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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히토 슈타이얼의 Hell Yeah We Fuck Die-2 | ARTLECTURE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히토 슈타이얼의 Hell Yeah We Fuck Die-2


/Insight/
by 안유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히토 슈타이얼의 Hell Yeah We Fuck Di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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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이번 편은 히토 슈타이얼의 (2016)의 자세한 내용을 살피고, 앞선 글에서 다룬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크워크 이론을 중심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2000년대 이후 서구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히토 슈타이얼은 영화감독이자 시각 예술가이며 저술가이다.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의 기법과 말하기 양식을 자유롭게 혼합한 작 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에세이적 영상 작품과 강의 퍼포먼스를 수행하며 다양한 글을 발표했 다. 작품에 대한 보충적 설명을 넘어 이론적 성찰을 제공하는 이 글은 서구에서 슈타이얼의 명성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슈타이얼의 작품은 동시대 미술의 문제로 거론되는 작업의 가 치, 관람 경험, 예술가와 관객의 정체성과 같은 문제뿐 아니라 이미지 제작과 소비 방식, 자본과 정치의 폭력성 등 여러 문제를 다루며 깊게 탐구한다. (1)


2016년 제32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된 <Hell Yeah We Fuck Die>은 제목 따라 만든 라이트 박스 의자와 그리드 형태의 금속 구조물, 3채널 영상 <Hell Yeah We Fuck Die>와 단채널 영상 <오늘날의 로봇 Robots Today>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Hell Yeah We Fuck Die>, 2016, 비디오설치



3채널 영상 <Hell Yeah We Fuc  Die>에는 재난 현장에서 인간들을 구조하도록 설계된 로봇이 밀쳐 넘어지고 발길질 당하며 훈련받는 모습이 등장한다. 로봇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로봇이 실험과 훈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이와 같은 과학적 실험에 사용되는 기구와 기술도 행위자로 보기 때문에 영상에 등장하는 로봇은 비인간 행위자가 된다. 그리고 재난 구조 로봇이 받는 훈련은 일종의 블랙박스로 볼 수 있다. 이 훈련은 균형을 잡는 능력을 향상해 인간을 구조하기 위해 행해지는 당연한 기술과 사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Hell Yeah We Fuck Die>, 2016, 3채널 영상설치, 4분 35초



슈타이얼은 제32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Hell Yeah We Fuck Die> 로봇들은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로봇은 노동자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2) 슈타이얼은 노동 수용소의 노동자들이 안무화 된 댄스 루틴을 끊임없이 수행 하고 그들의 행위는 인공햇빛이라는 상품이 된다는 줄거리의 <태양의 공장 Factory of the S un>(2015)에서도 새로운 유형의 노동 문제를 다루었다. <태양의 공장>에서의 노동자들은 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데, 유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행위는 마우리치오 랏자라또(Mau rizio Lazzarato)가 말한 ‘비물질 노동’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3) <Hell Yeah We Fuck Die>의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로봇은 <태양의 공장>에서와 같이 새로운 유형의 노동을 보여준다고 여기기에는 어렵지만, 슈타이얼이 로봇을 ‘노동자’로 언급한 것에 집 중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로봇을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기계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투르는 인간과 비인간을 어느 것으로도 환원시키지 않고 모두 동등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며, 이 세계는 다양한 존재자들이 동맹하기도 하고 이탈하기도 하면서 서로 관계 맺는 네트워크의 운동으로 파악한다. 라투르의 비환원철학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관계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으로 불린다. 관계적 존재론은 모든 실재가 원래부터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적 실천들로부터 창발 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4)



<오늘날의 로봇 Robots Today>, 2016, 단채널영상설치, 8분 2초



관계적 존재론을 <Hell Yeah We Fuck Die>에 적용해 보면, 로봇과 인간은 동등한 존재가 되고, 인간이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 가한 폭력은 로봇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로봇>에는 터키와 쿠르드족의 전쟁이 있었던 도시 디야르바키르(Diyarbakır)가 등장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에 있는 소녀는 애플의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에게 “여기에 로봇들이 있니?”, “로봇이 정말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니?”, “이 도시를 누가 파괴했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리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거나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한다. 이러한 장면은 <Hell Yeah We Fuck Die>에서 보았던 발길질 당하는 로봇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에게 폭력을 겪은 로봇이 과연 재난 현장에 와서 인간을 구하고자 할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기에 이곳에도 로봇에 게 가해졌던 바와 같이 폭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누가 이 도시를 파괴했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시리를 보며 폭력을 가한 주체는 드러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행위자-네 트워크 이론은 권력 관계와 사회의 제반 현상도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상호작용한 결과물로서의 네트워크로 이해한다. (5)


이 네트워크가 강하게 결집 되어 안정화된 블랙박스가 되었을 때 그것을 사회적 실재 혹은 권력이라고 부르게 된다고 보기에 배후를 알 수 없는 전쟁 역시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녀는 시리에게 “로봇, 네 소원은 뭐야?”라고 질문을 던지는데 로봇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가 훈련이라는 이유로 로봇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인간이 평화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폭력을 행사했음을 떠올리게 하고, 스스로 만든 로봇, 기계, 기술이 사용되는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시리는 라투르가 말한 하이브리드의 예시 중 하나인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지능적 행동을 자동화하거나, 현재는 사람이 더 잘하는 일을 컴퓨터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6)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거치는데, 이를 통과하게 되면 기계와 인간이 똑같이 생각할 능력을 갖추었음을 인정받게 된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새로운 타자의 등장을 예고한다. (7)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산출하는 결과는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학습에 활용되는 데이터 자체가 인간이 역사적으로 구성해 온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기계학습은 완전한 중립성을 가지지 못한다. (8) 이는 소녀가 시리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과정이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를 넘어서 인간(소녀)과 비인간 존재(시리)가 서로 영향을 주는 받는 과정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알자자리의 음악연주 오토마타



그리고 영상에는 쿠르드족 출신의 발명가 이스마일 알자자리(Ismail al-Jazari)의 이름을 거리와 건물의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구타당했다는 시민의 증언이 등장한다. 오늘날 알자자리는 기계공학의 초석을 닦은 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닮은 오토마타 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오토마타는 최초의 힘이 가해진 후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일련의 동작을 수행하는 자동기계장치를 의미한다. (9) 영상에는 시민의 증언과 함께 알자자리가 만든 오토마타가 등장한다. 화면에 등장한 오토마타는 배 위에 설치된 음악연주 오토마타로, 다양한 형태의 자동 음악연주 기계장치가 있었고, 그중 일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악사가 악기 연주 동작을 스스로 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오토마타는 언뜻 보기에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국력을 과시하는 역할도 함께했다. 외국 사신들을 초청한 연회에서 정교한 오토마타 공연을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유흥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위용을 함께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0) 이를 통해 또다시 보이지 않았던 권력과 폭력성이 드러남을 알 수 있 다.


<Hell Yeah We Fuck Die> 주변에 놓인 라이트 박스 의자 또한 내재된 폭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Hell Yeah We Fuck Die>의 제목은 2010년부터 5년 동안 빌보드 차트 노래 제목에 가장 많이 사용된 영어 단어로 구성되었는데, 유희를 위한 오토마타에서 도 국력을 과시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처럼 대중문화에서도 죽음과 욕설과 같은 폭력이 숨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라이트 박스 의자와 영상은 바리케이드를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 사이 사이에 놓여 있다. 철제 구조물로 인해 영상들과 라이트 박스 의자는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로봇에 행해진 훈련과 전쟁, 오토마타에 내재한 폭력이 각기 다른 자리에 위치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듯한 인상을 준다. 번역은 하나의 혼합적 목표를 형성하기 위해 서로 달랐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하기에, <Hell Yeah We Fuck Die>는 비인간 행위자인 폭력을 가시화하 는 번역의 과정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Hell Yeah We Fuck Die>의 구조는 우리 가 사회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가 “섬유 모양의 실과 같은, 철사 같은, 끈 같은, 밧줄 모양의, 모세관의 성격을 갖는다고 인식”해야만 하다는 라투르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11)


참고문헌 

박은주, 「기계도 행위할 수 있는가? :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 k theory)을 중심으로」, 『교육철학연구』 제42권, 2030.

오세욱·이소은·최순옥,  「기계와  인간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가?-기계학습을  통해  본  쟁 점과 대안」, 『정보사회와미디어』 제18권, 2017.

이재준, 「과학기술 시각주의에서 비인간의 재현: 1970년대 미국과 일본의 로봇 연구를 중심 으로」, 『인문과학연구논총』 제40호, 2019.

심귀연, 「생태공동체 모델 구축을 위한 인간, 자연, 기술 개념 연구」, 『철학논총』 제100집, 2020.

심귀연, 「인간과 비인간 존재는 어떻게 만나는가?」, 『철학연구』 제147집, 2018. 조경진,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의 미학적 적용 - 라투르를 매개한 크라우스의 ‘번역’ 

-」, 『예술과 미디어』 제19권, 2020.

김지훈, 「포스트-재현, 포스트-진실, 포스트인터넷-히토 슈타이얼의 이론과 미술 프로젝트」,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21권, 2017. 

최소영,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이미지 연구-히토 슈타이얼의 ‘빈곤한 이미지’ 개념 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인문학연구』 제7권, 2021.

김정명,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의  오토마타  기술  계승과  발전」,  『인문과학연구논총』  제39 호, 2018.

“HELL YEAH WE FUCK DIE, 2016 AND ROBOTS TODAY, 2016, VIDEO INSTALLATI ON”, ROBOT LOVE, accessed Feb 25, 2025, https://robotlove.nl/en/hito-steye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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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유선_미술이론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