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가드(Paul Gadd)는 서울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가다. 원래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다가 사진으로 방향을 튼 이후, 아날로그 사진을 기반으로 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매립지』 전시 전경
그는 주로 정물(still life) 사진을 찍는데, 촬영에 이용하는 대부분의 소재는 낡고, 부서지고, 죽은 것들이다. 도마뱀이나 박쥐, 고양이 등의 동물 사체를 냉동 보관했다가 쓰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주운 폐품으로 주 피사체 주변을 꾸미기도 한다. 촬영은 오직 흑백 필름을 사용한다.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죽음’, ‘쓰레기’, ‘흑백’ 같은 단어가 어우러지는 데서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폴 가드의 작품은 일견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작년의 《Return to Fairyland》 전시에서 보여 주었던) 날개를 펴고 있는 박쥐가 실은 말라비틀어진 사체라는 걸, 잠자고 있는 듯한 도마뱀의 흰 피부가 실은 냉동고에서 갓 꺼낸 사체의 표면에 낀 성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욱 그렇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친밀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상실을 겪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이어지며,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오직 죽음에만 천착하는 건 아니다. 필자는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죽음을 둘러싼 복잡미묘한 감정들, 한발 더 나아가 이를 폭 넓게 아우르는 무언가라고 느낀다.
『매립지』 전시장 출입문.
『매립지』 전시 전경
광화문 스페이스 중학에서 진행 중인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매립지(Landfill)》를 보자. 이번 시리즈는 그가 평소에 지나쳐 다녔던 공동묘지에 장식된 꽃이 실은 모두 조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시작한 작업이다. 가드에게는 떠나간 이를 추모하기 위해 놓인 꽃이 생기 없는 가짜라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재활용도 어려운 플라스틱 쓰레기가 되어 매립지 행이 예정된 것이라는 사실이 모순처럼 다가왔다.
그는 묘지에서 수거해 온 꽃과 모델의 신체를 본뜬 모형을 함께 배치했다. 작가는 플라스틱 꽃과 ‘사람’을 같이 두며 결국 그들 “모두 ‘매립지’에서 똑같이 끝을 맺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에게는 사람이든, 버려진 조화이든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존재였다.
『매립지』 전시 전경
‘인간’ 또한 그 끝은 별다른 바 없다는 작가의 해석이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그의 사진이 상징하는 끝이 무심한 종결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끝은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며,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담긴 무수한 시간과 과정의 이야기가 아닐는지. 그렇기에 어둡고 무거운 감정이 흘러나오는 프레임에서 죽음 너머의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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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의 작업에는 그가 다루는 주제와 소재 말고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건 그가 유일무이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사진 작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사진이 예술 ‘시장’으로 들어 오기 위해 택한 방법의 하나는 철저한 에디션 관리다. 보통은 사진가가 프린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만드는 AP(Artist’s proof) 버전을 제외한 후, 3/5/10개 등의 에디션 개수를 작품 별로 혹은 프린트 크기 별로 제한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구매자에게 당신이 구입한 작품이 한정판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며 안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한 작품의 에디션 간 차이는 번호 이외에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매립지』 전시 전경
그런데 폴 가드의 작품은 조금 다르다. 그의 작업은 에디션 하나하나가 문자 그대로 ‘유일한(unique)’ 작품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LANDFILL #1 (매립지 #1)>(2023) 작품이라도, 에디션 1과 에디션 2가 결코 ‘똑같지’ 않다. 아니, 똑같은 것이 불가능하다. 한 장의 필름에서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 똑같은 프린트를 생산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매립지』 전시 전경 - <Landfill #1 (매립지 #1)>
가드가 작품 제작을 위해 진행하는 촬영 - 인화 및 현상 - 후작업의 세 단계를 놓고 보자. 피사체를 촬영한 필름은 분명히 하나지만 이후의 작업을 거치면서 최종 결과물이 완전하게 달라진다. 그는 인화 과정에서 토닝과 표백 등의 작업을 하며 한 장 한 장의 프린트에 유일성을 부여한다.
이어지는 과정은 폴 가드 작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핸드페인팅이다. 가드는 특수한 물감을 사용하여 프린트 위에 직접 채색하는데, 그때그때의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톤의 결과물이 탄생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작가가 염두에 둔 주제 의식이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하나의 작품 안에서 ‘변주(variation)’를 줌으로써, 똑같은 원본 필름이라도 조금씩 다르면서 더 풍성한 이미지를 보여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소 보기 드문 사진 작품을 만날 수 있으므로, 시간 내어 들러 보길 권한다.
『매립지』 전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