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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tic Spectacle 판타스틱 스펙터클 (1) - 모텔과 놀이동산 | ARTLECTURE

Fantastic Spectacle 판타스틱 스펙터클 (1) - 모텔과 놀이동산


/Insight/
by 김태은
Fantastic Spectacle 판타스틱 스펙터클 (1) - 모텔과 놀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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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도시를 여행하고 건축을 사진에 담고 기억하는 것은 모체로써의 대상을 내면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동경의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점점 멜랑콜리 정서로 넘어가고 결국 동경의 판타지로 이행하는 것이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개인의 것이라면, 건물이 설계되고 도시화되면 개인의 기억은 집단의 기억으로 변화한다. 동일한 기억을 가진 집단적 기억이 생기게 되면 이것은 정체성과 연결 될 수 있다.

나의 판타지, 우리모두의 판타지

어린 꼬마 소녀 나루세 준의 두 눈에 저 멀리 산 위에 아름다운 성(城) 하나가 보인다. 어릴 때 부터 멀찌감치서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저 성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떤 여성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왕자님이고 옆에 같이 나오는 여자는 공주님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가 이 놀라운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주인공. 하지만 엄마한테 아버지가 왕자님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 댓가는 처참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心が叫びたがってるんだ)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어린 소녀 나루세 준의 모습에 보였던 성은 실제로는 러브호텔이었다. 주인공은 동화책을 보면서 '...아름다운 성 안에서 왕자님과 공주님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해피엔딩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캐릭터였다. 이 애니메이션의 부제는 Beautiful Word Beautiful World 이다. 2015년에 개봉되어 많은 인기를 누린 애니메이션으로써 동명 타이틀로 실사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실사영화 부분에서는 성이 나오는 부분이 무척 궁금했는데 두 개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거의 동일한 모양으로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한 필터링없는 묘사를 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진(左)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애니메이션 장면             사진(右)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영화 실사버전

 

서구제국주의 문화와 근대주의 사상이 전파되던 시기의 동아시아는 식민지시대의 문화적 동화현상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일본은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서구화된 나라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를 이룬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타이완을 식민지로 가진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음을 세계에 알렸다. 그 후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개혁을 시도한다. 구한말 김옥균의 갑신정변도 이러한 예라 볼 수 있다.  일본은 개항 이후 일본 스스로를 서구와 비교하면서 서구화와 근대화라는 국가목표를 자신에게 부여한다. 즉, 서구화가 곧 부국강병이며 근대화라는 것으로 일치시킨 것이다. 제국주의의 탄생과정은 모두 비슷하다. 일본은 더 나아가 서구에 대한 상대적 모방의 관계를 일본의 근대화의 목표로 삼고 이것이 바로 일본의 정체성[1]이라고 정의내리기 까지 한다.

 

일본은 특히 독일을 동경했었다. 일본 본토는 전통적인 일본을, 식민지인 조선은 근대화된 일본을 나타내기위해 서양식 모더니즘 건축물을 조선에 도입하였다. 대표적으로 경성역(지금의 서울역)(1900년대 초), 조선은행 본점(1912년), 조선총독부 청사(1926년) 등이 있다. 이런 건물들은 서양식 디자인과 일본의 고유한 건축 스타일이 결합된 형태였으며, 이는 일본이 서양화를 통해 근대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조선에 반영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특히 서울(경성)역은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모방하여 지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위스의 구 루체른역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이 역의 도면이 사라져서 실제로 한국의 서울역의 도면을 가져다 쓴 일화도 있었다. 2016년에는 서울역(당시 경성역)의 준공도면의 원본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근대건물들이 너무 많이 없어진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의 잔재라는 것으로 인해 근대화의 시간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후대를 위해서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진(左) 서울(경성)역 건립당시 모습의 엽서 사진          사진(右) 경성 우체국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건축양식의 이식은 권력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식민 지배의 기반 구축을 위한 건축은 지배를 견고히 하고, 건축공간을 표준화하고 동질화 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이것은 쉽게 피식민자들의 모체로써 작용할 수 있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를 점령한 서구제국주의가 공통적으로 한 것은 상징적인 건축을 모두 지었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고, 그 양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달 연재에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로 하겠다.

 

서울(경성)역과 조선총독부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광장에 세워졌고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 요소로 각인되기에 효과적이었다. 일본은 특히나 조선총독부 건물에 애착이 있었을 것이다. 독일인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George de Lalande)에게 디자인을 의뢰한 건축으로, 해방 후에 정부기관으로 사용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급기야 조선총독부를 폭파한다고 했을때, 일본은 극구 반대했으며 원형 그대로 자국으로 이송하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때아닌 조선의 국권을 수립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바람에 근대화의 상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자 일본은 한국과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일본이 자신들의 근대화 산물들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본토는 전통적 일본의 모습을 가진 곳으로, 조선은 근대화된 일본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양에 근대화된 건물들을 많이 지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의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경성으로 많이 왔다. 현재에 발견되는 당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필름을 보면 당시의 근대화된 경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2] 반면, 조선의 식민지배를 받는 학생들은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일본의 전형적인 동화식 신민지배형태로 피식민지배를 받는 학생들이 전통적이고 발달된 당대의 일본을 보고 돌아와 제2의 일본을 건설하는 초석으로 삼은 셈이다.

 

이처럼 도시를 여행하고 건축을 사진에 담고 기억하는 것은 모체로써의 대상을 내면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동경의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점점 멜랑콜리 정서로 넘어가고 결국 동경의 판타지로 이행하는 것이다. 어떤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개인의 것이라면, 건물이 설계되고 도시화되면 개인의 기억은 집단의 기억으로 변화한다. 동일한 기억을 가진 집단적 기억이 생기게 되면 이것은 정체성과 연결 될 수 있다.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에 따르면, 사물이 상징을 통해 “사물의 기억’을 넘어설 때, 그 사물에 시간과 정체성의 차원이 각인되며 이것이 문화적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였다.[3]

 

필자가 올해 초에 다녀온 크로아티아의 두브르니크 지역은 로마황제가 휴양지로 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해안가에 위치한 건축물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었다. 로마의 식민지중 바다만 건너면 보이는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문화적 동화현상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평민들아! 잠깐 성에 들어와 쉬렴


한국의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위에서 말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유럽 성들과 가끔씩 마주하곤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와서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성에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숙박업을 하는 공간인줄 모르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 한국은 호텔보다는 저가의 모텔들의 건축양식(?)에서 이러한 성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1980년대 이후부터 한국에 이러한 성 모양을 한 건축들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대도시에서 밀려나 중소도시나 지방소도시에 남아 있을 정도로 많이 없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 건축과 공간이 가진 스펙터클은 다른 형태로 목적을 유지한채 다른 양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사진] 한국 중소 도시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럽식 성모양의 모텔 숙박건물들 .

건축의 양식과 출처는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한국 모텔의 원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천에 있는 대불호텔(大仏ホテル)은 대한민국 최초의 호텔이라 불리운다. 조선시대 주막이나 객주, 여각과는 다른 근대화된 시설을 모텔의 기원으로 본다. 1883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천항이 개항하자 1887년 호리 히사타로가 이 건물을 지어서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현대모습은 2018년에 복원한 것이다. 당시에 인천항을 통해 건너온 외국인들이 묶을 수 있는 근대화된 숙소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 성의 유래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사진] 대불호텔의 초창기 모습(左) / 현재 리모델링된 인천의 대불호텔(右)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부분이 왜 우리나라의 모텔은 유럽의 성모습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진다 혹자는 일본의 러브호텔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 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에도 이러한 성 모양을 한 호텔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다. 일본의 호텔문화는 1980년대 버블경제시기에 번성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하였지만 지금은 하락하였다. 일본 러브호텔문화의 쇠락은 일본의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젊은이의 비율이 감소된 현재의 상징적 지표가 된다.

 


[사진]일본의 유명 러브호텔 메구로 엠퍼러의 모습

 

 

호주의 사진작가 셰인 톰스는 버려진 건축사진을 찍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의 고령화로 인해 버려져 가는 러브호텔안의 공간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하였다. 중세시대부터 근대까지 이르는 유럽의 성 외관과 내부는 매우 디테일하게 구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버려진 공간이 지닌 숨겨진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등골이 오싹하긴 하지만, 이면에 숨겨진 역사를 볼 수 있다.

 

필자는 거의 10여년을 지방도시들을 다니면서 유럽성의 재현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해왔다. 뭔가 모텔을 찾는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공간을 어필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임을 광고하려고 하는 것일까? 설마 평민들아! 잠깐이라도 쉬면서 귀족의 경험을 하고 하라고 만든 것일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하곤 한다. 그 동안에 개인 휴대전화에 담긴 수 많은 성의 사진들은 여러번 없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사라져 몇 장 남지 않았지만 오래된 지역에 그대로 남아 있는 성의 위치는 대부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성을 보았을 때 연관지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왕, 왕비, 왕자, 공주, 백마 등의 동화속에서나 볼 법한 인물들이다. 즉 마법에 걸린 공주와 이를 구하는 용감하고 힘이 쎈 왕자의 모습이 그려진 동화책 한 권 전체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스만이 말한 성에 대한 사물의 기억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림]왕자와 공주 : 우리 머리 속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왕자와 공주의 모습.

 


그럼 저 성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위의 그림과 같이 왕자와 공주같이 되는 기분이 들까? 과연 그럴까? 실제 유럽의 성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양상현 저)에서는 한국 러브호텔의 이러한 전형적인 형태를 가리켜 '성(性)이 소비되는 성(城)'이라는 표현을 한다. 공개적인 시선을 차단시키고, 그 안에서 왕자와 공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각적 코드로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한국 모텔의 성의 모습은 건축의 외피(facade)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내부는 성이 아니고 일반 숙박업이지만 건물 외관만 성의 모습을 하는 것은 건물의 기능과 상관 없는 일종의 장식으로써의 오너먼트 요소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를 지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대상의 본질보다 외피에 집중하는 경향을 띄면서 더욱 과정된 오너먼트로써의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건물의 파사드는 사람의 얼굴이나 신분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얼굴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정면은 때때로 기능이 외에 어떤 장식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오너먼트 요소라고 한다. 유럽 성 모양의 모텔이 한국에 많이 지어지고 있는 것을 이러한 건물의 외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는게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건물의 신분과 목적을 나타내고, 도시 환경에 대한 그 건물의 대응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파사드는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첫인상을 제공하며, 그들이 그곳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성모양을 한 한국모텔이 가진 신분과 목적인 셈이다.

 

한국에서 유럽 성 모양의 모텔이 많이 지어지는 것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건물은 대체적으로 그들의 외관을 통해 고유하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사드는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주요 도구이며, 건물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런 현상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점점 더 우리의 일상 생활에 녹아들어가는 것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요즘은 어플로 호텔을 예약하기 때문에 첫 인상에 대한 정보가 무척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경험을 찾고 있으며, 건물 외피는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또한 사람들은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작용하게 되며, 건물의 외관은 이러한 개성과 취향을 만족 시키는 데 사용되면서 수요와 공급간의 욕구충족이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너먼트적인 요소가 더 강조될 수록 건축물이 가진 기능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결국 장식이 너무 과하면 건축의 용도 이상의 모습을 하게 되어 건축물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요즘에는 성모양의 모텔이 많이 사라지고 LED로 화려하게 치장된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을 위한 여행가이드에는 한국의 저렴하고 독특한 숙소로 성 모양의 러브호텔이 외국 배낭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유럽인들의 눈에 이러한 성의 모습을 띈 숙소가 어떻게 보일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다.

 

아스만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사회와 문화는 이러한 기억의 공간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되게 되는데 이 기억의 공간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기에 이른다고 한다.[4]

 

근대화된 제2의 일본을 조선에 건국하려던 일본의 야심으로 우리의 근대화된 도시의 스펙터클은 일제강점기와 맞닿아 있다. 유럽을 닮고 싶어했던 일본의 서구식 로망이 식민지 시대부터 이 땅에 이식된 것일까. 근대식 건축뿐만 아니라, 당대의 출간된 동화책에 이르기 까지 서구를 흠모하는 일본의 생각과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전적으로 일본의 잔재 안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만약 식민지가 되지 않았고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었다 했을 지라도 당시의 서구양식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고 안착시켰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라는 필터를 통해 지배된 억압된 사회구조안에서 서구화를 체험당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의 근대시절 낭만과 소비욕구는 해방 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이러한 모텔 디자인은 웨딩홀과 요양원, 교회, 심지어 군부대까지 저마다의 목적과 기능을 달리하면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비롯, 유럽 성의 벽면의 일부 구조물들은 FRP로 복제되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연재에는 이러한 확산부분들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참고

[1] 김효진. (2016). 일본의 초기 근대 건축의 양상과 변모: 식민지 연구를 위한 전제로서의 식민모국 연구. 일본비평, (15), 248-281.

[2] https://youtu.be/wCoYnk8fZjM / 2019년 교토 토이필름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은 35밀리 마스터 프린트 필름.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경의 경성의 풍경.

[3] 이도담(Do-dam LEE). "문화적 기억과 장소에 관한 성찰." 철학과 문화 36, 호 (2016): 70-91, .

[4] 이도담(Do-dam LEE). "문화적 기억과 장소에 관한 성찰." 철학과 문화 36, 호 (2016): 7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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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은_김태은 작가는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다. 가상현실과 테크놀러지를 활용한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중이다. (www.iir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