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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는 독립적인 예술가로 서술될 수 없는가 | ARTLECTURE

베르트 모리조는 독립적인 예술가로 서술될 수 없는가


/Insight/
by 최선
베르트 모리조는 독립적인 예술가로 서술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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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언제나 여성을 주제로 한 콘텐츠는 딜레마에 마주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에게 주목하는 기회가 되지만 그 주목 또한 남성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남성적인 관점에서 여성을 묘사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베르트 모리조를 한 화가로 보기보다 그저 마네라는 화가의 여인이라는 시선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표현은 전형적인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관점이자 성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2014년에 개봉한 <마네의 제비꽃 여인 : 베르트 모리조>라는 영화가 있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이란 제목의 부제로 붙은 베르트 모리조는 19세기 인상주의 화단에서 활동했던 여성 화가다. 당시 여성 화가는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주류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영화의 제목을 보고 알 수 있듯이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마네의 남동생의 부인이었고, 마네의 도움을 받아 인상주의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베르트 모리조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의 제목이 ‘마네의 제비꽃 여인’인 것은 이상해 보인다.


왜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의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대상화되는가? 마네 없이 베르트 모리조는 독립적인 화가로 존재할 수 없는가? 왜 여성은 같은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화가에게 영향을 ‘받은’ 존재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가? 일련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우리가 여성 화가를 바라보는 미술사적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베르트 모리조라는 여성 화가를 다루면서도 여전히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관점이자 성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기존의 남성이 주체가 되는 미술사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으로 여성 화가를 바라보고, 또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영화 속 몇몇 연출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려 한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 포스터



먼저 영화 속 마네와 베르트의 관계성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이들을 두 명의 독립적인 화가로 보기보다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보면서 마네와 베르트 사이의 위계가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위계적 관계 묘사로 인해 영화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첫 번째는 마네와 베르트 사이의 로맨스에 치중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교류는 경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본 영화는 이처럼 경시된 예술가로서의 교류에서 마저도 여성 화가가 남성 화가에게 종속되고 영향 받는 관계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두 번째 문제점을 가진다. 영화에서 마네는 베르트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고 마네는 베르트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며 ‘당신은 늘 나에게 행운을 주고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베르트 또한 마네에게 끌리지만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서 이런 감정들을 외면한다. 하지만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파리에 마네를 찾으러 간다. 그러나 마네는 이미 가족들과 파리를 떠난 후였고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그와 재회한 후 그녀는 그녀가 그린 <로리앙 포구>를 선물하고 마네는 그녀에게 언니를 또 그리고, 인생을 그리라는 조언을 한다. 그 조언 후 베르트는 <요람>을 그려 살롱 전에 출품하고 호평을 받는 것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베르트가 외젠과 결혼하면서 마네에게 <제비꽃과 부채>를 선물로 받고 울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런 서사의 결말은 마치 베르트의 인생이 마네와의 관계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곧 영화 자체가 남성 없이는 여성의 삶이 의미가 없다는 여성의 종속성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고 성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제작된 것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베르트는 마네의 가족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인상주의 화단에서 활동을 하며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 나가고 다양한 인상주의의 특징이 담긴 작품을 남기는데 영화에서 그에 대한 서술은 일절 없다. 그녀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줄리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 안젤라>와 같이 직업여성으로서 화가의 역할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유모에게 대신하도록 하면서도 그림으로 어머니로서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이런 작품들은 베르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보여주고 그녀의 심리적인 혼란과 갈등을 대변하듯 다른 인상주의자들보다 인물의 표현방식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필치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런 그녀만의 독창적인 주제적, 형식적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영화의 서사와 연출은 그녀가 아무리 최초의 인상주의 여성 화가였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영향을 준 남성 화가가 주체가 되는 남성 중심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베르트 모리조, <줄리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 안젤라>, 1880




또한 본 영화는 베르트와 마네 간의 관계를 이성적인 관점에만 치중해 표현했기 때문에 정작 베르트의 작품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릴리앙 포구>를 선물한 베르트에게 마네는 그녀에게 언니를 그리고, 인생을 그리라는 조언을 하는데, 이 장면 이후 베르트가 <요람>을 그려 살롱전에 출품하고 호평을 받는 것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마치 베르트의 <요람>이 마네의 조언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런 연출은 호평을 받았던 그녀의 <요람>마저 그녀의 독립적인 업적이 아니라 남성 화가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관객으로 하여금 할 수 있게 만든다.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


  


또한 베르트가 자신의 <요람>이 유일하게 호평을 받았다며 작품에 대한 평론을 듣고 매우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과연 실제로 베르트가 자신의 <요람>에 대한 평론을 듣고 좋아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평화로운 실내 공간 속에서 아이와 교감하며 아주 정숙하고 고요한 삶을 아주 평화롭게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베르트는 그녀의 언니가 아기를 낳고 양육에 매진하면서 젊은 시절 자신과 함께 예술에 매진하던 꿈은 잃어버리고 어머니이자 가정주부로서 굉장히 권태롭게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언니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요람>을 그렸다. 자신의 꿈은 잊어버리고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굉장히 수동적이고 권태로움을 느끼는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위와 같은 남성 평론가들의 평론을 들었을 때 베르트는 과연 호평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마냥 해맑게 웃을 수 있었을까? 물론 자신의 작품이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기쁘기는 했겠지만 그런 것을 포착할 수도 없는 남성 평론가들의 평론을 보면서 조금은 씁쓸하게 웃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베르트가 어떤 심정으로 <요람>을 그렸는지, 과연 그런 평론을 들었을 때 베르트가 정말 순수하게 기뻐했을지에 대한 것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이는 마네와 베르트의 관계에만 치중하며 베르트 자체의 독립적인 화가로서의 고민과 변화에는 치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여성을 주제로 한 콘텐츠는 딜레마에 마주한다.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에게 주목하는 기회가 되지만 그 주목 또한 남성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남성적인 관점에서 여성을 묘사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베르트 모리조를 한 화가로 보기보다 그저 마네라는 화가의 여인이라는 시선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표현은 전형적인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관점이자 성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본 영화는 에두아르 마네를 설명할 때는 그 자체로 위대한 거장으로 그 누구도 필요 없이 설명하면서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라는 남성화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은 베르트 모리조를 독립적인 화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관점의 서술을 통해 베르트 모리조를 독립적인 한 화가로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마네의 제비꽃 여인이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를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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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선_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