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아랍어로 도시를 뜻하는 "메디나"는 지금은 이슬람 도시의 구시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붉은 도시' 라는 별칭 답게 거의 붉은 황토로 지어진 이 도시는 놀랄 만큼 빡빡하게 구성되어있다. 약 백 십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메디나는 여의도 면적의 약 1.3배 크기*이다. 구 시가지 안에서는 2 - 3층 정도의 황토 건물들이 당나귀 한 두마리 지나 갈 넓이의 길을 두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고개를 들면 비슷한 형태의 조각난 하늘이 보인다. 어디를 가나 끝도 없이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투성이이다. 전통적 메디나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사람과 물건들이 아우성 치는 이 성벽을 나서면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도시가 현대화 되어가며 메디나 밖에 여러가지 인프라가 들어서고 신 시가지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 내부와 외부의 구분은 명확하다.
Medina, Marrakech. 2024
마라케시, 그리고 모든 모로코의 전통적 도시는 안과 밖으로 철저하게 구분되며 안쪽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밀도를 자랑한다. 높은 성벽을 쌓아서 도시와 사막의 경계를 확실하게 만들었으며 성벽의 안쪽은 굉장히 밀집되어있다. 익숙하지 않는 여행자에게 좁은 길이 구불구불 끝도 없이 나있는 마라케시의 메디나는 미로같이 복잡하다. 물론 그 안에는 나름의 규칙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에서 알리바바가 밤에 길을 잃지 않도록 문마다 x 자 표시를 해서 지나간 길을 표시했다는 말이 이해가 갈 정도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메디나이다.
이러한 모로코인의 특징은 미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신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혼이 깃들 수 있는 그림, 즉 인물이나 동물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발전한 것이 선과 도형, 색깔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양식이다. 이슬람 건축 어디에서나 이런 정교한 기하학 예술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마치 공간에 얇은 피부를 입히듯 빽빽하게 들어찬 기하학적 패턴 장식은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라고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마라케시의 바히아 궁전(Bahia Palace)은 근대 모로코의 건축미와 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궁전으로 정교한 테셀레이션의 극치를 보여준다. 서구 사회에서는 사막 같은 광활하고 척박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아랍인들에게 빈 공간에 대한 본능적인 경외감, 혹은 두려움이 있었으며 이러한 여백에 대한 공포가 테셀레이션과 이슬람 예술의 근간이라고 해석한다*. 다소 오리엔탈리즘적인 이 시각을 아랍인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하며 이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몇 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람의 종교와 예술철학을 논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다만 그들의 공간, 그리고 안과 밖에 대한 관점이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 때 그릇의 빈 공간으로부터 그것의 기능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처럼* 동양철학에서 여백은 굉장히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여백 자체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그것이 대상과 함께 어우러질 때 전체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의 건축관에서도 이것이 잘 드러나는데, 전통 한옥의 빈 마당은 건물 전체의 미학적 구조를 완성한다. 빈 마당은 햇빛과 바람을 채우는 조형적 요소이며 처마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조형적 공간이다. 또한, 자연과의 조화는 어떤가. 정원이 필요하면 집 안에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 중턱 경치 좋은 곳에 돗자리를 펴는 것, 혹은 그 자연을 최대한 살려 집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 한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자연과 건축의 조화이다. 필연적으로 한국의 공간에서는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기 어렵다. 안에 위치했던 것이 바깥이 되기도 하고, 바깥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 환경의 관점에서 추측해 보자면 이러한 다름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덜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린 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통적 서양 건축에서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타자화 했다면 모로코, 그리고 아랍세계의 건축은 유일신 알라, 그리고 알라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믿음 아래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이미 길을 잃고 걸어다니던 그 시점에서 그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는지에 대해 압도되고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가고자 했던 미술관들은 거의 가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도시구조와 건축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다름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그의 베스트셀러 여행 수필 '여행의 이유' 에서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그것이다. 계획했던대로 이슬람 현대미술에 대한 글은 썼냐고 묻는다면, 애초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건축과 미술은 그것을 창조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라는 간단하고도 절대적인 진리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예술은 필연적으로 환경과 문화, 삶의 상호작용이며, 건축과 공공미술을 사랑하는 이유의 중심에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그것이 저 바다 건너 모로코이든, 옆 동네 모르는 골목길이든 일상에서 탈피하는 경험은 소중하다. 바쁜 일상에 치여 시간이 없더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올해에 꼭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보기를 소망한다. 나처럼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글감을 얻고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