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 개관
역사를 돌아보면 예술은 언제나 당대의 주요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관심사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고대 선사시대의 상징이었다. 중세의 종교, 그리고 산업혁명과 카메라의 발명은 그 시대의 예술작품, 특히 시각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1)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시대적 맥락에서 (시각)예술을 읽을 수 있을까? 여기서 “오늘날”이라 함은 기술 네트워크 혁명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고, 기후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의 문제로 우리 모두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을 의미 한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처럼 한 지역이나 국가를 넘어서는 전 지구적 공동체 차원의 정치, 경제, 환경적인 이슈들은 지구화 시대에 우리 모두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게 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8개국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으로 환경 인공위성 판도라를 운영한다.(2)

환경 인공위성 판도라
이미지 출처: Magazine Koica
예술가들도 국경을 넘어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동한다. “피아노의 날”은 전 세계의 음악가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이다.(3) 피아노의 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피아노의 날 연주들을 들을 수 있다.
전수천의 움직이는 선 드로잉 프로젝트는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협업과 소통의 프로젝트였다. 미국 열차에 흰 천을 씌우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예술가들의 토론이 펼쳐졌다. 항공촬영이 동원되고, 행정적인 절차들도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4)

전수천의 움직이는 선.
흰 천을 씌운 기차가 미국 대륙을 달리는 모습
이미지 출처: 월간미술(5)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루앙루파는 세계적인 미술 축제인 2022년 카셀 도큐멘타의 예술 감독이었다.(6)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이러한 무리들은 더 이상 비주류적인 존재감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루앙루파
사진출처: 카셀도큐멘타 15 (7)
물론. 사회 참여형 예술은 비단 오늘날 지구화 시대의 산물만은 아니다. “사회와 소통하는 미 술”하면, 혹자는 요셉보이스의 7000그루 떡갈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8) 이러한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행정적인 절차,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이나 공적이 기금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는 다차원적인 발상이 요구되는 예술 활동이다.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수행성performativity과 장소 특정성site-spesific이 미술 매체의 확장된 개념과 결합하면서,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과 오브제로서의 미술작품 제작을 넘어서는 커뮤니티 아트로 발전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1980년대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개념미술, 설치 작품, 관계미학 등이 미술활동의 주된 영역을 차지하면서 미술의 경계는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지역 공동체나 사회적 이슈의 현장에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장이 되었다.(9)
수행적인 작업으로서의 미술 작품은 그 자체로 미술 제도와 관습에 도전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 공간을 전시의 맥락으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의 개입에 의한 지역주민들까지 미술영역의 한 구성원으로 섭렵하여 퍼포먼스 또는 예술문화 프로그램을 이루기도 한다. 수행성과 장소특정성은 그 자체가 작품의 현장이고 작업의 과정이자 열린 개념의 결과물이 된다.
이러한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공간의 사회적인 의미와 상호작용을 실험하는 가상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허브, 즉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공동체란 장-뤽 낭시 Jean-Luc Nancy가 말한 ‘말할 수 없는 공동체, 무위의 공동체’, ‘공동체 없는 공동체’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공동체란 견고하지 않다. 다만, 공유하는 시대적 감성과 각자의 고민, 소망, 비밀 등을 가진 개인들의 마주침이 아닐까?
지구화시대의 (예술가) 공동체들은 더 이상 하나의 국가나 단단한 특정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일시적이고 유연하며, 지식전문가 네트워크가 일시적으로 협업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공동체 이다.
이 글은 앞으로 10여회에 걸쳐 연재하게 될 <지구화 시대의 공동체 예술>이라는 시리즈물의 개관이다. 시리즈의 전반부는 첫째,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루앙루파와 같은 공동체 예술의 사례들, 둘째, 지구화시대가 도래하게 된 정치 철학적 배경과 공동체의 개념, 동시대 미학적 이슈들, 셋째, 지구화 시대의 공동체 예술의 특징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후반부는 본고와 관련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예술관련 교육사업 사례나 인도적 지원에서의 아동친화공간(CFS, Child Friendly Space)과 같이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 관련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온라인 예술가 그룹 Apartial은 NGO 단체인 월드비젼과 협력하여 남수단의 난민촌
아동친화공간(CFS)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10)
이 글의 시리즈의 마무리에서는 지구화시대에 예술을 둘러싼 담론이나 전망으로 나아가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11) 블록버스터 거대 전시 담론도, 소소한 일상의 미학도, 인간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류세 적인 철학적 흐름도, 코로나 이후 <지구화시대의 공동체 예술>이라는 주제를 읽어내기는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여러 국가들, 기업들 그리고 NGO들이 초국가적인 연결망을 통하여 글로벌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다양한 시도와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제기구와 자본과 예술가의 협업과 네트워크가 공존한다. 다음 글은 구체적으로 지구화 시대의 예술가들의 활동 사례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다음 2회차, 공동체 예술의 사례, 소통과 학문간 교류 - 전수천의 움직이는 선 (미국 암트랙 프로젝트)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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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빌린도르프의 비너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nn.wikipedia.org/wiki/Venus_fr%C3%A5_Willendorf
2) Magazine Koica, “국경 없는 대기오염, 아시아 8개국 ‘판도라’로 공동 대응” https://vo.la/SvPdhn
3) 피아노의 날 공식 홈페이지 https://www.pianoday.org/
4) 전수천, 「전수천의 움직이는 드로잉」, 시공사, 2006
5) 정연심, “故 전수천 타계 1주기-내가 기억하는 전수천“, 월간미술 vol.416, 2019년 9월호, https://monthlyart.com/2019/sightissue_junsc_/
6) “루앙루파”,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Ruangrupa
7) 카셀도큐멘타 15공식 홈페이지 https://documenta-fifteen.de/en/about/
8) 아트 스탯 유튜브 채널, “나무 심기로 세상을 바꾼 예술가”, https://www.youtube.com/watch?v=KYMq4n6OygY
9) “장소 특정성”에 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고하여 다음 기회에 다루려고 한다.
10) Suderburg, Erika. 2000. Space, Site, Intervention: Situating Installation Art U of Minnesota Press.
11) 사진 및 글의 출처: 월드비젼 사이트
https://www.worldvision.org/child-protection-news-stories/child-friendly-spaces-safe-place-child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