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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라는 재난은 한 도시와 그 사회의 공적 장소(public space)와 근대적 시각성이 재편되는 계기로 접근한다면, 재난으로부터 도시와 시민들이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주석들을 달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은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시민 사회의 규칙과 도시 경관이 극적으로 변화한 계기가 되었다. 도시인들이 경험하던 근대의 파노라마 시각성에 있어 관동대지진 당시 무너진 료운카쿠(凌雲閣)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아사쿠사 공원의 전망대였던 료운카쿠, ‘능운각’이라는 그 이름은 ‘구름을 능가할 정도로 높다’라는 뜻을 가진 건물로 1890년 메이지 시대에 준공된 일본에서 가장 높은 12층짜리 건물이었다. 또 일본 최초로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 당시에 이 타워 구조물이 파괴되었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복구되면서 이 대체하는 새로운 상징적인 건물이 황궁 근처에 세워졌다. 새로 세워진 8층으로 구성된 마로노우치 백화점은 건물 꼭대기에서 황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비즈니스 자본에 의해 황국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은 기존의 도시민의 시각성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시각이었다. 이러한 관동대지진에 의해 변화하고 새롭게 자본을 통해 근대화된 도시는 전통적인 권위와 도시의 규칙이 현대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변모되는 긴장 속에서 재건되기 시작했다.1)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붕괴 전 료윤카쿠의 모습(좌)와 지진 전후 모습 비교(우)
곤 와지로의 가장 가까운 동료, 켄키치 요시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관동 지역이 파괴된 후, 도시는 여러 측면에서 재생 과정을 시작했다. 도시의 회복과 재건 과정에서 이를 면밀히 관찰하며 근대적 토대를 확립해 나간 인류학자 곤 와지로(杉山直樹)와 그의 동료들은 도시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바라쿠 장식사(バラック装飾社)는 곤 와지로를 중심으로, 무너진 도시민들의 일상과 공적 공간 복구 과정에서 나타난 건축적 장식의 미학을 발견한 하나의 운동이었다. 바라쿠 장식사의 활동은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 일부를 미화(美化)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임시 판자 가옥인 바라쿠 위에 그림을 그리고 가옥의 형태를 디자인하는 작업이 그 핵심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화와 디자인, 즉 어떤 대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재난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미학적인 요소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무력화된다는 회의적 관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약 100년 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여전히 그곳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행위들에서 재난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바라쿠 장식사가 임시 건축물의 요건과 장소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행위는 곤 와지로의 고현학(考現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와지로와 동료들, 그리고 재난을 함께 겪은 도시민들이 무너진 도시의 폐허 앞에서 공유했던 집단적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단순히 주거지의 미화 뿐 아니라 단순한 도시에서의 삶이 가진 일상적 단위의 미학을 발견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에 바라쿠 장식사는 ‘1. 그 어떠한 초상화도 그리지 말 것’, ‘2. 후기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양식으로 그리지 말 것’ , ‘3. 닭, 거북이, 눈, 달과 꽃과 같은 모티프를 그리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2)
거실 입구에 서있는 딸과 창문에 기대어 있는 켄키치 요시다, 1949년
와지로의 동료 중 한 명인 켄키치 요시다(吉田謙吉, 1897-1982)는 도시 상황의 여러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1897년에 태어난 요시다는 아방가르드 예술 그룹, 일본 전통 시인 단가(短歌), 무대 디자인, 영화 프로덕션 디자인, 사진,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와지로와 요시다는 학생 시절 도쿄예술대학의 디자인 학부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되었으며, 고현학의 시작부터 바라쿠 장식사 활동에 이르기까지 협력 관계를 이어갔다. 간토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곤 와지로와 요시다는 재난 이후 도시가 "발전하는 상황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환경을 면밀히 조사하고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의 공동 작업 안에서도 특히 요시다는 급속히 변화하는 도쿄의 역동적이고 격렬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시적 삶과 행위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3) 그는 재난 이후 빠르게 진행된 복구 작업과 근대화 및 산업화의 물결에 대응하며 형성되는 도시민들의 일상, 인간성,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도시 조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요시다는 이와 함께,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인간 활동 사이의 상호작용을 주목하며, 도시가 단순히 복구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데 집중했다. 전후 도쿄는 극심한 어려움으로 점철된 황폐한 도시였으며, 그중에서도 주거 문제는 가장 큰 난관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집을 마련해야 했다. 이러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켄키치 요시다는 고난이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하는 방식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 과정이 마치 새로운 예술적 표현의 장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고 보았으며,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탄생하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주목했다. 4) 바라쿠 장식사는 황도복구원(Imperial Capital Reconstrusction Agency)가 황폐화 된 지역의 재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바라쿠 건설이 이뤄지던 시기가 마무리되었고 그에 따라 1924년 3월 22일 바라쿠 장식사도 해체되었다. 그러나 요시다는 와지로와 함께 계속해 새로운 자본주의의 물결과 함께 재건되며 부르주아적 소비주의와 함께 도시민들의 일상 풍경과 모습도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자신이 관찰한 근대화 과정 속에서의 도시민들의 본질적인 행동 양식을 무대 디자인에도 투영해 나아갔다. 5)
임시적 가옥 같은 극, 혹은 ‘삶’을 위한 무대: 축지소극장에서의 요시다의 무대 디자인
1924년 개관한 축지소극장(築地小劇場)의 모습
와지로와 함께 했던 바라쿠 장식사 활동과 함께 당시의 요시다는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가 처음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곳은 축지소극장(築地小劇場)이다. 일본 연극사에서 축지소극장은 ‘근대극의 실험실’이라 불리었으며, 당대의 상업주의의 저속성을 탈피하려했던 이들이 펼친 연극 운동의 결산지였다.2) 축지소극장은 일본의 첫 근대(modern) 소극장이었으며,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1년 뒤인 1924년 첫 공연을 올렸다. 실험적인 연극 그룹을 만들고자 회사를 설립한 요시 히지카타(Yohi Hijikata)의 주도 하에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었고, 축지소극장은 히지카타의 회사가 설립된 당해 축지에 임시 바라쿠 가옥 스타일로 세워졌다. 요시다는 회사가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 연출 인력으로 합류하였다.6)
요시다는 회사의 첫 공연인 ‘해전(Sea War)’의 무대 디자인에서부터 그 역량을 보였다. 요시다는 축지소극장의 설립 멤버로서 근대 극장의 형태를 연출하는 고도로 기술화된 세트를 생산해 내었는데, 그의 작업 중에서 1925년 10월 극장에서 올려진 공연 ‘사회의 적(Enomy of Society)의 무대 모델은 굉장히 특징적인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델은 경제성을 중시한 설계였고, 3엔짜리 목재 기둥이 전체 구조를 이루는 핵심 요소로 사용되었고, 천과 같은 가벼운 소재를 장면에 따라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모델은 요시다의 풍부한 상상력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재난 이후 주거를 재건하여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여건과 임시 거주지의 물질적 재료의 조건으로부터 요시다가 관찰한 바가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7) 축지소극장은 단순히 연극을 공연하는 공간을 넘어, 당시의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이 급변하는 도시 환경과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창의적 해법을 모색했던 장소였다. 이 공간에서 공연된 작품들은 전통과 근대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하였는데, 특히 요시다가 참여한 극 무대 디자인은 극도의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난 이후의 상황과 물질적 조건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25년 9월 축지소극장에서 올려진 ’사회의 적‘ 연극의 무대 세트 모델
1929년 함께 극장을 이끌던 무대 감독 오사니 카오루(Osani Kaoru)의 죽음 이후 회사는 와해되고 극장은 문을 닫았으나 켄키치는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무대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공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접근 방식을 이어갔다. 긴자 로코모티브 바와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실내 건축뿐만 아니라 책, 성냥갑, 코스터와 같은 세부적인 요소까지 디자인함으로써, 공간의 모든 요소가 통합된 경험을 제공했다. 이는 그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장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유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8)
12평 집: 일상적 삶과 가족을 위한 ‘무대’
1920년대에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요시다의 이후 활동에 대해선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항복할 때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몽골에 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중국 텐진의 어느 수용소에서 7개월동안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연극 무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연극 그룹을 결성하여 일본으로 귀환되기 전까지 포로들을 즐겁게 하였다. 일본이 항복한 그 다음 해 그는 일본으로 돌아왔고, 1949년 52세의 나이에 도쿄에 12평 집(12-tsubo house)을 직접 지었다.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과 그에 따른 규제가 관련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당국은 생존자와 포로들을 위한 충분한 거주공간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법과 규제를 시행하였다. 1947년 일본은 건축물에 대한 특별 규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새로 건설되는 집의 지상층의 평수를 12평(39.7 제곱미터)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규제는 1950년까지 지속되었고, 1949년에 일본에 돌아온 켄키치는 이 법에 따른 12평 제한을 따르면서도 그 내부를 실험적으로 디자인하여 집을 지었다. 9)
1949년 켄키치 요시다가 지은 붉은 외벽의 12평 집
1/20 비율로 축소된 위 이미지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거실 공간이다. 마치 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녹색의 커튼과 중앙 공간에서부터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조망의 영역은 무대를 연상시킨다. 액자와도 같이 안쪽 공간을 보여주는 문 역시 이 거실 공간을 무대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처럼 12평의 집은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각 공간의 용도가 무대와 삶을 위한 집 두 차원에 걸쳐 이중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가장 가운데의 넓은 공간은 거실 공간이자 무대를 바라보는 홀, 그리고 커튼 개구부 너머 대각선으로 조망되는 공간은 무대이자 그가 자신의 동료들과 작업하는 스튜디오였다. 켄키치는 아티스트가 스튜디오를 가진다면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이 투영된 이 집은 가족을 위한 거주지이면서도 시대가 제한한 12평이라는 규제 안에서 발명한 무대와도 같다.10) 또한 극 무대를 만들었던 그의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한 이 집은 다시 한번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극적인 국가적 사건 이후 더욱 빠르게 변모하고 재건하기 시작한 도시의 건축적 상황과 그 속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쌓아올리려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다.
일본으로 돌아와 새롭게 집을 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 요시다 켄키치의 행보는 그의 무대와 삶에 대한 양면적인 디자인 철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요시다는 1940년과 1941년 신일상 예술(New Lifestyle Art) 전시에 참가했으며, 이 그룹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일상 공간의 내부 인테리어와 생활용품 디자인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관심은 그가 12평짜리 집을 설계하면서 잡지에 실었던 드로잉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일본에서는 여성 잡지가 큰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는 근현대적인 일본의 주택 문화와 여성의 역할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잡지들은 특히 전쟁 이후 가정을 꾸리고 삶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요시다는 전쟁 이후 이러한 여성 잡지에 정보성 기사를 기고하며, 새로운 삶과 공간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11)
요시다가 여성 잡지 ‘여성과 삶’에 실었던 조립식 주택의 외관과 내부 구성에 대한 드로잉이 대표적으로 소개된다. 이 드로잉은 바라쿠를 연상시키며, 편리한 조립식 구조와 유연한 내부 설계를 통해 도시적 상황에 적응하는 거주 공간을 제안한다. 이는 요시다가 바라쿠 건축사 활동부터 주목해 온 도시적 변화와, 이에 따라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거주지의 조건에 대한 연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요시다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단순히 건축적 설계에 그치지 않고, 주거 공간과 일상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재난 이후, 전쟁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일본 잡지 ‘여성과 삶’ 1949년 4월호에 실린 요시다의 드로잉 ‘조립식 주택에서의 새로운 생활 방식
(New Ways of Living in pre-fabricated Housing)’
다시 돌아가 지난 첫 편에서 언급했던 ‘도시회복력’의 개념을 떠올려보자. 도시회복력이란 이미 벌어진 폐허의 사건 위에서 도시를 수선하고, 새로운 버전의 도시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재난 이후 도시를 새롭게 상상하고 복구하는 일에서 관동대지진 이후 당시 일본 예술가,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들, 고현학 연구자들이 실행한 작업에서 복기할만한 것은 그들은 공간에서의 연속적인 움직임(movement)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의 건축물 및 건조 환경, 공적 환경은 주로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특징되는 반면, 당시 일본의 공간 연구는 움직임과 실질적인 거주를 통해 구현되는 공간의 재구성을 중시했다. 관련 연구에서는 특히 대지진 이후 도쿄에서는 중간 공간(intermediate space)가 도시와 문화의 관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당대 새롭게 수입된 미국화된 자본에 기초한 근대성을 대표하며 일상적 삶에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말한다.12) 이는 콘과 요시다가 군중의 움직임, 광고에 따른 당대 도시인들의 의복과 쇼핑 거리에서의 행태 등에 주목했던 것과 연결된다.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수입된 근대적 자본들과 그에 의해 재편된 시각성, 도시의 경험은 당대의 상업과 소비 활동 뿐 아니라 예술적인 활동과 거주, 삶의 기본적인 가치들과 직결되어 시민들의 삶은 새롭게 디자인되어 갔다.
몸의 거주, 몸의 움직임, 군중의 흐름 등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시민들의 몸과 그 활력은 켄키치 요시다가 무대 디자인에서 배우, 행위자(actor)의 퍼포먼스와 관객의 반응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는 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근대 도시는 공적 장소와 사적 장소, 거주지와 노동이 집약되는 지역 등 통합된 장소들의 기능을 가능한 한 분리하고 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요시다는 무대를 구성하는 배우와 관객의 움직임에 주목하며, 자신의 가족을 위한 거주 공간과 무대, 홀, 스튜디오를 통합해 삶을 구성하는 기능들이 결합된 공간을 창조했다. 이러한 공간 디자인 철학은 현재의 도시 형태로부터 수직적으로 구축된 우리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회복을 위해서는 본래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의 원래 퍼포먼스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내가 확장해 나가던 반경과 경관은 어떠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브뤼노 라투르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과거의 해독제이자 미래의 설계도”13)로서의 디자인이 우리 삶에 정착하고 해독과 설계의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하는 시민들의 주체적인 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우리 몸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 반응을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수선하며, 이 폐허 위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이 글에서는 지진, 전쟁과 같은 대표적인 재난을 언급했지만, 국가와 시민들이 직면하는 재난의 상황은 물리적인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정치적 재난, 그리고 미시적 차원의 재난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재난 앞에서 영속하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물려받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물리적 도시와 환경, 경관을 포함하며, 이는 단순히 지진으로 인한 물리적 충격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붕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해왔다.
만약 우리가 지금 어떤 형태로든 재난에 직면해 있다면, 요시다와 같이 기존의 무대에서 숨겨져 있던 백스테이지(back-stage)의 몸들을 호출하고, 임시적이지만 삶을 우선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변적 무대를 설계하고 상상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할 것이다.
각주 1) Manuel Schilcher, Public Place and Art in Interwar Japan, 2017. 2) Manuel Schilcher, 위의 글. 3) James Lambiasi, ‘Kenkichi Yoshida: A Designer and Scholar Connecting Art and Life’, https://artscape.jp/artscape/eng/focus/1904_02.html(2024년 12월 20일 접속). 4) LIXIL Gallery, ‘Kenkinchi Yoshida and His Tiny 12-Tsubo House: Secrets fo Dramatic Space Design’ Exhibition Guide, 2019. 5) Manuel Schilcher, 위의 글. 6) 김현철, 축지소극장의 체험과 홍해성 연극론의 상관성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26, p. 74. 7) James Lambiasi, 위의 글. 8) 위의 글. 9) LIXIL Gallery, 위의 글. 10) James Lambiasi, 위의 글. 11) LIXIL Gallery, 위의 글. 12) Manuel Schilcher, 위의 글. 13) Bruno Latour, 「A Cautious Prometheus? A Few Steps Toward a Philosophy of Design(with Special Attention to Peter Sloterdijk)」, 2008. |
이미지 및 웹사이트 출처 이미지 1번과 2번: https://ko.wikipedia.org/wiki/%EB%A3%8C%EC%9A%B4%EC%B9%B4%EC%BF%A0 이미지 3번: https://artscape.jp/artscape/eng/focus/1904_02.html 이미지 4번: Manuel Schilcher, Public Place and Art in Interwar Japan, 2017. 이미지 5번: https://www.artandlive.net/en/topics/about-tsukiji-little-theater 이미지 6번 & 7번 & 8번: https://artscape.jp/artscape/eng/focus/1904_0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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