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하우스로 들어가는 아치형 관문, Photo by Ayla J., 2024
서머셋 하우스의 안뜰. 코톨드 갤러리는 이 안쪽에 자리한다, Photo by Ayla J., 2024
갤러리로 들어서면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주옥같은 작품들, 예를 들면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이라거나,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바, 1882>,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년대 연작 일부>등이 관람자들의 눈을 반짝이게 한다. 규모보다 집중의 미학으로 설계된 갤러리의 첫인상은 내셔널 갤러리의 긴 줄과는 대조적으로 전시장을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는 관람객들에게는 고즈넉하고 단아한 인상을 준다.
코톨드 갤러리 입구. 반 고흐의 자화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Photo by Ayla J., 2024
코톨드 갤러리는 코톨드 미술연구소(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 산하의 공공 미술관이다. 1932년 산업가이자 수집가인 새뮤얼 코톨드(Samuel Courtauld), 외교관·수집가 페어햄의 리 경(Viscount Lee of Fareham), 미술사가 로버트 윗 경(Sir Robert Witt), 이 세 사람에 의해 설립되었다. 코톨드는 재정적 토대를 제공했고, 리 경은 예술 분야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전문기관 구상을 밀어붙였으며, 윗 경은 방대한 판화·회화 도판 아카이브를 교육 도구로 제공했다. 이 세 축의 협업 없이는 기관의 탄생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사실 1930년대 초 당시 영국에서는 ‘예술은 부유층의 기호품이지 대학 교육의 주제가 아니다’라는 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는 이미 선행 사례가 있었고, 이들의 강한 의지는 결국 미술계에 새로운 맥을 틔웠다.
연구소의 첫 집은 새뮤얼 코톨드의 포트먼 스퀘어 저택이었다. 그는 1931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영구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저택과 소장품을 연구소가 쓰도록 내놓았다. 포트먼 스퀘어 저택은 약 60년 동안 연구소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하지만, 점점 증가하는 교육과 연구의 수요로 결국 1989년 가을 학기부터 연구소는 스트랜드의 서머셋 하우스로 이전하게 된다. 최근 갤러리는 ‘코톨드 커넥츠(Courtauld Connects)’라는 대규모 현대화 프로젝트를 위해 2018년 9월 휴관했다가 2021년 11월 19일 재개관했다.
코톨드는 작품 앞에서 학문이 숨 쉬게 만드는 기관이다. 설립 초기부터 학술 중심의 현장 결합형(object-based) 교육을 정체성으로 삼았고, 목표는 분명했다. 미술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것. 개관 직후부터는 학부 과정을 둘지, 대학원 전용 기관으로 갈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서머셋 하우스 안쪽 풍경. 일상의 동선과 역사적 공간이 교차한다, Photo by Ayla J., 2024
1933년, 나치 정권이 시작되자 함부르크의 바르부르크 도서관 학자들이 런던으로 피신했다. 당시 초대 소장이었던 콘스터블과 동료들은 이들을 지원했고, 연구소는 밀뱅크의 템스 하우스에 임시 거점을 마련했다. 이후 사우스 켄싱턴으로 이전해 1944년 런던대학교 소속 연구기관이 되었고, 곧 코톨드–바르부르크–런던대의 삼각 축이 영국 미술사의 학술적 표준을 재구성하게 된다.
같은 시기, ‘The Story of Art’로 잘 알려진 E. H. 곰브리치는 1936년부터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활동했는데,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의 책은 1950년에 초판으로 출간되었다.
코톨드 연구소는 작은 규모였지만, 지적 활동의 요람이 되었다. 소수정예의 튜토리얼 방식으로 정밀한 토론을 하고, 같은 건물 안에서 디스플레이・조명・환경・조건・해석이 연결되는 코스웍은 코톨드 특유의 진지하고 밀도 높은 학풍을 형성했다. 학생들은 실제 컬렉션으로 보이는 것(시각 분석)과 보이지 않는 것(재료, 기술, 과학)을 동시에 연구하며, 전시・출판・대중 프로그램‘과의 접점까지 경험한다.
이곳에서 배출된 졸업생들은 이후 세계 유수 미술관의 요직을 차지하며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는데, 그런 이유로 ‘코톨드 마피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웨스턴 갤러리 내부, Photo by Ayla J., 2024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처럼 대규모 기관과 달리 코톨드의 전시 공간은 크지 않다. ㄱ래서 그만큼 컬렉션의 집중도와 타격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회화 약 530점과 2만 6천 점에 이르는 드로잉·프린트가 연구와 전시의 기반을 이루며, 코톨드의 힘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여러 겹의 레이어 속에서 소수정예로 거물들을 길러내는 코톨드 인스티튜트, 작지만 강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코톨드 갤러리 내부의 선명한 프러시안 블루의 나선형 계단,
코톨드의 ‘푸른 나선형 계단’은 18세기 윌리엄 체임버스(서머셋 하우스 건축가)의 고전적 구조에 2021년 리뉴얼 때 선명한 색채(프러시안/일렉트릭 블루)가 겹쳐, 공간 동선 자체를 하나의 상징 이미지로 만든 사례다. 계단은 ‘전시로 오르는 길’이면서 동시에 전시의 일부로 기능한다. Photo by Ayla J., 2024
규모가 아니라 밀도가 만들어낸 맥. 코톨드는 그렇게 오래, 깊게, 미술계의 중심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