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 소스는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의 작품을 알아가고 그것을 따라 하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언어를 알아야만 새로운 언어로 말할 수도 있으며, 과거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해석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끊임없는 도전은 그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 때로 쇼어와 이글스턴 같은 전통적인 로드 트립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중심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알렉 소스를 일컬어 "현대예술사진 그 자체의 역사를 인정하는 한편, 예술적이고 통속적인 다양한 시각문화의 전통을 반영하여, 단순히 그 전통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편"하고 있다는 평가는 그가 사진 매체의 전통과 현대를 고루 아우르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전시 포스터. Courtesy Three Shadows Photography Art Centre.
미국 사진가 알렉 소스는 매그넘 회원으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뿐만 아니라 매거진과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2004년 발표한 <미시시피 강가에서 잠들기 (Sleeping by the Mississippi)>로 이름을 알린 그는 슈타이들 출판사에서만 3권의 책을 출간하는 등 지난 십여 년간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때의 차세대 주자 1)에서 오늘날 미국의 사회, 지리적 풍경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진가 2)로 불리게 된 것도 납득이 간다.
소스는 인물과 풍경, 정물 등 장르의 구분 없이 사진을 찍으며 하나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했다. 황량한 바닷가 바위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향수 한 병이 놓인 광고 사진을 만들었고 (Lancôme Hypnôse Homme), 십여 년 동안 컬러 작업만 하다가 하나의 시리즈 전체를 흑백만으로 찍기도 했으며(<송북 (Songbook)> 시리즈), 사진은 어린 딸이 찍고 자신은 오직 편집만 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브라이턴 사진 사냥 (Brighton Picture Hunt)> 시리즈).
이처럼 어떤 형식적인 관습(그것이 설마 자신의 것이었다 해도)에 매이지 않는 알렉 소스가 보여 주는 작업의 주제 또한 다양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양쪽을 잇는 스펙트럼 위에 있다고 말한다. 소스는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inward looking)과 바깥세상을 향한 바라봄(outward looking) 사이를 오간다. 3) 때로는 자신의 깊은 안쪽으로 침잠해 들어간 은둔자들의 풍경을 기록하고(<브로큰 매뉴얼 (Broken Manual)> 시리즈), 또 어떤 때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펼쳐진 삶의 풍경을 담으면서(<미시시피 강가에서 잠들기>, <나이아가라 (Niagara)>)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Hotel, Dallas City, Illinois, 2002” from the series, Sleeping by the Mississippi.
베이징 싼잉탕 사진예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우리 사이의 공간 (A Space between Us)>에서 삼십여 년에 걸친 알렉 소스의 작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프로젝트라고 한 <미시시피 강가에서 잠들기>, <나이아가라>, <브로큰 매뉴얼>와 함께 90년대의 초기작 <완벽한 이방인 (Perfect Strangers)>과 <사랑을 찾아서 (Looking for Love)>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송북> 시리즈와 2019년 발표한 <난 당신의 심장이 얼마나 격렬히 뛰는지 알고 있다 (I know how furiously your heart is beating)> 프로젝트 이미지들도 있다.
소스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찍는다고 했지만, 많이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 주로 초상 사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스는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깃든 인물 사진을 만든다. 특히 전시장에서 크게 인화한 사진 속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시선이 저절로 그들의 눈으로 향하게 된다. 그 눈빛이 품고 있는 사연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Charles, Vasa, Minnesota, 2002” from the series, Sleeping by the Mississippi.
물론 그가 처음부터 인물 사진을 잘 찍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 방향을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습을 위해 철저하게 낯선 사람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깥을 거닐다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 말을 걸고 사진으로 담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이 <완벽한 이방인> 프로젝트는 지금의 알렉 소스가 있게 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에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준 미시시피 시리즈를 찍었다. <여기에서 저기로 (From here to there)>라는 이전 작업 제목처럼 의식의 흐름 (stream - of - consciousness)을 따라간 이 프로젝트는 원래 미시시피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종의 연쇄 반응처럼 한 피사체에서 또 다른 피사체를 찾아가며 자신과 공명하는 장면을 찍었다. 한데 나중에 편집하다 보니 이걸 미시시피강에 대한 이야기로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Patrick, Palm Sunday, Baton Rouge, Louisiana, 2002” from the series, Sleeping by the Mississippi.
낡고 빛바랜 프레임 속 시간은 미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잊힌 지역이었던 중부 지방의 풍경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새롭게 들려준다. 어떤 면에서는 스티븐 쇼어나 윌리엄 이글스턴이 보여 주었던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데 언뜻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그의 풍경은 쇼어 등이 보여 주었던 미국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5)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으며(not authentically documenting the world that’s out there), 6) 자신의 감정을 따라 프레임 속 풍경을 선택적으로 편집하고 잘라낸다. 버려진 호텔에 들어가 이것저것 자리를 바꿔 보며 눈에 들어온 장면을 담고(“Hotel, Dallas City, Illinois, 2002”),7)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만난 소녀의 초상 안에 하이파이 기기와 향수병과 잘라진 십자가를 함께 담는 것(“Sheila, Leech Lake Indian Reservation, Minnesota, 2002”)도 이러한 선택의 일환이다.
8x10 대형카메라로 담은 소스의 미시시피 이미지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살려낸 프레임 속 공간을 보며 그 안에 깃든 사연을 그려보게 한다. 에메랄드색 나무문에 그려진 낙서, 전도사라는 문구를 품은 수감자의 눈동자, 낡은 집 앞에 선 털보 아저씨의 손에 들린 모형 비행기를 보면 사진 속 사람들과 사물들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소스가 기록한 풍경은 이전 세대의 마스터들과는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여 준다.
미시시피 프로젝트가 엄청난 호평을 받으면서 슈타이들 출판사에서 사진집까지 출간하게 된 소스는 뒤이어 <나이아가라>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작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라는 관점에서 비껴서서, 폭포를 배경으로 놓인 사랑의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왠지 어색하게 담긴 신부의 초상과 연인에게 받은 이별 편지 뒤에 놓인 남자의 표정과 오늘 밤 벌어질 이혼 파티 안내판에는 통상적인 관념에 매이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공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후로 이어진 것이 <브로큰 매뉴얼> 시리즈다. 미시시피와 나이아가라 프로젝트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펼쳐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브로큰 매뉴얼>은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을 찾았다. 그들은 사회와 사람들 곁을 떠나 숲으로, 동굴로, 오지로 스며든 사람들이었다. 알렉 소스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레스터 B. 모리슨(그의 출판사 Little Brown Mushroom의 약자와 같다)이라는 가상의 작가를 창조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터뷰하며 은둔자들의 생활을 탐구했는데, 그가 반 농담으로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닥친 ‘중년의 위기’ 8)를 이겨 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풍경은 때로 삭막하기도 하지만 ‘혼자 있음’의 자유를 머금은 미소처럼 일종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알렉 소스는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의 작품을 알아가고 그것을 따라 하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언어를 알아야만 새로운 언어로 말할 수도 있으며, 과거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해석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끊임없는 도전은 그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 때로 쇼어와 이글스턴 같은 전통적인 로드 트립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중심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알렉 소스를 일컬어 "현대예술사진 그 자체의 역사를 인정하는 한편, 예술적이고 통속적인 다양한 시각문화의 전통을 반영하여, 단순히 그 전통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편" 9) 하고 있다는 평가는 그가 사진 매체의 전통과 현대를 고루 아우르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는 <미시시피 강가에서 잠들기>로 유명해졌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그때까지 십여 년이란 세월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자신의 약점을 훈련하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연습을 하며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작업들이 명성을 얻고, 전 세계의 갤러리와 박물관을 돌며 전시를 하고, 슈타이들 출판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십년의 시간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대부분 사진가의 첫 번째 책은 대단히 훌륭한 경우가 많다. 보통 10년은 걸리니까"라고 한 소스의 말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10)
알렉 소스는 2022년 초에 최신 프로젝트 <A Pound of Pictures>를 새롭게 발표했다. 무게(pound) 단위로 낡은 사진 묶음을 파는 상인에게서 착안한 프로젝트 제목은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진이라는 것이 어떤 무게(가치)를 지니는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새로운 작업을 통해 그의 시선이 담은 미국의 풍경을 다시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 <A Pound of Pictures> 소개 영상:
각주 :
1) 앤 샐린 제이거 지음, 박태희 옮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미진사, 2008, p.178 -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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