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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 삶의 이면을 담은 화폭 | ARTLECTURE

<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 삶의 이면을 담은 화폭


/Art & Preview/
by 청예
<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 삶의 이면을 담은 화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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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하는 《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의 중국미술관이 협력한 전시로, 각 미술관의 수묵채색화 소장품을 한데 모았다. 전시는 한국과 중국 회화를 각각 2부씩으로 나누어, 1층은 1970년대까지의 근대 회화, 2층은 1990년대 이후의 현대 회화를 살필 수 있도록 총 네 개의 전시실로 구성했다. 중국의 회화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연말을 맞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한국에서 수묵화(水墨畫)는 글씨와 그림을 아우르는 서화(書畫)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동양화’, 1980년대 이후 ‘한국화’로 용어의 변천을 거쳤다. 근대 이후 먹을 사용해 그린 묵화는 산수를, 채색은 인물을 그리는 수단으로 여겨져 두 분파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반면, 중국에서 수묵화는 묵화와 채색 수묵화를 모두 포괄한다. 《수묵별미 : 한·중 근현대 회화》는 수묵화라는 공통의 기법을 통해 고향의 풍경, 도시 경관, 사람과 동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소개한다. 각 전시실을 둘러보며 한국과 중국 회화의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면서도, 삶의 모습을 다루는 유사한 태도를 발견했다.



리커란(李可染, 1907-1989), <용수와 물소>, 1962



리커란의 <용수와 물소>(1962)는 화면 가득, 검은 먹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너무도 울창해 그림자가 가득한 숲속, 한쪽 구석에 빛이 드리운다. 가까이 다가선 두 소년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두 마리 물소가 서로 기댄 채 평화로운 한나절을 보내고 있다. 묵직한 먹 속에서 작게 빛나는 두 아이와 물소의 사랑스러운 시간을 엿보며, 관객은 그 이야기 속에 침잠한다. 용수(榕树), 다른 말로 바니안(banyan)은 수많은 가지, 공중으로 뻗은 뿌리와 풍성한 잎사귀를 가진 거대한 나무이다. 먹색으로 가득 채운 화면은 용수 나무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자연의 경건함과 소박한 일상의 대비는 그림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든다.

 


박노수(1927-2013), <소년과 비둘기>, 1983



아이 둘이 마주 보며 웃음 짓는 간지러운 순간. 박노수의 <소년과 비둘기>(1983)는 비슷한 장면을 그린다. 리커란이 소를 자주 그렸다면, 박노수는 나무 아래 머무는 백마와 소년을 자주 그렸다. <소년과 비둘기>에서도 백마와 소년은 숲속을 거닐고 있다. 몇 그루의 쪽빛 나무 아래, 소년은 바위에 걸터앉은 다른 소년과 만난다. 그러고는 수줍은 듯 입을 가린다. 숲속의 풍경은 어찌나 꿈결 같은지. 쪽빛의 나무는 쏟아질 듯 강렬한 색채로 소년들을 덮고, 화면의 여백은 두 소년을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에 위치시키는 듯하다. 바위에 선 두 마리의 하얀 비둘기, 하얀 말, 하얀 공간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소년들의 비밀스러운 웃음과 공명한다.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준다. <용수와 물소>가 먹색 용수 속에 개구진 두 소년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면, <소년과 비둘기>는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보다 성숙한 소년을 묘사한다. 또 전자의 소년들이 우거진 숲속 비밀 장소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후자의 소년들은 텅 빈 숲속에서 우연히 짧은 만남을 가지는 듯하다. 서로 다른 두 그림에서, 두 소년의 웃음소리는 밝게 빛나고 있다.

 


관량(关良, 1900-1983), <백사전>, 1956



전시에서 한국과 중국의 수묵화는 일상을 그리는 방식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관량의 <백사전(白蛇傳)>(1956)은 동일 제목의 경극 속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백사전은 항저우의 서호를 배경으로, 뱀과 인간의 사랑을 담은 중국의 민속 전설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두 마리의 뱀, 백사(하얀 뱀) 백소정(白素貞)과 청사(푸른 뱀) 소청(小靑)이 있었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두 친구는 어느 날, 여인으로 변해 항저우의 서호에서 놀았으나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를 맞게 된다. 이들에게 도움을 준 허선(許仙)이라는 남자에게 반해 혼인한 백소정은 임신하지만, 금산사의 승려 법해(法海)가 허선에게 접근해 그의 아내가 요괴라고 경고한다. 처음에 허선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결국 법해의 말을 따라 단오절에 웅황주(雄黃酒)를 백소정과 소청에게 마시게 한다. 이들이 본래의 모습인 뱀으로 변하자 허선은 놀라 죽어버린다. 백소정은 그를 되살리기 위한 모험을 떠나고, 소청이 법해를 물리치며 이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백사전>은 금산사에서 백소정과 소청이 법해와의 결투에서 패배하고, 서호의 끊어진 다리에서 허선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그린다. 허선은 아내를 배신한 죄를 뉘우쳤으나, 소청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뽑는다. 하지만 백소정이 소청을 막아선다.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여전한 사랑의 감정 속에 동요하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장면에 정지한 그림에서 세 인물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백소정은 두 손으로 소청을 막아서고 있으나 단호하고 형형한 눈빛에서 남편에 대한 분노가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겁에 질려 바닥에 넘어진 허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팔을 들어 검을 막으려고 한다. 이처럼 관량은 인물을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있으나, 이들의 동작과 표정을 통해 생생한 기백이 흘러나온다. 숨죽인 채 이들의 교전을 마주한 관객은 연극 속 장면에 마음을 빼앗긴 듯 깊이 몰입하게 된다.

 


박생광(朴生光, 1904-1985), <제왕>, 1982



한편, 박생광의 <제왕>(1982)은 강렬한 오방색을 사용해 한국의 웅장한 종묘 정전을 그리고 있다. 찬란하게 뿜어져 나오는 색채들은 힘찬 생명력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종묘를 지키는 세 신위는 정면을 바라보며 닿을 수 없는 위엄을 드러내고, 그 앞을 지나는 붉은 눈의 말들은 광기 어린 듯 그림에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오방색, 구름 문양, 종묘 정전의 묘사를 뜯어보다 이내 압도되는 감정을 느낀다. 그림을 마주하고 마음속에서 이는 격렬한 동요는, 박생광의 강렬한 색채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적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수묵별미는 한국과 중국의 화가들이 수묵화라는 동일한 재료를 통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포착했는지 살피는 흥미로운 여정을 제공한다. 사랑스럽고, 역동적이고, 익살스럽고, 경건하게, 화가들은 각각의 개성에 따라 우리네 삶을 그렸다. 한국과 중국의 작품들을 비교하며 자연스레 어떠한 의문이 떠오른다: ‘한국적인 것’, ‘중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두 국가의 화가들이 삶을 그리는 방식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호기심을 안고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참고문헌

국립현대미술관 수묵별미 ·중 근현대 회화》 페이지: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exhId=202403070001757

송희경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 1927-2013)의 국전 출품작미술사와 시각문화』 18 (2016): 6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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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작가 청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