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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함께하는 재미난 이야기 | ARTLECTURE

색과 함께하는 재미난 이야기

-윤주희작가소개-

/People & Artist/
by 나효주
색과 함께하는 재미난 이야기
-윤주희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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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윤주희 <색과 함께하는 재미난 이야기> 알부스 갤러리, 2019. 12. 12 - 2020. 02. 09

작가는 자신이 보고 배운 서양 고전을 바탕으로 삶의 단면과 상상의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명료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화면 속에서 포개어진 색 덩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관객들은 작가가 발굴해 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들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이미지의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그가 다음에 가게 될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일까? 에드워드 리어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윤주희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미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판화가이다. 작가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의 심상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 강렬한 색과 그에 어울리는 명료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윤주희에게 이미지는 수없이 많은 색으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쌓아 올린 이미지는 종이 위에서 늘어지고 생략되고 압축되고 폭발하고 춤추고 뛰어다닌다. 작가는 삶의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을 큼지막한 이미지와 색채의 덩어리로 생생하게 표현해 낸다.


윤주희의 상상력은 매일 반복되는 식사에서부터 광대한 우주까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뻗어 나간다. 그가 그려 내는 환상은 현실과 밀착되어 있다.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터 리드의 글에 그림을 그린 책 <만약에>에는 즐거운 상상으로 일상을 전복시키는 꾸러기들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어떤 아이는 작은 배를 만들어 타고 세계 일주를 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집이 가까워졌을 때 아이는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항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인파를 뒤로 하고 아이는 뱃머리를 돌려 다시 여행을 떠난다. 또 다른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러 돈을 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이 망해서 가족들이 어찌할 줄 모를 때 아이는 그동안 모아 둔 돈을 자랑스럽게 보여 준다. 어떤 아이에게는 점쟁이가 여행을 떠날 거라고 예언한다. 아이는 순전히 점쟁이를 골려 주기 위해 평생 집을 떠나지 않는다. 이처럼 <만약에>에는 각 장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기대와 달리 상황이 반전되는 일이 반복된다. 매 순간 새로운 풍자와 해학이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읽는 사람에게 유쾌한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흑백 블록 프린트 Black and White Block Printing 2019



그러나 윤주희가 그려 내는 세계는 걱정과 근심이 없는 마냥 천진한 세계가 아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장난감 병정과 발레리나 인형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월리엄 블레이크의 기괴하고 환상적인 시, 날카롭고 섬뜩한 유머를 구사하는 에드워드 리어의 시 또한 작업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작가는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에드워드 리어의 냉소적이고 기이한 시를 바탕으로 일련의 흑백 블록 프린트를 제작했다. 블록 프린트 작업 중 <Who-Who>는 올빼미 둥지에 얹혀사는 노인에 대한 서글픈 이야기이다. 올빼미 둥지에 사는 노인은 올빼미가 울 때 같이 운다. 올빼미들 사이에서 홀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노인은 혼자서 울지도 못하고 새 울음소리에 맞춰 겨우 우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또 다른 작업 <Tiger ride>에서 호랑이 등에 탄 여인은 자랑스럽게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다르듯이 돌아올 때 웃고 있는 건 여인을 잡아먹은 호랑이이다. <Spiders>는 러시아에 사는 어떤 여자아이에 대한 서글픈 이야기이다. 소녀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른다. 소녀가 비명을 지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비명이 너무나 끔찍해서 소녀가 비명을 지를 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소녀는 거미 떼에게 둘러싸여 있다. 소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미들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소녀의 외침을 듣는 사람은 없다. 왜 거미 떼는 소녀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왜 소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혹 소녀가 평상시에 너무 자주 비명을 질러서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일까? 답은 알 수 없다. 아무도 다가올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혼자서 울 수도 없는 노인, 뒤바뀐 승자와 패자, 들리지 않는 외로운 외침 등 작가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뒤틀린 세계의 단면을 냉소적인 유머를 곁들여 우리 앞에 내어놓는다.



Beastly Verse 2015


Reading cat 2019



윤주희는 도처에 차고 넘치는 사물들 중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 이 방랑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의 모습에 매혹된 여행자는 순간순간의 생각과 상념을 성실하게 기록으로 남긴다. 이 여행기는 색과 이미지의 향연이자 다양한 형태의 모순과 반어와 역설과 유머의 조합이다. 여기에는 태양처럼 밝고 강렬한 이미지와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색채뿐만 아니라 메마르고 갈라진 삶의 편린들 또한 존재한다.


윤주희는 자신이 보고 배운 서양 고전을 바탕으로 삶의 단면과 상상의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명료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화면 속에서 포개어진 색 덩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관객들은 작가가 발굴해 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들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 이미지의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그가 다음에 가게 될 세상은 과연 어떤 곳일까? 에드워드 리어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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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