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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을 진품처럼 그린 화가 이야기 | ARTLECTURE

위작을 진품처럼 그린 화가 이야기

-<베르메르 vs 베르메르>(우광훈 장편소설, 2008, 믿음사) -

/Art & Preview/
위작을 진품처럼 그린 화가 이야기
-<베르메르 vs 베르메르>(우광훈 장편소설, 2008, 믿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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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는 실존했던 위작 화가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 1889~1947)를 가상 인물인 가브리엘 이벤스에 빗대어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가 우광훈의 2008년작 장편소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39x44.5cm, 1665,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소장




북유럽의 모나리자',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다들 한번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그린 작품입니다. 그가 살아생전 남겼던 작품은 많지 않은데, 진위 논란 없는 유화는 32점 뿐이라고 합니다. 작품이 많지 않기에 베르메르의 작품은 위작과 도난 사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한 판 메이헤런의 위작입니다.



- 법정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판 메이헤런, 출처 : 나무위키




한 판 메이헤런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했습니다. 문제가 됐던 것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헤르만 괴링이 위작품 중 일부를 구입하게 되면서 종전 후 네덜란드의 국보급 회화를 적국에 남겼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게 됩니다. 메이헤런은 법정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보이며 혐의를 벗게 됩니다.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는 실존했던 위작 화가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 1889~1947)를 가상 인물인 가브리엘 이벤스에 빗대어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가 우광훈의 2008년작 장편소설입니다.

순수한 미술학도에서 위작 화가가 되기 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피카소가 등장해 기존 회화의 벽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예술을 열었던 시대였습니다. 사진으로 빗대면, 연출이 가미된 순수 사진이 등장하면서 기록 사진이 더 이상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권위를 추락해가던 것과 비슷합니다.

상업적인 면에 대해 고민하는 현업 작가들이 읽었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내용들을 발췌했습니다.




'자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선 하나하나에도 신경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질 정도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왜 그 말이 떠올랐는지 가브리엘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가에서 화상으로 탈바꿈한 자신에게, 이 말만큼 덧없는 문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돈에 가까워질수록 예술은 저만치 멀어져 버리고, 순수와 열정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 화가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33~34페이지



가브리엘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 여우 같은 늙은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 결과에 대한 부당함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오베르마스의 작품에 드러난 조악한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민해 보이는 칼루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전 이번 대회의 심사 결과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전 오베르마스의 작품 속에서 제대로 그려진 선, 제대로 칠해진 색 하나조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과장되고 거칠고 불완전합니다. 그가 사용한 무질서한 선과 색채, 흐릿한 윤곽, 한쪽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형태들은 일견 자신의 개성과 인상을 표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타인을 속이기 위한 교활한 노림수나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심사가 잘못되었다? 자네, 지금 나의 심미안을 의심하는 건가?"

순간, 칼루의 눈이 반짝였다. 잠시 둘 사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물론 가브리엘, 자네의 이번 작품은 훌륭했어." 하고 칼루가 흥분을 가라앉힌 듯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정말 있는 그대로를 그려 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더군. 어쩌면 그 재능은 보쟁을 능가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네. 자네만의 세계를 만드는 게 필요해. 예술은 결국 그런 불안정한 거짓말로 더욱 빛나기 때문이지."

"하지만 교수님,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그림은 유행을 좇는 이들에겐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통찰력 있는 예민한 눈과 깊이 있는 진실은 결코 속일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중략...

"가브리엘, 난 솔직히 자네의 이번 작품에 크게 흥미를 가질 수가 없네. 자네가 만들어 낸 선과 색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 그 어디에도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사유의 깊이나 뜨겁게 물결치는 생명의 에너지를 찾아볼 수가 없어."

- 79~80페이지




나탈리가 이야기를 끝맺자, 사이먼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양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나탈리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왜요? 삼촌은 그의 그림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않았나요?"

사이먼은 뭔가 결심한 듯 담담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가능성은 충분히 엿보였지. 하지만 나탈리, 가브리엘이 재능 있는 화가로는 성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잘 팔리는 화가는 결코 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는 분명 범인과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유연하지 못해. 대중의 취향을 맞추지 못하는 화가의 작품은 결코 팔리지 않지. 팔리지 않는 작품을 나는 계속 살 수 없단다. 왜냐하면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사꾼에 불과하기 때문이지. 나탈리, 너도 알다시피 요즘 화랑들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단다.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인기가 있기 때문이지. 고갱이나 세잔의 작품들은 이곳으로 들어오는 즉시 팔려 나간단다. 피카소와 몬드리안 역시 강세를 보이고 있지. 그런 게 현실이야.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팔고 싶으면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캔버스 위에 표현해야만 하는 거라고."

- 111페이지




사이먼이 안내한 다른 방에는 밀레, 파우벨스, 바그너, 밀로 등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진품과 모작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사이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 불리는 것들은 모두 박물관에 틀어박혀 있어.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자신의 거실이나 안방에 걸어 두고 싶어 한다네. 난 그런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이런 작업들을 병행하고 있지. 물론 이런 작업엔 합법적인 면과 불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 같이 세상에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공개된 모작은 가능하겠지만 위작은 불가능해. 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경우 어떤 게 위작이고 어떤 게 진품인지 일반인은 잘 알 수 없다네. 그건 소위 전문가라고 일컫는 미술사학자들도 마찬가지야.

가브리엘, 난 세상의 모든 작품들은 결국 모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과연 루브르의 작품들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지금껏 그려 온 것들,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 그것들은 결국 최상의 모방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말일세. 자네가 앵그르나 들라크루아를 넘어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차라리 최고의 모작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나와 함께 말일세."

이렇게 말을 끝낸 사이먼은 가브리엘의 두 눈을 강렬하게 응시했다. 마치 자신을 믿고 따르란 듯이.

모작과 위작.

도저히 안 될 말이었다. 그것은 화가의 도덕적 양심은 물론 현행법 테두리에서도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 115페이지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그 얘긴 이 정도에서 그만두세. 하지만 가브리엘, 자네에게 한 가지 충고해 줄게 있다네. 돈을 벌고 싶다면 이건 꼭 참고해야만 할 거야. 솔직히 내가 보기에 자네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오로지 자네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어.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변하고 있지. 19세기까지만 해도 앵그르나 들라크루아가 거실 벽면을 독차지하고 있었지. 하지만 이젠 하나 둘 로트레크와 르누아르에게 그 자리를 물려두고 있다네. 세잔이 세인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고흐가 새롭게 인식되었던 1905년은 이제 지났어. 그들은 햇병아리가 아니라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어설픈 형태가 신앙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번져 나가고 있는 거야. 대세를 거스르지 말게. 그게 자본주의이고, 시장이며, 현실이네.

가브리엘, 가능하다면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을 추구하게. 자네가 고전적인 미학관을 추종하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것까진 좋으나 상업성마저 외면한 숙맥이 되어서는 안 돼.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야 자네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말일세. 대중은 작가의 명성, 그 이외의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아. 그만큼 그들은 단세포 같은 존재야. 그러니 무슨 수를 쓰든 이름 있는 화가가 되어야 하는 거야. 명성을 쌓고 나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든 말든 하란 말이야. 자네 그림이 화랑의 진열장이나 중산층을 위한 장식품으로 널리 인식되지 못한다면 어떤 비평가도 자네의 그림을 알리는 데 앞장서지 않을 걸세. 참, 그리고 한가지도 더. 자네가 이곳에서 모작을 그리기 싫다면 그냥 평범한 점원으로 일해도 괜찮아. 이건 자네와의 우정을 잃고 싶지 않은 나의 마지막 제안일세. 결정은 언제 해도 좋아."

"고맙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습작을 위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하고 가브리엘이 말했다.

- 116~117페이지





"가브리엘, 학교 교칙에 따라 자넨 오늘부로 퇴학이야.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게. 위작에 대해선 위원회의 소명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게 우리 학교의 전통이란 건 잘 알고 있겠지?"

중략...

교장이 문밖으로 나가 버리자, 살루스가 기다렸다는 듯 가브리엘을 향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가브리엘, 명성이 찾아오기 전에 난 내 인생이 무명으로 끝나버릴까 봐 항상 두려웠어. 그리고 어느 날 명성이 나에게 찾아왔고, 이번엔 애써 얻은 명성을 잃어버릴까 봐 난 또 두려워졌네. 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창작에 할애했고, 사랑과 우정을 애써 외면했으며, 비평가들의 변덕과 오해에 대항해야만 했지. 성공과 그에 따른 명성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자만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항상 더 큰 산을 떠올렸고, 그 산에 오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만 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자넨 정말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세상이 마치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자본가들이 차지한 세상은 화가들로 하여금 예술에만 집착하도록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탐욕스러운 화상들은 돈이 되는 화가들이라면 그들의 후원자가 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들의 습작품까지도 아낌없이 사들였다. 이제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은 투자의 일환쯤으로 인식되었으며, 그 가치는 오로지 돈으로 환산될 뿐이었다. 어떤 이는 회화 작품을 결혼 지참금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그림이 걸린 벽을 지그시 응시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작품은 지금 1만 7000프랑에 불과하지만 우리 딸이 장성할 때쯤이면 10만 프랑 이상을 호가하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에밀 구도 광장 13번지에 거주하는 화가들, 아직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은 대부분 가난한 게 현실이었다. 빈익빈 부익부, 그 빌어먹을 자본주의가 성스러워야 할 예술 안에도 기생하는 셈이었다. 화가란 가난과 그로 인한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거라지만,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내하고 극복하기란 너무나 힘겨웠다.

"자네를 둘러싼 가난과 고통은 결국 자네가 예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싶어 하는 뮤즈의 호의라고 생각하게."

가끔 이런 말들로 가브리엘은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205~206페이지





"자네 유화는 언제쯤 발표할 생각인가?"

만시즈의 오른손에는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이 들려 있었고, 볼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직은 데생에 좀 더 전념할 생각입니다."

가브리엘의 무덤덤한 대답에 만시즈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항상 그놈의 데생만 고집하는군. 물론 선만 가지고도 좋은 화가가 될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계속 데생만 고집한다면 그건 자네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냐."

"제 데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아냐. 내가 보기엔 자넨 데생에 안주하려는 것 같아. 왜 자네는 모험을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나. 유화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있나?"

만시즈는 탁자 위에 놓인 포도주를 집어 들어 다시 유리잔에 한잔 더 따랐다.

"물론 유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지극합니다. 하지만 데생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화에 매달리는 것은 분명 무리입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순진한 가브리엘....." 하고 만시즈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오해하진 말게. 이제부터 자넨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아니 유명해지기 위해서라도 유화에 전념해야만 하네. 이곳을 드나드는 컬렉터들 중 데생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 부을 만큼 파격적인 투자가는 극히 드물어. 색채가 들어 있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모험을 하려 들지 않지. 그래서 자넨 더욱더 유화에 매달려야만 하는 거야. 현대 예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후기 인상파 화가들을 보게. 세잔, 고갱, 쇠라, 고흐, 그들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 그 하나만으로도 현재 최고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가장 훌륭한 은신처는 때 이른 영광이라고 니체가 말했어. 예술가에게는 무엇보다 성공이 필요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 여부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이야. 자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성공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유화에 승부를 걸어야 하지. 여기 걸린 작품보다도 더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켜야 한단 말일세. 어때, 내 말을 이해하겠나?"

-224~225페이지





식사가 끝나고, 가브리엘은 노란 튤립이 꽂힌 꽃병을 완벽하게 재현내 낸 정물화 한 점을 만시즈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역시 자네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는군." 하고 만시즈가 감탄의 빛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내 차분해졌다. "그런데 이건 너무 튤립 같군. 튤립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자네들은 어떤가?"

만시즈는 주위에 앉아 있는 젊은 화가들에게 가브리엘의 튤립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만시즈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시즈의 말이 이어졌다.

"가브리엘, 자넨 이제 프로야. 자신의 그림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데생과 유화는 분명 그 성격이 달라. 유화는 약간의 변형 그 이상을 요구하지. 그림 애호가나 화상들은 자네의 튤립에서 새로운 뭔가 떠오르길 바라고 있어. 아니, 튤립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튤립이 도출되길 바라지. 자넨 그런 그들의 관심과 요구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돼. 물론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자네만의 스타일로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젠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말일세."

순간, 가브리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저더러 요즘 아이들 흉내를 내라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가브리엘, 난 지금 단순한 모방을 이야기하는 게 아냐. 단지 잘나가는 작품들 속에 들어 있는 대중적인 요소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지. 위대한 화가들 역시 대중의 요구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네."

만시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유화는 분명 데생과 달랐다. 단지 눈의 정확성과 손재주로만 이루어진 무미건조한 작품 따위에 만족하는 구매자는 이제 극소수에 불과했다. 화가, 평론가, 화상, 컬렉터 할 것 없이 모두 유기적인 네트위크를 형성하며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 전도사로서 제 몫 이상을 행하는 중이었다.

중략...

그날 밤, 만시즈의 말들은 가브리엘의 뇌리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예술가에게 언제나 하나의 육체 속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 비록 소심하나 놀라운 재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창조자의 모습과, 때론 세속적인 성공과 화려함에 더없이 집착하는 속물적인 범인의 모습 말이다.

-226~228페이지





'그럼 간절할 마음으로 자네 그림을 기다리겠네.'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가브리엘의 시선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의 가슴은 잔잔한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물론 그것은 이제 자신에겐 더 이상 창작이란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위작이야말로 진정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슬픈 문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 예술인지, 무엇이 창작인지, 그렇게 미적 기준조차 모호해진 마당에 위작이라는 것이 더 이상 자신에겐 범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위작의 대상으로 선택한 베르메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존 시 그는 유럽은 물론 자국인 네덜란드에서조차 크게 인정받지 못한 슬픈 운명의 사나이였다. 가브리엘은 그 슬픈 운명 속에서 진한 동질감과 더불어 애정을 느꼈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자화상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복수극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진정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불온성.....

그렇다. 이제 베르메르의 그림을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시선 속에는 예전에 찾아볼 수 있었던 거장에 대한 호기심이나 존경심 같은 것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비평가들을 어떻게 속여 넘기고 얼마의 가격에 팔려 나갈까 하는 속된 계산뿐이었다. 이제 가브리엘은 자본의 논리에 힘없이 갇혀 버린 초라한 환쟁이에 불과했다. 높푸르게 빛나던 지고한 이상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껍데기만 남은 매미처럼 허상을 향해 울어 대고 있었다.


-282페이지




"존경하는 재판장님, 전 지금 이 자리에서 결코 위작의 당위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화상이기에 앞서 한때 화가를 꿈꾸었던 사람으로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 있습니다. 이번 저의 위작 행위가 비록 나치 독일을 향한 분노에서 출발하였지만 솔직히 그 이면에는 좀 전 제가 언급한 부분들, 즉 저의 재능과 작품에 대한 세상의 무시와 냉대, 그로 인한 반감과 증오의 감정도 내재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비록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해 이번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물어가 버렸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 미술판에 약간의 혼란과 충격을 안겨 주고 싶었습니다.

소수의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따뜻하게 수용할 수 있을 때 문화는 비로소 진보하리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 선두에 서야 하는 사람들이 유행과 물질적 가치만을 허황된 것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정규 미술학교에서 퇴학당한 저는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도 언제나 열외자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벽이 창작의 현장에서도 저를 내몰았고, 결국 전 약삭빠른 장사치로 전락해야만 했습니다. 제 위작은 결국 이러한 세상에 대한 분노요, 복수극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312페이지



가브리엘의 위작 법정 결과, 적국을 도왔다는 혐의는 무죄로 판결받게 됩니다. 그러나 미술품 위작에 대해서는 유죄로 징역 1년에 추징금 30만 길더로 마무리 됩니다. 가브리엘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8개월째 수감 중이기에 4개월만 더 지나면 형기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 1946년 3월 27일 심장병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실제 주인공인 판 메이헤런은1947년 8월 29일 미술품 위조 혐의로 2년행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58세로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감옥 대신 요양원으로 가게 됐고 그해 12월 29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하고자 했던 것이 생을 단축시킨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소설을 마치고 나서, 장정일(시인, 소설가) 님의 작품해설도 역시 재밌습니다. 그중 눈여겨볼만한 문장입니다.



"서양 회화사의 현대는 단 하나의 정지된 시점에서 소재를 바라보도록 한 기하학적(과학적) 원근법이 피카소와 그 일당들의 의해 깨지면서 시작된다. 오직 화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가브리엘 이벤스가 미술 대학에 입학했던 1923년에는 이미 미술 세계의 현대주의가 10년 넘게 진척된 상황이었다. 피카소 자신도 반신반의했던, 그러나 세상에 드러내자마자 미학적 혁명이 되어 버린 '아비뇽의 처녀들'이 완성된 것은 1907년. 피카소는 그 작품에서 르네상스 이래 유럽 회화를 지배해 오던 인체 형상에 대한 고전적 규범과 원근법을 파괴함으로써 고전 회화를 과거라는 관(棺) 속에 넣었다. 그런데도 젊은 가브리엘 이벤스는 구시대적 미감을 일평생 간직한다.

현대 회화가 나름의 과학적 원리에 의해 운용된 일점 원근법을 폐기하게 된 여러 원인 중에는 19세기 중반에 출현한 사진이 한몫을 한다. 대상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사진이 등장하면서부터 고전 회화는 존립 근거가 불투명해졌다. 초상화로 먹고살던 화가들의 밥줄은 사라졌고,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것이 더 이상 독창적이 될 수 없었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사진이 하지 못하는 것을 화가들이 해야 했고, 또 할 수 있어야 했다. 세잔과 모네를 위시한 인상파 화가들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것이 현대 회화의 신호탄이 되었다. 작중의 가브리엘이 예감했듯이 강물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강물의 히름을 타지 않았다. 파리 체류 시절, 명성에 대한 간절함과 화상의 회유로 잠시 입체파를 흉내 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화풍인 사실주의로 돌아왔다.

- 335페이지, 작품해설, 장정일(시인, 소설가)의 가브리엘 이벤스의 행장 중에서




소위 돈이 안 되는 예술을 하고 있어, 생활고를 겪는 예술가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가브리엘이 주변의 말들에 휘둘리지 않고 계속 자신의 예술을 했으면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고전주의 화풍의 대가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요?







판 메이헤런에 대해선 그의 홈페이지(https://meegeren.net/)에서 자세한 정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작가.비두리(박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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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_비두리_2003년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일하는 부모님>, <동물원> 연작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외 <한강>, <꽃>, <길고양이> 작업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