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뒷모습과 옆모습, 가장 중요한 사람의 얼굴이 표현되지 않은 그림은 미스터리 하다. 하지만, 대상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궁금증도 잠시 - 그림에서 전달되는 순간의 찰나 - 잠잠히 멈춰버린 시간의 흐름은 보는 이의 시선을 멈춰 서게 한다.
한지민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Instagram)이었다. 그때 당시 갤러리에서 기획자로 근무하며, 새로운 작가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다양한 작가들이 있다. 이미지 소비의 시대, 그 속에서 이미지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하루에 몇십, 몇백 개의 이미지를 상대하는 나는 뭔가 신선한 이미지를 필요로 했다. 많은 것들이 식상했기 때문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Yeemock Gallery, Seoul
소셜미디어로 처음 접한 한지민 작가님의 작품들은 절제된 표현과, 구도 그리고 신비하고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작품들의 구도는 하나같이 대상의 뒷모습과 옆모습, 절제되고 단순한 공간을 채도가 낮은 색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볼 때에 첫인상, 그 찰나의 몇 초가 중요하다. 이것을 결정짓는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작품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아닐까 싶다. 어떤 그림은 크기가 커야지만 그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며, 어떤 작품은 크기가 작아야지만 그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의미 없이 크기만 한 작품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작품의 크기와 재료 선택, 그리고 그려질 대상을 정하고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은 작가의 타고난 센스와, 고민 그리고 순간적인 선택에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종종 인스타그램으로 그림을 확인하던 중 – 2021년 화랑미술제에서 한지민 작가의 작품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비교적 거대한 스케일로 작업을 하는 화가들의 작품보단 크기가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그 작은 소품들과 그림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세상에는 반짝반짝거리는 완벽한 물건과 작품들로 가득하다. 완벽하게 상품적 가치를 입고 태어나는 디자인 물품, 가방, 신발 그리고 다양한 오브젝트들 이것들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지민 작가의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그림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 여전히 지속되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가공되어 마무리된 물건이 아닌(필자는, 이렇게 마무리된 상품으로써의 작품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여지를 열어놓고,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마냥 행복하지도, 마냥 밝지도, 마냥 자극적이지도 않다. 약간은 우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우울감이 나를 헤치지는 않는 나의 일상생활을 대변하는 듯했다. 어쩌면, 많은 것들을 말해주는 인간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과, 작품이 표현한 ‘대상’에 나를 투영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 작가와 작품이 성장하듯, 그것을 향유하는 관객과 소장자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봄과 겨울이라는 상반된 계절 모두에 어울리는 한지민 작가의 그림들을 감상해보길 바란다.
흰, Oil on canvas, 72.7 x 60.6 cm, 20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Yeemock Gallery, Seoul
작가노트 / 한지민 “너무 뒷모습만 그리는 거 아니야?”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심을 본다. 혼자 있는 시간, 타인을 대할 때 쓰던 가면을 벗고 느슨하게 풀어헤쳐진 모습. 하루 종일 부여잡고 있던 긴장을 내려놓은 채 녹초가 되어 잠든 모습. 나를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움직임이 내게는 그림 재료로 다가온다. 꾸밈없는 뒷모습은 소박하며, 너무 솔직하다 못해 때로는 힘들고 서글프다. 단지 뒷모습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등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여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몸. 잔뜩 웅크려 앉은 옆모습에서 현실을 외면하려는 속마음을 읽는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은 진실일 때도 있지만, 쉽게 거짓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얼굴 보다는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유이다. 한 지 민 HAN, Jimin 1978년생 학 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전공 개인전 2020 monolouge, 이목화랑, 서울 2020 혼잣말,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당진 2019 두 사람, 이목화랑, 서울 2019 두 사람,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당진 2018 어떤 날, 갤러리 담, 서울 단체전 2019 Portrait, CICA미술관 2019 바라보다, 순성미술관 2019 Da Capo-2019, 갤러리 담 2018 1주년을 돌아보며,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2018 자리 Something in here 4인전,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2018 New Thingking, New Art 청년작가 공모전, 갤러리 바이올렛 2018 ZEBRA ART FAIR 예술공간 봄 2017 소소함, 일상을 보다, 당진 문예의 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