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박물관 가는 게 그 어느 때보다 ‘힙한 취미’가 된 요즘, 문득 ‘요즘 친구들’은 전시를 어떻게 관람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그들의 향유법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여타 SNS 매체를 보면 전례 없는 ‘전시 붐’ 현상을 견인한 MZ세대의 감상법은 가지각색인데,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인 미술관 내 사진 촬영부터 새로운 문화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기까지 그 모습과 형태가 정말 다양해진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본인 스스로 ‘잘 봤다’, ‘잘 감상했다’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까?
미술관, 박물관은 대표적인 공간예술의 그릇이다. 따라서 정해진 시간이나 동선의 제약 없이 본인 스스로 하나의 구조를 만들며 작품과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결말’을 맞이하여 경험적으로 종결감을 선사하는 시간예술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분명한 완결을 스스로 맞이하기는 쉽지 않다. 러닝타임이 지나면 우선 끝났다고 여겨지는 시간예술과 달리 전시는 하루 종일 똑같은 작품을 보는 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본인도 마찬가지로 어떤 전시를 볼 때 “아, 내가 전시를 잘 본 것이 맞나?”, “뭔가를 부족하게 보지는 않았는가?” 하고 의구심이 들 때가 있는데, 한 음악, 한 공연, 한 극이 끝나고 나면 일단 “감상했다!”라고 느끼는 것과 너무 대비가 되는 지점이다(작품의 이해 여부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독자에게 혼자 전시를 보며 깨달은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라는 감상법을 새로이 제안하고자 한다.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
미술관과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탐미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도발적인 표현인지 모르겠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시비 걸기’는 비아냥이나 비난을 통해 타인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일종의 싸움 초대장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밝힌다.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는 단순히 표현하자면 한 전시를 만든 큐레이터와 같은 시선과 태도로, 다시 말해 능동적인 태도로 전시콘텐츠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미 뮤지엄을 애정하는 우리들에게 이 얼마나 친숙하고 익숙한 표현인가? 그러니 이번 원고에서는 너무나도 새로울 것 없는 이 표현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전시장에 갈 때마다 작품과 거의 비슷한 시간을,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보게 되는 작품의 ‘라벨’을 이용해서 말이다.

지난 2019년, 미국 델라웨어주의 한 미술관에는 포스트잇으로 전시장이 가득 채워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작품 옆에 붙여진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에는 흑인 노예와 아메리카 원주민 등과 같이 그간 황홀한 예술 작품 뒤로 숨겨지고, 축소됐던 소수자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이 작업은 델라웨어 아트 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인 헤더 캠벨 코일(Heather Campbell Coyle)과 뮤지엄 디렉터 사라린 로젠필드(Saralyn Rosenfield)가 기획한 상설전시실 개편 프로젝트로, 작품의 ‘라벨’을 매개로 하여 예술과 관람객을 밀접히 관여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델라웨어 아트 뮤지엄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해당 프로젝트는 2020년 상실전시실 개편을 맞이하여 진행되었는데, 기관 소장품과 관련된 지역민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적극적으로 전시에 반영하고자 살롱의 형식이 채택되었다. 참여 대상인 델라웨어 주민들은 정식으로 전시가 개막되기 이전에 미리 뮤지엄에 방문하여 전시 예정인 작품을 미리 보고 해당 작품에 관한 부연 설명이나 큐레이터가 미리 제시한 질문에 답을 적을 수 있었다. 통상적인 전시장에서 볼법한 장문의 라벨부터, 서로의 포스트잇에 반론을 제기하며 작품을 새로운 담론의 장으로 만드는 라벨까지 관람객은 단순히 전시장에 방문했을 때 느끼기 어려운 깊이로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델라웨어 아트 뮤지엄 사례가 고무적인 것은 바로 ‘포스트잇’이라는 수단만으로 관람객의 경험 반경이 넓혀졌다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사실 ‘포스트잇’의 역할은 명료하리만큼 단순하다. 바로 특정 작품에, 특정 기관에 내가 실제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본인의 일상, 가치관, 사회·시대적 맥락을 투영해 기관에서 보고 있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이런 복잡한 과정을 ‘포스트잇’이라는 장치가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바로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라는 표현에 함의된 뜻이 되겠다.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를 다르게 말해보자면 ‘우상에게 시비 걸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람객들에게 미술관, 박물관, 작품은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들기에 전시된 콘텐츠에 질문을 던지는 것, 의문을 가지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보는 행위가 굉장히 낯설고 불문율과 같은 규범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작품에, 미술관에, 큐레이터에게 시비를 거는 순간 나만의 질문이 생기고, 자연스레 나만의 맥락으로 똘똘 뭉친 감상법, 향유법을 맛볼 수 있다. 마치 포스트잇이라는 렌즈를 통해 새로운 사회상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때마침 전시를 보러 가는 중이라면 지금 당장 실천해 보자, 큐레이터에게 시비를 걸어보자.
부록 1. 바뀌는 뮤지엄의 라벨

본문에 언급한 델라웨어 아트 뮤지엄처럼 최근 미술관, 박물관의 ‘라벨’은 향유층의 의견을 반영하여 더욱 입체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2022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예술에 대한 여성의 참여를 보다 가시화하기 위해, 여성 후원자와 수집가를 반영한 라벨로 전시장을 새로이 꾸몄다. 구체적으로 1451년부터 1633년 사이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작품 라벨을 분석하고 작품 제목과 설명 텍스트를 새롭게 수정하였는데, ‘~의 아내’와 같은 표현을 삭제한 것이 괄목할 만한 점이라 볼 수 있겠다.
부록 2. 큐레이터에게 시비거는 나는 어떤 모드일까?

해당 프레임워크는 본문에 첨부하여 함께 부연하고 싶었으나 원고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부록으로 추가한다. 미국 예술 향유 분야의 컨설턴트 앨런 브라운(Alan Brown)은 예술 향유의 의미와 가치를 기반으로, 향유자의 참여 및 창의성 정도에 따라 5가지 예술 향유 프레임워크를 제시하였다. (1). 주변 환경으로 인한 참여, (2). 관찰형 참여, (3) 큐레이터형 참여, (4) 해석적 참여, (5) 창작형 참여로 ‘큐레이터에게 시비 걸기’는 해석과 창작이 결합된 4.5 정도의 모드라고 볼 수 있겠다. 본 프레임워크에 관해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긴 분량의 원고에서 적절한 사례와 함께 적어보고 싶다.
참고자료 Sarah Cascone, 2019, ARTnet, “To Boost Audience Engagement, the Delaware Museum of Art Tries Something Radically Simple: Post-Its”, https://news.artnet.com/art-world/delaware-art-museum-reinstalled-1560523
Amelia Wiggins, 2019, Association for Art Museum Interpretation, “Centering Community Relevance in Reinstallation Planning”, https://artmuseuminterp.org/2019/09/26/centering-community-relevance-in-reinstallation-planning/
FRANCESCA ATON, 2022, ARTnet “Spain’s Prado Museum Updates Labels to Reflect the Value of Its Female Patrons and Collectors”, https://www.artnews.com/art-news/news/prado-museum-rectifies-labels-to-reflect-the-value-of-female-patrons-and-collectors-1234650568/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 「예술향유정책 분석 및 방향 연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