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bert Smithson, 《Spiral Jetty》, 1970
Cultural Confinement
1972년에 발표된 그의 글 「Cultural Confinement」은 미술의 제도와 전시 방식에 대한 스미스슨의 문제 의식을 잘 보여준다. 스미스슨은 전시회에 있어서 한계를 설정하는 주체가 예술가가 아니라 큐레이터가 될 때 ‘문화적 감금(cultural confinement)’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큐레이터(전시 기획자)가 때로는 예술과 작품을 어떠한 ‘언어’ 속에 고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는 화이트 큐브 형태의 갤러리 공간을 감옥과 병동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형태는 가능한한 깨끗하고 중립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생겨났지만 오히려 그 특성이 작품의 힘을 잃게 한다. 스미스슨의 표현으로는, ‘병동과 감방이 있는 정신병원과 감옥’과 같은 미술관에 예술 작품이 설치되는 순간 그 힘을 잃고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오브제나 표면이 된다고 했다. 예술 작품이란 형이상학적 형태나 개념을 추구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만들어졌지만 화이트 큐브에 놓임으로써 조각과 같은 입체 작품은 오브제로, 평면 회화 작품은 표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Museums, like asylums and jails, have wards and cells — in other neutral rooms called ‘galleries.’ A work of art when placed in a gallery loses its charge, and becomes a portable object or surface disengaged from the outside world. - Robert Smithson,「Cultural Confinement」 중 - |
여기서 ‘neutral rooms(중립적 방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자.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최소화하여 최대한으로 ‘순수한’ 공간을 목표로 하는 화이트 큐브는 흔히 객관적 감상의 환경을 마련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스미스슨에게 그 중립성은 환상에 가깝다. 이 중립성이라는 목표는 현실 세계의 시공간이 지닌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차단하여 결국 예술을 안전하게 포장해 사회가 소비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미술관과 박물관의 외부에는 공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풀과 나무가 있는 이 공원과 그곳에 설치된 조각 작품들이, 앞서 말했듯 ‘현실과는 동떨어진’ 화이트 큐브 실내 공간과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를 이어줄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스미스슨은 이 글에서 미술관의 야외 공간인 공원마저도 사실상 화이트 큐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해석한다. 공원은 자연에서 일정한 구역을 따로 떼어내어 정리된 형태로 도시 속에 배치한 곳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풀과 나무 사이 깔린 산책로는 사람들의 동선을 미리 정해 준다.
로버트 스미스슨은 대지 미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Spiral Jetty》(나선형 방파제)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과 그가 남긴 텍스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엔트로피’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엔트로피는 본래 열역학·정보이론 용어이나 스미스슨이 예술에서의 무질서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이렇게 예술이 변화와 불확정성을 배제하고 이상적인 형태나 순수한 개념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한다. 스미스슨은 이런 형이상학적 태도가 화이트 큐브 전시장이나 잘 정리된 공원 안에서 강화된다고 보았다. 그 대신에 변증법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가 생각하는 ‘형이상학과는 반대의 지점을 지향하는’ 변증법이란 햇살과 폭풍우가 공존하며 ‘이상향’과는 거리가 먼, 무질서하고 모순적인 자연을 향하는 것이었다.
스미드슨은 장소(site)와 비(非)장소(non-site)의 개념에 관심이 있었다. 장소는 ‘실제의’ 위치를 뜻하며, 비장소는 그것의 재현(再現)을 뜻한다. 예를 들어 화랑의 공간에 놓여 있는 한 무더기의 돌은 비장소이다. 하지만 그는 장소가 항상 변화와 엔트로피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시간의 추이와 관련되었다. - 토니 고드프리, 『개념 미술』 중 - |
Robert Smithson, 《Spiral Jetty》, 1970
앞서 언급했던 작품, 스미스슨의 《Spiral Jetty》(나선형 방파제)다. 이 거대한 소용돌이 구조물은 길이 460m에 달한다. 바위와 흙으로 만든 둑이 반시계 방향으로 호수 속으로 뻗어 있다.
이 작품은 계절과 날씨, 호수의 수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가 오면 잠기고, 가뭄이면 드러난다. 소금 결정이 바위에 쌓이고, 햇빛과 바람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그리고 결국엔 물에 휩쓸려 사라진다.
스미스슨이 「Cultural Confinement」에서 밝혔던 생각이 여기서 드러난다.
Nature does not proceed in a straight line, it is rather a sprawling development. Nature is never finished. - Robert Smithson,「Cultural Confinement」 중 - |
Robert Smithson, 《Broken Circle/Spiral Hill》, 1971
비슷한 작품으로 《Broken Circle/Spiral Hill》1971 이 있다.
《Spiral Jetty》가 미국 유타주의 거대한 호수에서 자연의 시간성과 물질성을 드러냈다면, 《Broken Circle/Spiral Hill》은 네덜란드 에멘(Emmen)의 산업의 흔적이 남은 모래 채석장 위에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자연과 산업이 충돌하고 다시 협력하여 ‘돌이킬 수 없게 변한 땅’을 다시 다른 질서 속으로 조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스미스슨은 이곳의 둑과 호수를 깎아 원형의 수로와 제방을 만들고(circle) 언덕 위에는 흑토와 흰 모래로 된 소용돌이 길을 만들었다(hill). 한쪽은 물과 모래가 반씩 섞인 원형 구조, 다른 한쪽은 흙으로 쌓은 언덕 위를 나선형으로 오르는 길. 두 구조가 한 자리에서 서로 마주보며 놓여 있다.
《Spiral Jetty》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담고 있다. 나선형 방파제는 물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잠기기도 한다. 모래와 돌은 흩어지기 쉬운 재료이기에 시간이 지나며 계속 형태가 달라진다. 반면 《Broken Circle/Spiral Hill》은 돌 없이 흙으로만 쌓은 언덕이어서 더 쉽게 침식된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언덕은 무너질 위기에 놓였고 결국 관목을 심어 가까스로 형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 자체가 이미 엔트로피의 원리를 보여주는 풍경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스미스슨이 어떻게 예술의 한 매체로서 언어를 가져왔는지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참고문헌
Robert Smithson,「Cultural Confinement」, 1972.
Robert Smithson,「Language to be looked at and/or things to be read」, 1967.
토니 고드프리, 『개념 미술』, 한길아트,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