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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 다리가 없는 새> 김문근 작가 | ARTLECTURE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 다리가 없는 새> 김문근 작가

/People & Artist/
by 박하리

VIEW 2005
  •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 다리가 없는 새>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충족되려면 외부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김문근 작가는 넘실거리는 생동을 그린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다.

  

 <Abandoned Wreath, oil, oil bar on canvas 2019>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아름다운 그림과 대비를 이루듯 버려진 화환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버려진다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버려진다는 것은 그것이 소모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여러 사업가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사고 팔고, 하물며 사람까지도 사고 판다. 누군가들은 우리 사회가 촘촘한 이해관계의 거미줄 망으로 뒤얽혀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려한다. 이러한 아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왜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생존의 두려움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주 거대한 틀로 나누어보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고를 수 있는 길은 사랑의 길이거나 혹은 두려움의 길이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연인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등 어떠한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자연스러운 사랑을 발견하고 삶의 모든 상황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두려움이란, 아주 깊은 근원의 두려움까지 포괄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의 받았던 상처, 혹은 죽음이라는 허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전염병이고 그것 자체가 고통체이다. 그 고통체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염된다. 고통체는 부정적인 감정을 숙주삼아 그것이 원동이 되어 살아가는 기생충일 뿐이다. 그것이 당신을 죽일 수는 없다 


작가는 버려진 화환을 통하여, 인간들의 소비와 소모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사물이 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허감. 이러한 공허감이 사회적으로 피폐하게 된 것은 우리의 현실 중 한 부분이다. 그는 이러한 아픈 현실을 개인적인 작품 속으로 담고 있다  


<Abandoned Wreath, oil, oil bar on canvas 2019> 


그는 말한다.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강박이 계속 집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계속 새로워야 하고 새로우려면 결국 자기파괴적이게 된다. 밥을 먹으면서도 혹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항상 한켠에 계속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뒷목을 잡는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차라리 행복 했던것 같다. 쉽게 만족했으니까 말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지속적으로 과거의 나와 결별을 해내며 스스로 내 삶을 갉아 먹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바라던 내가 됐을 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Abandoned Wreath, oil, oil bar on canvas 2019>


그는 항상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목적으로 발전해 나갔고, 성공이라는 외부적인 조건들을 좇다 보니 어느 새 그 지점에 다다랐다. 많은 외부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었지만 그는 공허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이익적인 관계를 찾아 다가오고, 그것은 그에게 더욱 자신이 버려졌다는 소모적인 감정에 빠지도록 유도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다리가 없는 새가 된 것 마냥 성공을 위하여 가족, 친구,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현실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시기와 질투를 얻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 또한 날아간 것 같다고 말이다. 자신이 버려진 화환이 된 것 마냥 소비가 되고, 버려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것이 강박과 집착으로 발전하여 햄스터가 쳇바퀴 돌리듯 계속하여 무엇인가를 집착하는 행위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공허와 슬픔은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소모와 소비, 그리고 이해관계의 부정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익, 이기심. 그러한 에너지는 사회적으로 만연하다.


많은 사람들은 외부적인 성공을 좇는다. 행복이란 돈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한 착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기심이라는 에너지를 자신에게 끌어들여 살아간다(물론 이기심 자체가 그 사람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이기심은 부정적인 에너지일 뿐이다.).

 

 <Abandoned Wreath, oil, oil bar on canvas 2019>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고려해야 한다. 당신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삶은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없이 소중한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내일 당신이 죽고 나면 자신이 가졌다고 착각하였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당신이 이 지구에서 간직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한다. 얻으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얻은 기쁨은 잠시이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욕심으로 채울 수 없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채우려는 헛된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잠시라도 욕망을 주체할 수 없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들을 더 얻으려고 하고 그것은 공허감으로 자리 잡힌다.


하지만 내면적인 기쁨에는 공허나 슬픔이 자리 잡힐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나누어갔던 것들, 이를테면 그들과 함께 했던 따뜻함, 서로 슬플 때 안아주었던 사랑, 그리고 기쁨을 나누는 행위, 누군가가 아플 때 옆에 같이 있어 주고, 누군가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해줄 때, 그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진심이 움직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잊고 앞을 보며 질주하거나 혹은 과거를 되새김질 하면서 현재를 죽인다.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은 우주에는 ‘지금 이 순간’ 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지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속을 깊이 바라보았을 때, 감정이라는 헛되고 가벼운 주제가 아닌, 우리의 본질적인 사랑이 그 속 안에 있다. 우리는 항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이 아프다. 너무 많이 소비한다. 너무 많이 욕한다. 너무 많이 가지려 하고, 너무 많이 성공하려고 한다. 너무 많은 돈을 바라고, 너무 많은 행복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현재를 살지 못한다.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은 조건들을 바라고, 너무 많은 명품, 너무 많은 성형, 너무 많은 고통을 지니고,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말로 우리가 너무 많이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영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굉장한 행운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실 모든 것은 비어있는 것이다. 피리가 가장 맑게 불 수 있을 때가, 그 속 안이 깨끗하게 비어있을 때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허상을 내려놓고, 이 본성을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의 사랑이 안에서 꿈틀거릴 수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과 사랑이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Abandoned Wreath 130.3cm x 5m oil, oil bar on canvas 2019>

 

김문근 - 여태 좋은 가족 좋은 친구 좋은 동료이지 못했다. 그러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그럴수 없었다. 작업을하다 문득 후회스러워 전화라도 해볼까 하다가도 이기적인것같아 못내 폰을 던진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것도 욕심이지만 서운함을 느낄 혹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정말로 미안함을 갖고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집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붓질하나하나에 누군가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것도 다 주변에서의 도움이 있었기 마련이다. 그들의 삶을 함께 사는것이다. 나는 특별한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선택됐을뿐이다.

혹시 주변에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응원해줘라 특히 지금 잘하는것보다 그글이 좋아하는 작품을 사줘라. 쓰레기를 샀다고 생각들 수도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에게 평생 은인이다. 경험상 좋아하는건 계속하게되고 계속하다보면 결국 잘하게된다. 그런 결과들이 선순환되다보면 조금 더 긍정적인 사회가 되지않을까.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2/artlecture

박하리 - 현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언제나 나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맑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유동적이다.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바꿀 수 있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단 한 순간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순간적인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