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미술과 몸; 개인 초상화와 캐리커처

사진 1. 보티첼리,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Woman)>, 1480–1485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a_Young_Woman_%28Botticelli,_Frankfurt%29
이번 칼럼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 초상화와 캐리커처(caricature)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르네상스 시대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유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르네상스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과 예술 작품 등을 재조명하게 되면서 인간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더불어 해부학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은 인간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하고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에서는 상공업과 금융업의 발달로 신흥 부르주아 계층이 성장하였는데, 이러한 배경으로 메디치(Medici) 가문 같은 권력자가 아니더라도 상인, 은행가, 학자들이 자신과 가족의 초상화를 주문하는 양이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나아가, 시민들의 개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그들 권력이 상승함에 따라 증가하였고, 이는 그들 자신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구를 한층 강화하게 되었는데, 자서전을 쓰거나 초상화를 남기는 현상으로 나타났다(사진 1).
초상화의 기원은 중세시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15세기에 구체적인 초상화의 양식이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는데, 고대 로마의 동전이나 메달에서 유래한 옆모습만 보이는 포즈로 초상화가 그려졌다. 대표적 사례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린 피렌체의 최고 미인으로 알려졌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 1453-1476)의 초상화를 들 수 있다(사진 1). 이 초상화에서 여인의 얼굴은 실제에 가깝다기보다는 단순화 및 이상화 되어있고, 개인의 특징보다는 그 시대의 보편적 미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시모네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의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거기서의 비너스도 미의 여신이라는 명성에 알맞게 이상화된 외모로 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6세기 전반부인 1523년에 완성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이 그린 르네상스 시대 대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의 초상은 개인의 특성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사진 2). 이 초상화에서 에라스무스의 얼굴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며, 그의 얼굴 표정은 그의 실제 성격을 반영한 듯이 절제되고 사색적으로 보인다. 책에 손을 올려놓은 에라스무스의 자세는 그의 학문에 관한 진지함을 보여주고, 그의 검은 모피 망토와 모자는 엄격한 그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 2. 한스 홀바인, <에라스무스(Erasmus)>, 152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Erasmus_of_Rotterdam
이렇게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처럼, 인문주의가 무르익은 르네상스 시기의 초상화들은 개인의 개성을 부각시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정세성에 관한 질문이 중요해지면서 개인 얼굴의 조형적 특성과 성격적 특징을 기록하는 초상화 스타일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다음을 언급하였다.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고 지탱하는 영혼이야말로 우리들의 판단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들의 판단 그 자체가 된다.”
다 빈치는 인간의 영혼을 ‘육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모나리자(Mona Lisa)>를 예를 들자면, 묘사된 모나리자의 겉모습과 함께 그녀의 내면이나 정신적 분위기까지 표현하고자 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나아가, 다 빈치는 인간의 심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여 과장된 형식의 인물 드로잉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것을 현대 캐리커처(caricature)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사진 3). 캐리커처는 이탈리아어 caricare(‘과장하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하며, 인물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의도적으로 과장하여 풍자적 효과를 주는 조형적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단순히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특징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3. 레오나르도 다 빈치, <크로테스크한 머리들(Grotesque Heads)>, 1490
출처: https://www.openculture.com/2017/09/leonardo-da-vincis-bizarre-caricatures-monster-drawings.html
다 빈치의 캐리커처식 드로잉에서 인물들은 매우 커다란 코를 하고 있거나 비정상적으로 두툼한 입술이거나 괴물과도 같이 튀어나온 이마 등의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 3). 이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보기가 드문 변형된 모습으로 각 개인이 가진 성격적 특성을 반영하여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다 빈치는 해부학 연구를 통해 얼굴의 근육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인물 형상의 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다 빈치의 캐리커처식 드로잉은 16세기 후반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가 본격적으로 캐리커처 장르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사진 4).

사진 4. 안니발레 카라치, <캐리커처 시트(Sheet of caricatures)>, 1595
출처: https://www.wikiart.org/en/annibale-carracci/sheet-of-caricatures
카라치는 인물의 특징을 단순화 및 과장하여 유머러스하면서도 인물의 성격적 본질을 드러내는 드로잉들을 남겼다(사진 4). 카라치의 캐리커처식 드로잉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캐리커처를 독립된 장르로 발전시켜 대중예술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카라치의 캐리커처는 이후 전개된 근대시대의 정치 풍자화와 현대의 만화에 이르는 계보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카라치는 “미술작품은 인간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화가의 이상적 세계를 반영하고 문학작품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언급하였는데, 그의 캐리커처는 이러한 그의 사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가 인간의 몸짓과 표정 또는 겉모습이 내재하는 정신적 특성에 관하여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카라치는 과장과 왜곡을 통해서 오히려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본질을 더욱 강화해서 드러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고, 이는 다 빈치의 캐리커처식 드로잉과 더불어 르네상스 후기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근세시대의 몸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칼럼의 일부 정보는 ‘최병진의 <<몸의 기억>>, 2020’을 참고하였다.
몸과 미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