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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안규철》: 굶주린 광대의 삶에서 진실을 찾다. | ARTLECTURE

《12명의 안규철》: 굶주린 광대의 삶에서 진실을 찾다.


/Artist's Studio/
by 청예
《12명의 안규철》: 굶주린 광대의 삶에서 진실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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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용산구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열린 안규철의 개인전 《12명의 안규철》이 1월 18일 막을 내렸다. 열두 개의 전시 공간을 채운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작업은 안규철의 여러 자아를 이룬다. 그래서 “12명의 안규철”이다. 전시 서문은 “안규철이라는 (이름표를 단) 작업-작가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형상이고, 미술이면서 동시에 정치다.”라며 그를 소개한다. 전시를 관람하며 필자는 안규철이 건네는 질문들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규철의 작업 세계는 일반적으로 ‘개념미술’의 분류에 들어간다.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란 1970년대 서구 미술계에서 전개된 사조로, 기존 미술계를 지배했던 형식주의 모더니즘적 사고에 도전했으며, 미술 제도와 시장의 원리를 비판했다. 개념미술은 미니멀리즘을 계승한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사조에 포함되는데, 작품의 물질성과 작가성을 제거하고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개념미술을 처음 언급한 헨리 플린트(Henry Flynt, 1940-)는 이를 “개념(concepts)이 재료로 사용되는 예술이며, 개념은 언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정의했다.1)  안규철의 개념적 미술은 서구의 것과는 구분되는데, 그는 “재료를 붙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동력 중 하나”라고 밝혔다.2)  즉, 작가성을 배제한 서구 개념미술과 달리, 작가의 손을 거친 수공예적 미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규철의 많은 작업은 텍스트에 기반하고 미술에 있어 언어적 사고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개념적이라고 할 수 있다.

 



 

《12명의 안규철》은 지상층과 지하층, 총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 바로 보이는 방에 들어서자, 두 개의 작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액자 속에는 글씨가 가득 채워져 있다. 첫 번째 글은 “나를 미술관에 들여놓기만 해주시오”라는 자신만만한 요구로 시작한다. 화자는 뛰어난 예술품으로서의 진면목을 선보이겠다 장담하지만, 곧 누군가 그 다짐에 훼방을 놓는다. 화자는 “나를 미술품이라고 선언해 줄 작가가 있어야 한다고?”라며 미술 제도에 편입하기 위한 난관을 깨닫고는 투덜거린다. 눈을 돌려 액자 왼편 바닥을 바라보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돌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신만만했던 화자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별 볼 일 없는 돌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진열장 안에 같은 모양의 돌이 보인다. 하얗게 채색되고 안규철의 서명이 날인된 돌은, “미술품이라고 선언해 줄 작가”, “그 작자의 서명과 보증서”, “명망 있는 비평가의 평론”까지 제도에 들어서기 위한 재료를 모두 갖춘 모습이다. 그러나 두 번째 액자 속의 글은 사뭇 다른 어조로 흘러간다. 이제 하얀 돌은 “나를 여기서 꺼내서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시오.”라며 읍소한다. “할 일 이라고는 그냥 조용히 있고 변하지 않는 것 뿐인데, 이게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요. 예술품 행세를 하며 구경꾼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돌멩이로 남고 싶지 않다오.”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상황에 한탄하며, 예술가와 미술 제도에 저주를 퍼붓는다.

작업의 제목은 <두 개의 돌>(2024). 안규철은 예술품이 되어버린 ‘돌’의 상반된 두 입장을 시각화하여 관객을 관조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는 흔하디흔한 돌이 작가의 날인, 진열대, 전시 공간에 의해 미술품으로 탈바꿈하는 손쉬운 전환의 과정을 보여주며 구경거리로 전락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예술품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두 개의 돌>을 보니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단식광대 Ein Hungerkünstler」(1922)가 떠오른다. 전시는 곳곳에 문학적 요소를 품고 있었는데, 특히 카프카의 이름을 두 개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안규철이 처음 시도한 애니메이션 작업인 <걷는 사람>(2024)에는 「돌연한 출발」의 구절이 등장했으며, <변신 연작-카프카>(2024)는 카프카의 책을 자르고 불태워 그 잔재를 진열장에 전시한 작업이었다.

안규철이 두 개의 돌을 통해 은유했듯, 카프카는 「단식광대」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단식광대’라는 직업을 가진 예술가로, 그는 빈 우리에서 40일 동안 굶주리는 공연을 선보인다. 한때 공연으로 많은 명성을 얻었으나, 단식의 유행이 지나자 그는 대중의 관심을 잃게 된다. 결국 서커스 외곽, 마구간 앞의 빈 우리에서 생활하게 된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무시당하는 신세가 되지만, 동물을 보러 스쳐 지나가는 관객의 찰나를 사로잡으려 애쓰며 계속 단식한다.

 
“그는 하나의 작은 장애물, 점점 더 작아지는 장애물이었다. [...]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껏 단식을 하고자 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지만, 아무것도 더는 그를 구원해 줄 수 없었다.”


“단식 일수를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식광대 자신마저도 자신이 얼마동안이나 단식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관중에 둘러싸여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던 ‘단식’은 그렇게 가치를 잃어버렸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단식 광대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빈 우리를 표범이 차지하며 소설은 끝난다.

안규철은 1990년대 초부터 예술의 의미를 고찰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1991)은 두 개의 문, 다리 한쪽이 긴 의자를 심은 화분으로 구성된 설치작품이다. ‘삶(Leben)’이라고 쓰인 문은 평범하게 하나의 손잡이가 달린 반면, ‘예술(Kunst)’이라고 쓰인 문에는 다섯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만든 작업으로, 예술이라는 문으로 들어서기 위해 다섯 개의 손잡이, 즉 다섯 개의 질문에 답해야 했던 무명작가로서의 시절을 담아냈다. 질문은 “예술은 인생보다 중요하냐”, “당신은 언제 예술가인가”. “무얼 하길래 예술가인가”, “한 번 예술가이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나”, “매 순간 예술가인가”, “예술은 돈인가” 등 끊임없이 이어졌다.3) 화분에는 다리 한쪽이 길어 기능을 잃은 의자가 꽂혀 있다. 화분 또한 식물로 변할 수 없는 의자를 심어 쓸모를 잃었다. 무명작가는 답이 없는 질문을 마주한 채, 화분에 물을 주는 무의미한 행위 만을 반복하는 막막한 현실에 놓인다.

이렇듯 개념적인 안규철의 작업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관객은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예술가도 예술품도 아닌, 그저 소비의 주체인 관객은 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어둡게 가라앉은 지하층의 마지막 작품은 <honesty>(2024)이다. 벽 안에 소문자로 ‘honesty’라 적힌 라이트 박스가 빛을 발한다. 이는 2004년 작고한 동료 작가 박이소의 <정직성>을 오마주한 것으로, <정직성>은 빌리 조엘(Billy Joel)의 노래 ‘Honesty’를 한국어로 번역해 노래를 부른 작품이었다. 박이소가 번역한 노래의 후렴은 다음과 같다: “정직성 정말 외로운 그 말 더러운 세상에서 / HONESTY 너무 듣기 힘든 말 너에게 듣고픈 그 말”

노래 속의 화자는 따뜻하고 달콤하게 포장된 위안 같은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솔직하고 정직한 말, 진실만이 그를 위로한다. 안규철은 진실을 요구하는 박이소의 호소에 공감하며, 그 마음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관객에게 요구한다. 외롭고, 더럽고, 상처를 주는 세상에서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자고.


각주
1) 권하영, 「1990년대 한국의 개념적 작업 연구: 박이소, 안규철, 김범 작업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사연구』 55 (2024): 123.
2) 앞의 글, 106.
3) 전지현, 「손잡이 없는 `인생`…예술의 문을 열다」, 『매일경제』, 2021년 5월 16일. https://www.mk.co.kr/news/culture/9873288

참고자료
안규철 개인전 《12명의 안규철》 전시 서문
권하영. 「1990년대 한국의 개념적 작업 연구: 박이소, 안규철, 김범 작업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사연구』 55 (2024): 123.
전지현. 「손잡이 없는 `인생`…예술의 문을 열다」. 『매일경제』. 2021년 5월 16일. https://www.mk.co.kr/news/culture/9873288

사진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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