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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중심에서 돌아보는 A.G(Avant Garde) 정신 | ARTLECTURE

팬데믹의 중심에서 돌아보는 A.G(Avant Garde) 정신


/Insight/
by 주예린
팬데믹의 중심에서 돌아보는 A.G(Avant Garde)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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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일상을 잃고 항상성이 무너졌다. 언택트(un-tact)상황 속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인류는 ‘그저 좋았던 지난날을 돌이키는 것’으로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실제 물질에 대한 경험을 그리워하며 지난날의 미술을 복기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웹을 통해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웹 공간을 비롯해 이전의 미술에 없던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졌다. 미래가 불투명한 만큼, 전환을 위해서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해 보인다. 당연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에 대해 비판적, 반성적인 태도가 필요해졌고, 역사 속 ‘아방가르드 미술’의 정신을 검토하며 최근의 미술계를 돌아보려 한다....

21세기에서 역으로 거슬러 찾는 아방가르드 정신성

 

1) 2020아방가르드 정신성의 필요성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전위적 예술, 급진적인 예술 운동으로 불린다. 아방가르드는 시대를 규정짓는 용어가 아니다. 하나의 이론이나 방법론도 아니고, ‘운동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리는 성향 정도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아방가르드의 운동성, 급진적 성향을 정신성이라고 규정할 것이다.(1) 정신성은 특정 시대를 타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를 검토할 때 언제든 아방가르드의 기조를 보였던 시도를 다시 아방가르드적 시도로 조명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미술에 큰 전환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사회적인 변화가 함께하곤 했다. 사회적인 변화에는 전쟁, 자연재해와 같은 불행한 역사도 많았지만, 2020년 인류가 겪고 있는 변화는 조금은 그 결이 다르다. 전 지구적 펜데믹으로 인한 장기적 사회 고립이 첫 번째 큰 변화인 한편, 이러한 변화를 AI의 이용과 웹 접근이 매우 용이해진 시대에 맞게 된 것은 예상 밖의 가능케 한다. 두 가지 변화가 맞물린 상황에 큰 전환점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 넓게 보면 (전체 사회 모두가 그렇듯) 갑작스럽게 사회가 멈추고 미술계 또한 아예 중단되어 버릴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든 미술이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또 하나. 더 좁게 들여다보면, 미술계에서 인터넷과 웹을 이용한 예술이 시도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아트라는 용어는 더 이상 신선한 이름이 아니지만, ‘인터넷 아트작업에서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새로운 매체 자체의 매력 어필에 머무르고 있다. 웹 공간의 성격을 이용하는 작업 또한, 물리 공간이 아닌 이라는 단편적인 이분법에 호소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이런 작업을 전시할 때는 인터넷 아트를 다시 현실 공간에 그림 걸고 조각을 놓듯 옮겨놓는 안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넷 아트나 뉴미디어가 기술을 앞세워 전시장에 들어오게 되자,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 매체 작업에는 이제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이 실제 물질이 주는 하나만을 바라는 실정이다.

 

팬데믹이라는 공통의 상황 아래, 인류와 예술가는 강제성을 갖고 가상, 웹 공간을 구체화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실제 공간을 상실한 다음 물리 공간의 성격에 대해 다시 규정해보게 되었다. 미술의 안팎으로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이다. 긴 미술의 역사 속 진보적인 역사관을 크게 허물었던 아방가르드는 지금 돌아본다면 정신성일 것이다. 이 정신성을 짚어보며, ‘질병의 창궐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모순된 변화를 동시에 맞게 된 오늘날 가능한 전환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2) A.G(Avant Garde)의 태동과 전개

 

아방가르드는 완성된 이론이 아닌 이념으로 불리며, 최초에는 사회적, 정치적인 이념에서 출발해 문화적 이데올로기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회에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련의 운동 성향을 일컫는 용어는 처음에는 이데올로기, 이후 그룹의 성격이 강한 학파를 거쳐 이제는 흐름의 개념이 강조된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흐름이라는 다소 모호한 성격은 특정 시대를 지칭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방가르드가 최초로 시도된 것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여러 답안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이론적으로 아방가르드의 개념이 정리된 것은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는데, 보통은 1차 세계대전 전후를 가리킨다.

 

피터 뵈르거는 아방가르드 미술을 정의하며 예술의 발전사를 개괄했다. 그는 예술을 역사적 유형학으로 구성하며, 예술 아래 각각 사용 목적, 생산, 수용 세 개의 카테고리를 두어 역사를 정리했다. 뵈르거는 이 개별 카테고리들이 비동시적으로 발전했다라고 말하며 예술의 속성을 단선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어려움을 시사했다. 그는 예술에서의 자율성을 찾으려 시도하며 미술사를 세 가지 종류로 다시 구분하였다. 첫째는 중세 이전의 예배적 예술’, 그다음은 루이 14세 때와 같은 궁정 예술’, 그리고 그 이후를 시민예술로 보았다. 주목해야 할 시기는 마지막 시민 예술기, 이 시기는 최초로 미술이 ‘(제작한 사람)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표현을 시작했던 시기이다. 더 이상 미술은 실용적이거나 종교적인 목적만을 따를 필요가 없었고, 자기표현을 필두로 주관적인 미를 추구하는 미술이 등장할 수 있었다. ‘유미주의적 태도가 인정되며 뵈르거는 미술이 최초로 완전한 의미의 자율성을 획득했다고 보았다. 이 시기 예술은 사회 내에서 단일 분과로 인정되었고, 처음으로 독립된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유미주의를 통한 자율성의 획득은 동시에 사회로부터 예술을 분리시킨다. 아방가르드가 등장하는 것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방가르드는 앞서 언급했듯 사회에 저항하거나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며 한때 이념으로 출발했던 개념이다. 사회가 근대를 향해가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 본격적으로 등장한 아방가르디스트들은, 제아무리 예술이 자유를 얻었다 해도 결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방가르드가 지적한 시민사회 예술의 자율성은 사회로부터 예술을 유리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급진적이고, 때론 과격한 변화를 옹호했던 많은 아방가르디스트는 동시에 막시스트이기도 했다. 이들은 계급이 분화하고 부르주아 중심으로 바삐 이전하던 사회를 잠정적으로 옹호하거나, 아무 태도를 취하지 않는 예술의 자율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아방가르디스트의 목적 또한 결국은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것에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한 자유를 얻은 예술은 그들이 꿈꾼 이상과는 맞지 않았다. 결국 아방가르드의 주장은 예술에게 양립할 수 없는 자유를 요구했다는 한계를 맞으며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강한 움직임이었지만, 완결되지 않고 소멸한 아방가르드는 운동, 정신성이라는 미완의 개념으로 남았다. 비록 논리를 견고히 해 완결된 이론이 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미완으로 남았기 때문일까, 그 정신성을 이어가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몇 차례 미술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미술 속 아방가르드 정신의 재도전

 

1) 동시대로 넘어온 A.G 정신의 시도: 사회에 참여하는 미술?

 

아방가르드는 진보적인 사회관을 떠나서, 미술에 들어올 때 일상에 흠을 낼 수 있다라는 이유로 사회와 배타적인 위치에 놓인 적이 더러 있었다. 수많은 미술이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제적당하거나, 혹은 역사에 남았고 이런 미술은 제도비판 미술’, ‘사회 참여 미술등 다양한 이름을 거쳐 갔다. 오늘날 이들은 공공 미술의 영역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80년대 미국에서 시도된 어떤 공공 미술을 통해 아방가르드 정신을 계승하려 했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뉴욕 연방 광장, 뉴욕, 1981-1989

출처: 조선일보 기사 ‘명화로 보는 논술] 공공의 美인가, 공공의 敵인가’

 


80년대 말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가 철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울어진 호>는 미술이 공동체에 개입해 일종의 경종을 울리려 한 시도였고, 끝내 미술적 실천이 공공의 제도에 고개를 숙인 스캔들로 기억되었다. 광장을 통행하는 일상에 겪는 불편함이 주된 불만 사항이었고, 결국 ‘미술’이 권위를 앞세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중에게 공격적인 개입을 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후 ‘기울어진 호 사건’은 본 작업이 남아있지도 않지만, 공공 미술이 대중에게 개입하는 방식을 놓고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과 그 이전의 공공 미술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발판이 되었다.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이 논의되며 결과적으로 미술을 향유할 대상이 되는 대중, 관람자의 지위가 올라갔지만, 논의가 깊어질수록 <기울어진 호>는 관람자와 관계 맺기에 실패한 해프닝으로 간주되었다. <기울어진 호>는 미술이 용인되는 범위를 규정하는 논쟁에 기여했지만, 당시에는 미술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에는 결국 모더니즘 미술과 같이 권위적이나 사회적 효용은 없는 미술로 여겨지곤 했다.

 


존 에이헌, 레이몬드와 토비, 달리샤, 코레이의 조각으로 구성된 44번 구역 경찰서 건물 앞에 있는 사우스 브롱스 조각 공원의 전경, 설치 당일, 1991 

출처: vandalog.com ‘John Ahern’s Bronzes’


 

또 다른 공공 미술 사례 뉴욕시 사우스 브롱스 44번 구역 경찰서 앞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된 존 에이헌의 미술을 위한 퍼센트 프로그램<기울어진 호>와는 달리, 작가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정을 받으며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작가는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스스로 떠돌이 초상화가라 칭하며 친밀감을 표하며 프로젝트를 위해 실제 지역 주민들을 캐스팅해 길거리에 세웠다. 그냥 주민이 아니고, 범죄자, 매춘부, 마약상 등 경찰이 숨기고 싶어 한 브롱스 지역의 실제 주민을 내놓았다. 거리에 나선 이들의 동상은 가장 익숙한 존재이면서 브롱스가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들이 자신들의 동네에서 인정받기를 바란다던 에이헌의 바램은 끝내 동상이 철거되며 일단락되었다. <기울어진 호>에 이어 또 하나 실패한 해프닝이 된 것이다.


두 해프닝은 시간이 흘러 미술로 인정받았다. <기울어진 호>는 공공 미술을 단순한 기념비적 조각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고, 그 공으로 다시 공공 미술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진으로만 남은 <기울어진 호>는 역설적이게도 작품이 설치되었던 뉴욕 맨해튼 페더럴 플라자의 기념물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공공 미술에 대한 가장 유명한 논쟁을 스토리로 안은 작품은 최초의 래디컬한 정신성을 잃고 공공 미술의 대표적인 예시로 미술사에 안착했다. 에이헌의 작업 역시 세라 정신을 이어간 대안 미술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작업 또한 경찰서 앞이라는 공간에서 경찰서를 대변하지 않고, 공간의 의미를 확장했다.’는 말로 정리되었고,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무너진 A.G 정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앞서 살펴본 아방가르드 운동은 최초에 태동할 적, 그 이후 계승하려는 시도 두 경우 모두 실패한 운동으로 끝났다. 아방가르드가 결국 생산성 없는 이념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편, 아방가르드가 사회 운동의 성격을 갖고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조금 다른 입장을 끌어낼 수 있다. 사회 변혁의 첫머리에서 가장 시급한 내용을 외쳤던 이들의 구호는 어쩌면, 그들의 영향으로 조금이나마 사회가 변하기 시작할 때 그 가치를 다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방가르디스트들에게는 늘 이상이 있었다. 그들이 꿈꾼 이상 사회 유토피아(utopia)는 안타깝게도 한 번도 세상에 오지 않았지만, 늘 많은 논의와 변화를 남기고는 운동과 함께 사라졌다.

 

1) 21세기 아방가르드를 위한 유토피아, 웹 속의 다른 장소를 찾아서

 

아방가르드의 시작은 (예술에 관할 때나 아니어도 늘) 이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출발한다. 아방가르디스트들이 꿈꾼 유토피아는 완전하고 이상적이었지만,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졌다. 태동하던 아방가르드와 계승한 아방가르드가 꿈꾼 사회는 달랐고, 결국은 모두 오지 않았다. 영영 오지 않는 미래 대신,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적인 세상을 찾고자 한 또 다른 개념이 있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미셸 푸코가 제안한 개념으로 유토피아와 대응된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두고 실제 문화, 장소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장소(Of other spaces)”를 말했다. ‘다른 장소는 문화, 문명 속에 늘 존재했지만, 주류에 들지 못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이유로 그 존재가 모호했던 장소들을 말한다. 용어는 사전적 뜻 그대로 이소적인 장소(spaces)’를 가리키며,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의 예시로 바다 위 어딘가 떠 있는 배, 어린아이가 우산을 펴 만든 집과 같은 임시적인 장소를 든다. 이후 그는 헤테로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연결하는 개념으로 둘 사이에 거울같은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거울은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를 잇는듯하며, 또 거울 속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추상적인 공간이 된다. 이 추상적인 개념은 오늘날 웹 공간에 투영하며 공간의 성격을 구체화 할 수 있게 되었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찾으려는 시도는 곧 미술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소적 공간은 노마딕한(nomadic) 현대 사회의 모습과도 결부되며, 동시에 현실에 새로운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는 현실에 참여하되 현실 너머를 향하는 미술을 바란 아방가르드 정신에 매우 부합하는 개념이다. 헤테로토피아는, 특히 거울 개념을 통해 웹 공간까지 끌어들이며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관심에 올랐다.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 2.0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편, 웹이 장소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다음에는, 미술은 새로운 장소를 발견했다는 감탄을 보내는 정도에 그치며 이 가상공간을 더 구체화하지 않았다. 웹 공간에서는 현실에서 가능한 많은 것들이 더 빠르고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다. 과속과 무질서의 공간은 불가능하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한 것들도 빠르게 배포, 재생산되는 부정적인 면모도 드러냈다. 웹을 기반으로 극단적, 자극적인 이미지와 정보는 타고 나갔다. 미술에게 웹은 이미 떠도는 눈 아픈 이미지들을 다시 조합하고, 또다시 조합하며 수많은 아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었다. 지금 현실이 이렇게 혼란하니, 예전에는 당연했던 공간과 사라진 감각을 찾는 향수만이 지속되었다. 21세기 미술의 웹은 더 구체적인 맥락을 찾지 못하고, 무질서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엉켜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웹 속의 헤테로토피아를 찾아야 한다. 팬데믹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뤄오던 이 시도를 앞당겨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2) ongoing 헤테로토피아의 노력 셋.

 

언택트 미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으로, 웹이 시도하는 새로운 장소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전통 매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 새로운 관객을 포함하는 장소, 그리고 미술 플랫폼에 접근할 때, 플랫폼-관객으로 전달되는 일방적, 수직적인 관계에서 탈피할 수 있는 것의 세 가지이다.

모든 미술실현의 전제가 되었던 물리 공간이 사라지자, 미술은 스스로 서있을 공간부터 다시 찾거나 아예 새로 만들어야 했다. 쌍방향 소통이 원활한 웹 플랫폼은 이미 활용되던 공간을 미술의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새로운 장소를 찾은 것일 수도 있고, 관객참여를 통해 장소가 성립한다는 점에서 새 공간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국내외로 라이브 전시 해설 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작품 발표를 아예 웹에서 진행하는 등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 초기의 웹 공간 활용은 지난 일을 아카이브 하는 것에 그쳤지만, 장기화되는 비대면 미술에 대비하며 미술은 아예 웹을 위한 새로운 형태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평면, 조각, 설치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들은 웹을 전제로 처음부터 다른 개념으로 시도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재료가 갖는 속성이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는 계기로 이어졌다. “회화는 정말 실제 붓 자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통쾌함을 전제로 하는가?”, “조각은 실제 재료와 깊이가 만드는 공간감을 빼고는 성립할 수 없는가?”, 그리고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설치 미술에서, ‘같은 장소라는 개념은 무엇을 말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이 가능해진 것이다.

 


 

미술은 이제 쌍방향 소통이 용이하고,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가변적인 공간에 나름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 플랫폼 전시공간에 발을 들인 건 기존 미술의 관객도 있지만, 이 상황을 순수하게 바라보며 접근한 호기심 어린 관객도 있다. 미술에 관한 관심과 배경지식의 층위가 다양한 관객들이 동시에 미술에 접근했다. 미술에 관심이 전무하던 어떤 관객과 미술 전문가는 이 장소에서 처음 만나 편안하게 채팅(chatting)’을 통해 교류할 수 있다. 순수하고 일시적인 관계는 어쩌면 니콜라 부리요가 꿈꾸었던 마이크로 코뮌(micro-community)(2)에 가장 가까운 사례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새로운 관객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반응을 내놓고, 새롭게 만나는 관객들이 활발하게 소통한다면 이 장소는 (작가가 의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뀔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행되고 있는 실시간 미술 플랫폼은 아직은 더 지켜보아야 그 성격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미술의 장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치 않아도 될 것이다.

 

웹 미술 플랫폼의 마지막 특징으로는 관객과 플랫폼 주체가 수평적, 혹은 임의적인 상태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관객도 미술 주체에게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미술 주체 또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관객과 미술 주체가 갖는 벽, 부담이 허물어진 다음에 중요한 것은 미술 그 자체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허울을 제거한 다음에야 미술은 오롯이 주목받을 수 있게 되었다. SNS 피드를 통한 전시정보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미치며, 관객은 오로지 전시의 내용이나 이미지만을 보고 접근하게 된다. 전시 공간의 위치, 인지도 혹은 참여 작가 개개인의 화려한 이력은 이제 꽤나 부수적인 요소가 된 듯하다. 허물없는 플랫폼은 결국 다양한 관객을 이끌고, 다양한 만남을 창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양태는 웹을 그저 재생산 이미지가 포화된 공간으로 치부하던 이전의 미술에서 한 차원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미술을 위해 웹을 이용하던 지난날에서 나아가, 웹 속에서 미술을 시작하는 날이 온 것이다.”

 

언택트 사회 속 미술에서 출발해 긴 미술의 역사를 거쳐 다시 웹 플랫폼으로 돌아왔다. 현재의 비상 상황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이 필요한 이유를 재고하고, 이후 피터 뵈르거를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이론에 관한 논의를 짚어보았다. 이어서 실패한 운동을 굳이 계승한 동시대의 몇몇 시도도 살펴보았다. 아방가르드를 계승하는 이들에게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글의 마지막에서는 21세기 예술가에게 아방가르드가 필요한 이유, 현재의 인류에게 필요한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았다.


다시 현재 상황을 마주한다. 웹에 의존한 미술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웹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미술, 새로운 장소 발굴일 것이다. 언택트 미술계의 대안적인 유토피아, 실현 가능한 헤테로토피아는 웹의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거나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의 발견과 이행에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한동안 미뤄온 구체적인 장소 맥락을 찾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큰 전환을 바라며, ‘아방가르드 정신을 회복한 다음에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마치 낯선 곳에 체류하며 연구하는 민족지 연구가의 마음으로,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처럼 말이다.

 

(1) ‘아방가르드’를 정신성으로 규명하고 글을 전개함으로서, 필자는 팬데믹 비상상황에서 미술을 이어가야하는 현 인류(예술가)에게 아방가르드 정신성을 요구한다. 미술사를 돌아보면 미술은 여러 차례 위기를 직면했고, 이 글은 그 때마다 사고의 전환으로 이를 해쳐간 태도가 지금 필요함을 촉구하는 일종의 마니페스토이다.

(2) 니콜라 부리요는 그의 저서 『관계의 미학』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순수한 대화가 가능한 관계’인 ‘마이크로 코뮌’ 개념을 제시하며, 미술을 통해 이 관계의 형성 가능성을 제시했다.


*참고문헌

1. 레나토 포지올리, 『아방가르드 예술론』, 박상진 역, 문예출판사, 1996

2. 피터 뵈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 최성만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3. 권미원, 『장소 특정적 미술』, 김인규 외 공역, 현실문화, 2013

4. Peter Burger, “The Negation of the Autonomy of Art by the Avant-garde” in Participation, 2006

5. 서진수 편저,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 마로네에북스, 2015

6. 심상용 외 공저, 『한국 미술의 빅뱅: 단색화 열풍에서 이우환 위작까지』, Yellow hunting dog, 2016

7. 미셸 푸코, 〈다른 공간에 대하여〉, The Visual Culture Reader, ed. Nichlas Mizoeff, Routleadge, 1998, 전혜숙 역.

8. 니콜라 부리요, 『관계의 미학』, 서울: 미진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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