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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1869~1954) : 변화를 향해가는 예술가의 삶 | ARTLECTURE

앙리 마티스 (1869~1954) : 변화를 향해가는 예술가의 삶

-도쿄도미술관 - 앙리 마티스 회고전(Henri Matisse : The Path to Color)-

/World Focus/
by 김현진
앙리 마티스 (1869~1954) : 변화를 향해가는 예술가의 삶
-도쿄도미술관 - 앙리 마티스 회고전(Henri Matisse : The Path to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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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앙리 마티스에 대한 전시 중 가장 대규모라는 전시 소개 글처럼 도쿄도미술관의 이번 전시를 통해 마티스의 활동 초기부터 말년의 방스 성당 작업까지,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후기작이 탄생하기까지 마티스가 거듭했던 실험과 습작, 노력을 한 올 한 올 들여 다 볼 수 있는 전시 구성으로 필자의 편견은 완전히 뒤집혔다.

잠시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에는 꽤 많은 미술관이 있고 몇몇의 미술관은 상당히 큰 규모로 해외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한 기간에만 국립신미술관에서는 루브르 특별전을,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모네와 고갱으로 대표되는 브르타뉴 출신 화가의 전시를, 도쿄도미술관에서는 앙리 마티스의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탄탄한 기획 의도, 다수의 수준 높은 작품들. 일본 사람들은 그림 보러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다른 일정과 동선과 시간이 맞아 앙리 마티스 회고전(Henri Matisse : The Path to Color)에 들렀다. 몇 년 전 니스에서 마티스 미술관을 들른 경험이 있고, 당시 마티스의 작품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잘 알려진 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작가라는 점에서 흥미가 떨어진 부분도 있었고. 작가 특유의 유연한 선으로 그린 드로잉이 상업적 제품에 덧입혀져 한창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선, 선명하고 경쾌한 색상. 니스와 방스에서의 노년. 화가는 즐거운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아닐까 짐작했다. 잘 알려진 예술가라서 더 알고자 찾아보는 일에 게을렀던 걸까. 여러 번 접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작품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앙리 마티스에 대한 전시 중 가장 대규모라는 전시 소개 글처럼 도쿄도미술관의 이번 전시를 통해 마티스의 활동 초기부터 말년의 방스 성당 작업까지,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후기작이 탄생하기까지 마티스가 거듭했던 실험과 습작, 노력을 한 올 한 올 들여 다 볼 수 있는 전시 구성으로 필자의 편견은 완전히 뒤집혔다.


도쿄도미술관의 전시는 잘 알려진 마티스의 후기 화풍을 확인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마티스 특유의 간결한 선이 대형 화폭에 자유자재로 표현되기까지 작업을 뒷받침해 준 무수한 드로잉이 있었고, 회화에서 구성적 요소를 고려하기 위해 조소 작업으로 다양하게 연습했음(Jeannette I~V 1910~1911, The Henriette I~III 1925~1929, The Back I~IV 1909~1930)을 보여주었다. 연대순으로 작가의 실험을 확인함으로써 작업의 변화를 여실히 목격할 수 있었다. 



변화의 도약이 된 시련 속에서의 창작


그의 작업에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점에는 생의 시련도 공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대외적인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 화가를 고립시켰고. 개인적으로도 두 아들의 징병으로 불안과 기다림으로 점철되던 시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창작 밖에 없었다. 창작은 그에게 전쟁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어두운 색조와 엄격한 구도로 그림을 극한까지 파고들었다. 


마티스의 그림에는 창문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14년~1918년 사이 그의 작업에 등장한 창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교환기’ 역할을 한다. 실내가 그가 작업하는 아틀리에 공간이라면 창을 통해 외부 세계로 열려 있음을 표현한다. 창으로 공간의 뒤섞임을 표현하는 시도는 <코리울의 프랑스 창, French Window at Collioure, 1914>에서 한계점까지 나아간다. 창 밖의 풍경을 배제하고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으로 칠함으로써 창의 열림과 닫힘이 불분명해진다. 이 작품은 전쟁을 겪는 외부 세계의 암울한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화가 자신의 내면까지 동시에 대변한다.  



<코리울의 프랑스 창, French Window at Collioure, 1914> ¹



이 시기 마티스는 이미지가 성립되지 않는 극점까지 구성 요소를 제거하거나 감추는 실험적 시도를 진행했다. <코리울의 프랑스 창, French Window at Collioure, 1914>과 함께 <아틀리에의 화가, The painter in His Studio 1916-1917>, <창가의 바이올리니스트, The Violinist at The Window, 1918>등의 작품에서 인물의 얼굴에서 세부 사항을 제거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이러한 배제는 그림에 추상적인 면을 도입시켜 상상의 여지를 증폭시킨다. 



지울수록 확장되는 세계


마티스는 이후에도 표현 수단을 단순화하기 위한 탐구를 지속하는 가운데 1930년대에는 화면에 수정 작업을 남겨 이미지가 숨 쉴 틈을 마련하고 인물이 배경 속에서 유연한 윤곽을 지닐 수 있게 (<꿈, The dream 1935>, <앉아있는 분홍색 누드, seated Pink Nude, 1935~1936>) 하는 실험을 했다. 방스에서의 실내작(1938~1948)에서는 익숙한 사물을 배치하고 일체의 깊이감을 배제하면서 검은색 묘선과 색으로 공간을 분할한다. 이는 하나의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꿈, The dream 1935> ²



안과 밖, 이곳과 저곳을 한 화면에 구성한 이런 시도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캔버스에 캡처하듯 표현하는 대신 영화에서 이미지의 중첩 혹은 빠른 장면 전환으로 공간 이동을 시도하듯, 2차원에서의 공간 이동과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시도에서 관람자의 시선에 대한 배려를 느꼈다며 지나친 착각일까. 캔버스라는 고정된 화면 앞에서 분할된 면과 색, 선을 따라 자유롭게 시선을 옮기고 상상하는 사이 뜻밖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그림의 방을 보며 현실에서의 지난여름 맛본 과일과 창밖 풍경을 떠올리는 식으로 (<노란색과 파란색의 실내, Interior in Yellow and Blue 1946>). 그의 작품 속 방 안에 나란히 그려진 창문과 벽에 걸린 그림은 어느 것이 창인지 그림인지 혼란을 준다 (<커다랗고 붉은 실내, Large Red Interior 1948>). 그 순간 무엇이 창이고 그림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상상인지에 대한 선택권은 관람자에게 온다. 그림을 창으로 소환하고 창을 그림으로 변환시키며 다채로운 상상에 빠져드는 감상의 찰나. 모호함이야말로 마티스의 그림이 건네는 즐거움일 테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실내, Interior in Yellow and Blue 1946> ³



노년에 접어들어 건강 악화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마티스는 작업 방식을 바꿈으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여건이 유명한 오려 붙이기 작업을 탄생시켰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며 오려 붙이기가 자신에게 조소와 같은 의미를 지님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조소 작업을 통해 회화에서의 구성적 요소를 탐구했던 것처럼 오려 붙이기는 그의 작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인생 역작 방스 성당 작업으로 이어졌다. 


필자의 머릿속에 마티스로 대표되던 이미지에 상당한 레퍼런스가 추가되었다. 단숨에 자신의 화풍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지속적인 습작과 꾸준한 탐구의 과정을 거쳤으며 위기와 시련의 순간 몰입과 결단으로 작품에서의 전환과 도약을 시도했다. 어쩌면 당연하고 뻔할 수 있는 이 발견이 용기와 위안을 선사했다. 문득 박보나 작가의 책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에트르)에 쓰인 문장이 떠올랐다.



"어떤 창의적인 한 주를 보냈는가?"



박보나 작가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창의적 시선과 태도를 겸비하기를 바라 질문하지만 미술 작가로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습관처럼 해온 질문이라고 했다.


영상과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탓에 작업실에 머물며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 박보나 작가는 그것이 미술 작가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지속적인 질문으로 예술가적 시선을 고민한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할 때, 글을 쓸 때조차 미술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미래의 작업을 생각한다고. 시선을 바꾸고 영감을 얻기 위해 일상적으로 ‘창의적인 한 주’를 보내려 애쓴다고 했다.



창작의 핵심은 지속과 노력


핵심은 지속과 노력인 것 같다. 예술가 혹은 창작자로 무언가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꾸준히 배우고 연습하며 때로는 극한으로까지 자신을 내몰며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앙리 마티스의 전시를 보며 새삼 감탄했던 부분도 그 지점이다. 커다란 화폭을 완성하기 위해 작은 드로잉으로 밑바탕을 다지고 동일한 대상을 반복적으로 작업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시기마다 엿보였던 새로운 시도와 변혁은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 스스로에게 던졌을 질문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마티스가 말년에 진행한 방스 성당 작업에는 그의 모든 작업이 집대성되어 있다. 전시장에는 성당 작업의 준비 과정부터 완성 후까지, 스케치와 부분 모형, 성당의 전체와 세부 모습을 담은 영상이 전시되고 있었다. 영상에서 아침, 점심, 저녁, 빛에 따라 달라지는 성당 내외부를 보는 사이 벅찬 감동에 차올랐다. 스테인드 글라스, 예수상과 피에타 상, 그 외 여러 주물과 직물 등을 포함하는 그의 작업에서 주변 환경과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 뿐만 아니라 신적인 온화함과 우주의 섭리까지 포옹하려는 듯한 유연하고 넉넉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당 작업에 대해 마티스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I did the chapel with sole intension of expressing myself totally. It gave me the opportunity to express myself in a totality of form and color. The work was a learning process for me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성당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은 형태와 색상에서 총체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작업은 내게 배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이미지가 성립되지 않는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대상을 지워내려 했던 시도와 결단, 이를 통해 캔버스라는 고정된 틀을 너머 무한히 확장되는 이미지를 탄생시킨 마티스. 그는 화가로 활동하는 내내 지속적인 습작과 노력, 탐구와 배움을 통해 창의적인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그렸던 그가 ‘무엇을 더 그려 넣을 것인가’ 대신 ‘무엇을 더 지울 것인가’를 고민했듯 글을 쓰는 필자는 ‘무엇을 더 써넣을 것인가’ 대신 ‘무엇을 더 지울 것인가’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마티스 전시장을 나오며 떠올린 건 예술가의 태도였다. 연결과 확장을 거듭하며 변화를 지속했던 삶. 그 근원에는 자신에게 던졌을 끝없는 창의성에 대한 요구, 창의적인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1. https://en.wikipedia.org/wiki/File:Porte-Fenetre_a_Collioure_1914.jpg

2. 3. 촬영이 허용되는 전시장 내에서 필자가 찍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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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현진 (춤추는 바람)

작은 목소리로 작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은 미약하고 사소한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