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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의 관점에서 본 방송의 현실적 미학 | ARTLECTURE

방송작가의 관점에서 본 방송의 현실적 미학


/Artist's Studio/
by 쇼코는왜
방송작가의 관점에서 본 방송의 현실적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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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방송의 미학을 ‘현실’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장르마다 또 프로그램마다 제작방식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나는 가장 생활과 밀접한 교양, 그중에서도 정보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3년 차 방송작가, 아직도 한참 배워야 하는 연차지만 원래 제일 밑에 있다 보면 그곳의 현실을 제일 잘 느끼는 것 같다. 이제는 방송작가와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많이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주목은커녕 최저임금조차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정말 많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하는 시간, 복지, 열악한 외주제작 체계 등 개선해야 할 여러 부분이 남아있는 건 매한가지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송계의 예술 세계, 즉 미학은 순수예술이나 현대미술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방송작가 일이 3년쯤 지난 지금, 나는 내가 겪은 방송계의 현실적 미학과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내 직업에 대해 미학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조금 민망하다. 그렇다고 예술 세계라고 하는 것도 너무 거창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방송의 미학을 현실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장르마다 또 프로그램마다 제작방식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나는 가장 생활과 밀접한 교양, 그중에서도 정보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배 타고 나가서 문어 잡았을 때>


 

저녁 시간대에 방송되는 정보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볼거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나가는 방송, 거기다 경쟁 프로그램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매력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시의성이 있으면서 신기하거나 규모가 커야 한다. 간혹 정보프로그램에 나오는 엄청난 양의 해물찜이나 고기로 만든 탑, 신기한 비법 등을 다루는 가게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고 선택받는 것이다.

 


<2일 연속, 20시간 촬영일 때 나오는 표정>

 


방송의 예술 세계인 현실은 여기서 발생한다. 과연 대한민국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그것도 경쟁 프로그램에 최근 노출되지 않은 집들이 얼마나 많을까? 방송 현실의 가장 큰 핵심인 과장이 필요한 순간이다. 어떤 대상을 강조할 때 살릴 부분은 살리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부분은 은근히 묻어가는 건 방송뿐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영상이라는 특수한 매체로 전달되는 방송의 특성상 실제보다 더 부풀려서 내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물리적인 양뿐 아니라 시간 같은 추상적인 것들까지 적용된다. 이 때문에 방송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메뉴나 실제 경력보다도 더 부풀려서 나가거나, 이렇다 할 기술이 없음에도 장인이나 명인처럼 나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물론 이것들은 실제로 있는 사실에 기반해 과장하는 수준이지만, 가끔 너무 과한 경우 조작 방송의 의혹을 받기도 한다.


 

<촬영 중 매운 연기에 눈물이 났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도 결국 직장인이다. 방송사마다 기준이 있고, 피디와 작가는 그 기준 내에서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보통 정보프로그램과 같은 데일리 프로그램들은 보통 하루에 4~5개의 코너로 구성되고, 요일별로 각기 다른 팀이 맡아 제작을 진행한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기조는 같게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의 구성이나 진행은 피디와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나씩 방송을 내보낸다는 게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제작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술관은 과장에 기반한 현실이다. 정보프로그램이 대부분 비슷해 보이는 것도 이런 사실 때문이다. 효과는 즉자적이면서,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예술관을 선택하고 안주해 있는 게 지금의 정보프로그램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결국 시청률 때문이다. 매일 눈으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그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방송은 점점 이전에 없던 과장을 더해간다. 양과 경력은 많을수록, 기술은 화려할수록, 비주얼은 신기할수록, 그리고 내 생활과 밀접할수록 사람들은 갖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보일러 배관 청소를 소재로 방송한다고 했을 때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물이 안전하냐는 메시지를 던진 후 깨끗한 물이 잘 나오던 집에서 청소를 시작하자 더러운 물이 쏟아지고 배관이 때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위에서 말했던 과장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이다.

 


<촬영 중간 즐기는 라면>

 


결국, 내가 몸으로 느끼면서 생각한 방송의 미학은 과장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송은 없다. 설사 다큐멘터리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과장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다만 그 선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는지가 사람들이 방송을 믿게 만들지 의심하게 만들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직 이 일이 재밌고 제작진 입장에서 나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믿지 않으면 시청자도 믿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방송을 만들어야 과장도 예술관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을 나는 아직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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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쇼코는왜.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