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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로운 풍경 《Auspicious Snow》 | ARTLECTURE

상서로운 풍경 《Auspicious Snow》


/Art & Preview/
by 최다운
상서로운 풍경 《Auspicious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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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Auspicious Snow》는 구체적 형상(구상)이 아닌 추상에 더 가깝습니다. 프레임이라는 테두리뿐만 아니라, 피사체의 형상이라는 테두리까지 벗어 버린 이미지는 수많은 이야기로 가지를 뻗고, 관객의 마음속에 길조(吉兆)를 그립니다."

《Auspicious Snow》. 얼마 전 삼청동 고공 갤러리에서 열렸던 엄효용 작가의 전시 제목입니다. 풀이하면 “상서로운 눈"이라는 뜻입니다. 잘 쓰지 않는, ‘상서롭다’는 표현에서 울림이 느껴집니다. 사진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보며 상서로운 기운을 느꼈던 걸까요?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라니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전시장 입구



한없이 검은 프레임 안에 짙고 옅은 눈의 형상이 담겼습니다. 조금 더 다가온 눈은 뚜렷하게, 아직 하늘과 더 가까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눈송이는 희미한 자국으로 남았습니다. 때론 저 스스로 빛을 내듯 눈부시게 빛나지만, 어떨 때는 한 발짝 가까이 가야만 겨우 보일 정도로 미미합니다. 


눈이 남긴 궤적이 4B부터 HB까지 고루 쓴 연필 스케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검은 도화지 위에 뿌린 흰 물감의 액션 페인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액션 페인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잭슨 폴록의 작품은 액션이라는 ‘행위’를 담았는데, 엄효용의 사진은 행위가 아닌 ‘시간’을 담았습니다. 



전시 전경



사진과 시간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시간을 포착했는지가 어떠한 사진이 나올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사진가는 프레임에 담을 시간을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엄효용 작가는 허공의 눈에 강제로 빛을 쏘는 방법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간’을 창조했습니다. 스트로보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길게 터트렸는지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탄생했습니다. 어떤 눈은 점점이 자국을 남겼고, 어떤 눈은 조금 더 긴 점선이 되었고, 주욱 그은 실선 같은 흔적으로 남은 눈도 있습니다. 함박눈이나 싸래기눈처럼 서로 다른 눈송이의 모양도 형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시 전경



전시 디렉터는 관객들이 엄효용의 사진을 보며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 1)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숲으로 들어가 담은 풍경 앞에 서면 생각이 소용돌이칩니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했던 연인을 떠올리고, 외지에 나가 있는 가족을 그립니다. 인생의 중턱을 넘어선 이는 흩날리는 눈 위로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겹쳐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엄효용의 사진이 우리 안에 불러오는 감정은 프레임에 담긴 눈송이만큼 많습니다. 


《Auspicious Snow》는 구체적 형상(구상)이 아닌 추상에 더 가깝습니다. 프레임이라는 테두리뿐만 아니라, 피사체의 형상이라는 테두리까지 벗어 버린 이미지는 수많은 이야기로 가지를 뻗고, 관객의 마음속에 길조(吉兆)를 그립니다. 



전시 전경


각주.

1) 기획 노트, 고공갤러리, 2023. https://gogonggallery.com/untitled-145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최다운_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로 뉴욕의 사진 전문 갤러리에 대한 <뉴욕, 사진, 갤러리>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