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제 23회 송은미술대상전》
송은아트스페이스
23.12.13~24.02.24
사천왕(2023)
1. 송은아트스페이스 지하 2층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에 성스럽게 걸린 작품 4개가 보인다. 조선시대의 높은 지위를 가진 이의 초상화나 불교 회화인 것 같은 느낌으로 4개의
작품이 고요하고 숭고하게 걸려있다. 이 4개를 묶는 작품
제목도 <사천왕(2023)>이다.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그 ‘사천왕’말이다.
그런데 한걸음 한걸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성스러운 초상화나 종교화의 형식으로 그려진 그 4개의
정체가 예상과 다른 것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작품 코앞에 가서 마주하게 되는 4개의 물체는 바로 벌레, 내장, 그리고
흉(터)와 같은 것이다. 징그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런 것들 말이다. 바로 이 <사천왕(2023)>작품은
혐오의 대상을 가장 성스럽게 그리는 작가 박웅규(b.1987)의 것이다.
사실 작가 박웅규가 그린 벌레, 내장, 흉 같은 것은 아무런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그의 이미지로 먼저 접한다면 젊은 작가가 재해석한 종교화처럼 보여진다. 그림들을 포장한 형식이 귀한 불교 괘불이나 조선시대 신분 높은 이의 초상화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한 형식이 담고 있는 내용물이 벌레이고, 내장이고, 흉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보는 이의 머릿속에는 혐오의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성스러운 형식과 혐오스러운 내용물과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은 우리에게 부메랑같이 하나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왜
나는 그것을 징그러워 하는 것일까.
<Dummy No. 105~108>
2. 작가 박웅규의 홈페이지 작업 노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언제나 부정한 것, 부정한 상황, 부정한 감정 같은 것들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인다. (중략)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내가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분별하고 있는지 이다.
작품 <사천왕>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Dummy>시리즈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벌레, 내장, 흉, 가래를 종교에서 영향 받은 수호자, 사천왕의 형식으로 총 108점을 그려냈고, 그동안의 작품들을 갈무리하는 작업으로써 마지막 네 점 <Dummy
No. 105~108>의 이 <사천왕>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그럼 다시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는 그 질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징그러워 하는 것, 혐오스러워 하는 것들은 그것이 원래 징그러운
존재, 혐오스러운 존재라서 마땅히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중립적인 그러한 것들을 내가 어떤 편견과 선입견으로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학습되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작가 박웅규의 작품<사천왕>은 그런 작품이다. ‘혐오라는 감정’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 말이다. 세로 182.5cm, 가로 62.5cm로 큰 크기의 종이에 어떠한 미화도
비하도 없이 세밀하게 그려진 혐오의 대상을 작품으로 보고 있노라면, 무슨 이유로 그런 것들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폭력과도 같은 혐오의 감정을 나는 너무도 쉽게 휘두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혐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3. 어느 누군가는 지금의 시대를 혐오의 시대라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보단, 누군가를 혐오하고 악플 달고 욕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기 자신을 한번도 사랑스럽다고 느껴본 적 없던
여자 주인공이 자기 혐오로 가득찬 남자 주인공을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면서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들로부터
해방하게 되는 그 드라마 마지막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나 미쳤나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마음에 혐오와 부정이 가득한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과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서, 느낄게 사랑밖에 없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Love wins all.
<Dummy No. 105~108>클로즈업
[부록] 작가 박웅규의 작품 <사천왕>은 《제 23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전시중이다. 이번 송은미술대상전에는 심사에 통과한 작가 20인의 작품이 전시중이며, 전시 기간중에 최종 심사를 거쳐 대상 1인이 선정된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박웅규, 이우성, 박형진의 작품이 눈에 띄었는데 누가 대상 1인으로 뽑힐지 결과가
기대되는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