레비전과 비디오라는 전자 미디어가 있었다. 전자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전 세계가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지구촌이 될 것이라 예언한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80)의 말처럼, 백남준은 이 기술을 통해 세계의 극단을 연결하고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유라시아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견된다. 이 해 백남준은 독일 예술가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와 함께 독일관의 대표로 초청되었으며, 독일관은 베니스비엔날레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하케가 독일관 내부에 <게르마니아 Germania>(1993)를 전시해 독일의 과거사를 비판했다면, 백남준은 주로 외부 공간에 동서양의 역사적 인물을 제목으로 한 로봇 조각들을 설치했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의 3부 “백남준의 세계: 1980년대 후반~2006년”에 전시된 <칭기즈 칸의 복권 Rehabilitation of Genghis Khan>(1993)은 당시 베니스비엔날레에 설치되었던 로봇 조각 중 하나이다.
〈칭기즈 칸의 복권〉은 자전거를 탄 로봇의 형상을 한 조각이다. 눈 모양 네온사인이 빛나는 잠수 헬멧과 줄무늬 망토를 걸친 로봇은 크기가 다양한 10대의 텔레비전을 가득 싣고 달린다. 텔레비전 속에는 추상적인 문양의 네온이 색색깔로 빛난다. 잔혹한 정복 활동으로 유라시아 전역을 연결한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은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무기와 군사 대신 미디어 기술을 등에 업고, 전 세계의 교류를 다시금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보이수(普夷壽)
<늑대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1990) 당시의 사진 (출처: 현대화랑)
플럭서스를 통해 만난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는 장장 29년의 인연을 맺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건 보이스였다. 백남준은 자신의 생일인 1990년 7월 20일,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 A Pas de Loup, De Seoul à Budapest>를 선보인다.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스스로 무당이 된 백남준은 1시간가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판을 벌였다. 보이스의 사진을 붙인 병풍을 두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음식을 올리거나, 펠트 중절모를 놓은 피아노에 삽으로 흙을 뿌리기도 했다. 일련의 행동으로 보이스가 걸어온 작업 세계, 그리고 둘의 예술적 교집합을 기념하며 친구의 삶과 내세를 축복했다. 백남준은 독일 출신의 예술가에게 보이수(普夷壽)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넓을 보, 오랑캐 이, 목숨 수. 무명 시절 만나 변함없이 뜻을 함께한 친구이자 동료에게 보내는 우정의 징표였을까. 두 인물의 만남이 유라시아의 정신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참고 문헌 구보타 시게코, 남정호. 『나의 사랑 백남준』. 아르테, 2016. Tisdall, Caroline. Joseph Beuys. Guggenheim Museum, 1979. 최태만. 「융합과 창발 - 백남준과 전자 실크로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42 (2021): 13-39. 한지숙. 「백남준의 《음악-전자 텔레비전 전시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1963) 연구: 전시 연출과 그 효과를 중심으로」. 『미술사문화비평』 4 (2013): 173-193. Walters, Victoria. “Joseph Beuys and EURASIA.” Tate Papers 31 (Spring 2019) https://www.tate.org.uk/research/tate-papers/31/joseph-beuys-eurasia (2025년 2월 24일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