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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탕이 녹는 시간 –feat. 한강 <흰> | ARTLECTURE

각설탕이 녹는 시간 –feat. 한강 <흰>

/Artist's Studio/
by 켈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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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탕이 녹는 시간 –feat. 한강 <>

-feat. 한강 -

... 중략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단것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따금 각설탕이쌓여있는 접시를 보면 귀한 무언가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게 모든 걸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 한강, 각설탕 _흰 중에서.

 

나는 지금 특별한 작업환경에서 머물면서 끊임없이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해온 작업들을 돌아보면 모든 주제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낙원'에서의멈춘 시간과 사라진 시간

스틸라이프-Still life 시리즈에서 표현한 정지된 시간

흔들린 사진에서 멈출 수 없는 시간을 포착하려는 의도.

그리고 이 곳. 모든 시간이 녹아내린, 그래서영영 의미를 상실할 수 없는 이 곳에서 나는 흰 시간을 만난다.

 

한강 작가의 책을 베를린의 서점에서 찾았을 때 그 반가움과 뿌듯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책 표지에 ''이라는 제목이한글로 표기되어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리고그녀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 아프고 선명했다.

내가 이곳에서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평면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동안 나는 그녀의 입체적이고 선명한 글을 읽었다. 그녀가 담담하고도 아프게 말하는 시간과 내가 언제나 표현하려애쓰던 시간은 어떤 지점에 만날 수 있을까.



흰것들의 단어를 모으고 그 하얀색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흰 공간 아래 숨기도 하면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 내려갔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나는 오래전 일본 나오시마 근처의 작은 온천 호텔에 갔을 때를 기억했다. 시간의 흔적을 낱낱이 드러내는 그 낡고 오래된 호텔에 있던 정말 하얗고 깨끗하게 바스락 거리던 이불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 이불에 안긴 채 잠들면서 나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나를 진심으로배려하고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나는 정말로 운이 좋아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겪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럼에도 일종의 폭력들에 여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음에 끊임없이 슬픔을 마주한다. 내가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나쁜 어른'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언제나 간접적인 폭력을 가했던 이들과 다르지 않은 그의 맨 얼굴을 보고 난 후 나는 다시 어둠의 터널을지나면서 온 마음으로 부서져야 했다.



한 인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판단하고 그럼에도 그를 여러 방면으로 이용한 뒤, 모든 것이 당신 탓이다 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사람은 폭력적이다. 나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투 운동이나 내가 학교와 사회에서 겪었던 불공평한 상황들이 모두 이러한 개인의 폭력성들에서비롯되었다고 믿는다. 그러한 개인이 권력을 가진 경우 내가 사는 나라는 쉽게 불행해질 수 있다.


오래전 이곳에서 종교 때문에 30년 동안 전쟁을 하고, 군국주의와 파시즘 등의 여러 이유들로 세계대전이 일어났던이 모든 비극은 사람이 해 온 일이니까.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타인이남긴 흰 그림자를 내내 붙잡고 울 수밖에 없다고 한강 작가는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진정한 애도만이 우리를그들에게 놓아줄 것이며 다른 체온이 다시 우리를 덥혀줄 것을 믿으라고. 타인의 의미는 그런 것이라고.

부서지면 부서진 채로 지나온 시간을 다 받아들인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녀의 글이 내게 알려주었다.



사람도공간도, 시간을 거부하고 무조건 새로워지려 하거나 젊음을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볼 때 늘 안쓰럽다.

나는 지금 변화에 적응해온 장소의 한가운데에 있다. 변화가 두려워 고통에안주하기보다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 이 버려진 장소는 아름답다.

각설탕처럼 내내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은 각설탕처럼 쉽게 녹아내린다


그럼에도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있을 뿐이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2/artlecture

캘리장_Artist in the Netherlands. Germany. Korea 게으른 예술가.

2014네덜란드의 아티스트 레지던스에 입주했습니다지금은 독일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으며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며 지냅니다이 벅찬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물음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kelly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