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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민텃밭_Allotment | ARTLECTURE

영국의 시민텃밭_Allotment


/Site-specific / Art-Space/
by 아치
영국의 시민텃밭_Allo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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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영국은 일반 시민들이 지자체로부터 땅을 받아 텃밭을 운영하는 시민텃밭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다. 시민 텃밭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이 시민텃밭이 운영되는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필자 집 앞에는 약 한 평정도 되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다. 재작년 즈음 놀려두기 뭣해서 토마토를 스무 개 정도 심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물은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여름 내내 물 뿌려주고 가지치기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앞 정원에서 보냈었다. 땡볓에 서서 토마토 지지대를 세우고 있노라면 이거 괜히 시작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토마토를 키우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이 있으니, 바로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커플, 조지와 서지이다. 


그들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그 집에 대해 알고있었다. 배트맨의 고담시티와 견줄만큼 우울한 우리 동네에서, 온갖 화초와 잘 관리된 나무들로 뒤덮힌 그 집은 동네에서 유명했다. 빨간 벽돌집의 벽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와 여러 화초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모든 식물들이 건강하게 윤기가 흘렀다. 지금까지 집 앞 정원을 그 정도로 훌륭하게 꾸며둔 집을 본 적이 없으니, 그야말로 빛나는 정원이었다. 처음 동네에 이사온 날부터 그 집이 눈에 들어왔었고, 동네 사람들과 그 집의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조지와 서지의 집 앞, 2023



움직이는 시간대가 달라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아마 우리의 소소한 토마토 농사가 그들의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다. 여느때처럼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토마토들에게 영양제가 섞인 물을 주고있던 참에, 조지와 서지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를 기점으로 몇 번 정도 집 앞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대화 끝에 알게된 것은 그들이 왕년에 가디언지에 나왔을만큼 굉장했던 아마추어 정원사였다는 것과,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allotment (한국말로 하면 시민텃밭, 공공농장 쯤 되겠다)가 있는데 서지가 건강상의 문제로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 요 몇 년 사이 관리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농사와 정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조지는 혹시 주말에 시간이 될 때 와서 공공농장을 한 번 구경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공공농장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두긴 했지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을만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해 거의 포기하고 있던 차에, 그의 제안은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영국의 시민텃밭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조지의 텃밭은 집에서 약 20분 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적어도 열 종류의 각각 다른 장미, 과일나무, 관상용 갈대와 고사리, 여러 이름모를 꽃들과 이국적인 나무들이 자리해 있었고, 텃밭 구석에 위치해 있는 두 개의 유리 온실 속에는 각종 선인장과 호주,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에서 온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물을 채운 항아리들에는 파피루스 같은 습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중간 중간 멋진 쉼터를 만들어 두어 앉아서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간간히 감자, 콩 같은 식물도 보였다.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진 서지가 전혀 정원을 돌보지 못하게되고, 조지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정원은 많이 쇠락했지만 나름의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고, 그들의 말대로 왕년에는 정말 굉장했던 정원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조지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텃밭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조지의 텃밭, 2022



북런던에 위치한 이 시민 텃밭은, 아주 예전에는 농지였다가, 1900년대에는 골프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1차대전이 터지면서 영국의 철도와 유통망이 파괴되어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지역 시민들은 자급자족할 땅이 필요해졌고, 지역의회 골프장을 시민 텃밭으로 내어주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금까지 텃밭이 유지되고 있는데 현재에는약 250여명의 동네 주민들이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텃밭에서  4-6킬로미터 근방에 사는 동네 사람들만 신청할 수 있고, 개인이 분양받을 수 있는 텃밭의 사이즈는 30평 남짓 된다. 지역 자원봉사자가 웨이팅 리스트를 관리하는데, 보통 4-7년정도 후에 자기 차례가 온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번 텃밭을 가지게 되면 그 땅에 작은 창고를 지을 수도 있고, 작물을 기르든 예쁜 관상용 식물을 기르든 터치하지 않는다. 여러 제약이 따라붙긴 하지만 여름에 바베큐를 한다거나 밤에 캠핑하듯이 불도 피우는 것도 허용되고, 그 외에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기에 가드닝과 아웃도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일년에 70파운드 (한화로 12만원 정도)를 내니 영국치고 굉장히 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불시에 땅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검사를 하기 때문에 텃밭을 놀려두거나 관리를 잘 하지 않는다면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Geoff Stearn and his father on his allotment in Valentines Park, Ilford about 1947, Copyright_RHS

 



시민텃밭은 지방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사업으로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근대 시민텃밭의 개념은 180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지방의회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텃밭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법이 제정되었다(Small Holdings and Allotments Act). 아이러니하게도 시민텃밭이 크게 부흥하기 시작한 때는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 중 농산물 수입이 끊기면서였다. 당장 먹고 살 일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버려진 철길, 공원, 사유지등 가리지 않고 시민텃밭으로 바꿔 각 가정이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 할 것을 권장했다. Dig For Victory *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농산물 생산을 권장했고 일반 시민들이 텃밭에서 거의 130만톤에 육박하는 농작물을 생산해냈다고 한다. 전쟁이 종료된 이후 삶이 정상화되고 유통망이 복구되자 시민텃밭은 은퇴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인기를 잃다가, 197,80년대 들어서 유기농 먹거리와 자급자족하는 삶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점차 다시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영국 전역에서 약 330,000 플롯*의 시민텃밭이 운영되고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 대기줄이 4, 5년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Dig For Victory, Copyright_Islington Tribune

 


설명을 해주는 중간 중간에도 조지는 텃밭을 지나치는 다른 텃밭 주인들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10년 이상 텃밭을 관리한 사람들이었다. 이 속에서 그들은 흙과 식물, 경작 도구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친구를 만들고,  식물과 경작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룬다. 그저 텃밭이 아니라 지역 내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것이다. 텃밭을 다 둘러 본 후 조지는 혹시 시간이 된다면 가끔 텃밭에 들러 혼자 하기 힘든 일들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대신에 텃밭 크기가 상당하니 두 구역쯤을 차지해서 심고 싶었던 것들을 심고, 원한다면 정원 일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원 일은 고되지만 받은만큼 주며, 정직하다. 텃밭에 다니면서 날씨와 절기에 민감해지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공기 중에 있는 습기를 느끼고, 내일의 날씨를 예측해보게 되었다. 지난 겨울 동안 간간히 텃밭에 들러 풀을 고르고 가지치기를 하거나 퇴비를 만들었다. 너무 커버린 갈대를 뽑아냈고 그 자리에 콩을 심었다. 겨울에 심은 콩은 이제 꽤 자라서 꽃이 필 때가 되었다. 지금 오는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한 번 텃밭에 가 볼 예정이다. 물을 한껏 빨아들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 콩을 생각하니 요즘에는 비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시민들에게 지역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민텃밭은 영국에 살면서 제일 크게 와닿는 제도 중 하나다. 흙을 밟고 땅을 경작해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수 천, 수 만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생존을 위한 의무이자 권리이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스팔트와 빌딩으로 뒤덮힌 서울같은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구석에 숨어있는 작은 땅을 발견해 기어코 무엇인가를 심고 만다. 결국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이 권리를 어떻게 잘 누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주

* '승리를 위한 경작' 운동, 새마을 운동과 비슷함

*1플롯 (plot) 은 약 500m2로 치환 가능

 

참고 문헌 (영문)

시민 텃밭의 역사: Brief history of allotments – The National Allotment Society – National Society of Allotment and Leisure Gardeners Ltd (nsalg.org.uk)

The history of allotments — Google Arts & Culture

승리를 위한 경작 운동: Dig for Victory (bl.uk)

시민 텃밭의 인기: Interest in allotments soars in England during coronavirus pandemic | Allotments |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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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치_전시 기획도 하고, 작업도 하고, 밭도 갑니다. 공간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