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광시곡, 김병종》(2024.09,10-10.24.)은 한국성의 의미를 동시대적으로 탐구하는 기획 시리즈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전시이다. 김병종(金炳宗, 1953-)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광시곡(狂詩曲, rhapsody)은 민족적 혹은 서사적인 성격을 가진 자유로운 형식의 기악곡을 의미한다. ‘생명’으로 명명된 김병종의 광시곡은 서막(심상의 숲), 제1악장(동심의 기억), 제2악장(덧없는 꽃), 제3악장(감추어진 샘), 제4악장(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서), 종막(끝나지 않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악장에서 작가 김병종 개인의 삶은 물론, 그 면면에 깃든 한국적인 정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김병종, <지리산과 섬진강>, 2012,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50x601cm,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소장
소년과 소나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김병종은 자연과 종교에 기대었다. 상실감에 휩싸인 소년에게 소나무가 큰 위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노송(老松) 아래에서 잠이 들면 솔바람 소리가 영혼의 모음으로 느껴졌다.”라는 김병종의 회고처럼, 그와 그의 작품에 있어 소나무는 생명을 의미한다.
김병종의 작품에서 송홧가루는 2000년 무렵의 <송화분분> 연작에서 등장했다. 그는 먹을 계속 겹쳐 칠하는 동양화의 기법인 적묵법(積墨法)을 통해 노란색 점을 쌓아나갔으며, 생명의 씨앗인 송홧가루를 통해 화폭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병종, <송화분분-춘산> 부분, 2019, 혼합재료, 193.5x259.2cm, 개인소장
한국화의 현대화
김병종은 물, 나무, 숲 등 자연이라는 ‘생명’을 주제로 한국화의 현대화를 모색한다. 또한, 그는 한국의 미를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 민화 등에서 찾았고 다양한 재료 실험을 통해 독자적이고 실험적인 화풍을 선보인다.
일례로, <생명의 노래-풍죽(風竹)>(2019)은 청색을 주조로 한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댓잎을 화면 안에 빽빽이 그려 넣음으로써 ‘대나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새롭게 표현하였다.
김병종, <생명의 노래-풍죽(風竹)>, 2019,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160x720cm,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소장
어릴 적 나는
서늘하고 검은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온갖 날 것들과 연약한 생명체들을 바라보면서
애련의 마음을 지니고
그 명(命)을 가늠해 보곤 하였다.
숲으로 가고 싶다.
그 생명 가족들에게로.
김병종, <숲에서-12세의 자화상>에 적은 글, 1991.
모든 세대에게 자연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흙 내음을 맡으며 성장했든 빌딩숲에서 콘크리트 냄새와 함께 성장했든 간에 도시인에게 자연은 너무나도 쉽게 ‘생명’으로 치환된다. 그렇기에 현대적인 어법으로 생명으로의 귀의를 연주하는 듯한 김병종의 광시곡은 서울역 앞을 스쳐 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휴식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시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