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독일에서 태어난 블프강 라이브는 조각과 설치작품을 만든다. 그의 설치 작업은 일회성 작품이 많다. 전시회 이후 사라져 버리는 작품이지만, 영원히 남는 무언가를 연결하는 작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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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는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독일 튀빙겐 의대에 입학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자연과학, 현대적 사고는 물질세계와 논리에 의존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의학 공부와 병원에서 보낸 6년이라는 시간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 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훗날 예술 작품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라이브는 좋은 의사란 어떻게 혈액이 형성되느냐는 지식보다 삶이 무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삶, 인간에 관한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길은 의술이 아닌 예술이라 생각하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런 라이브의 결정에 부모님은 동의하며 지지해 주었다. 라이브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데 부모님은 큰 영향을 주었다. 부모님은 16살이었던 그를 인도, 동남아시아 여행에 데리고 다녔고, 평소 아시아 문화 예술에 관심도 많아 인도 여행에서 그림이나 드로잉 등을 사 오기도 했다. 부모님이 사 온 오백 년 전 인도 작품을 보며, 라이브는 몬드리안 그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행에서 동양 문화를 경험한 라이브는 종교와 철학에도 관심을 보인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독학하고, 불교, 힌두교 철학, 일본 회화, 중국 시를 읽으며 공부한다. 특히 도교 노자에 심취해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노자만큼 영향을 준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한다.(1) 라이브의 작업은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 현대 조각가 브란쿠시의 영향도 받으며,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라이브는 화강암, 대리석, 황동 등 내구성 있는 재료와 부패하기 쉬운 유기 재료들(폴론, 우유, 나무, 쌀)을 연구하고 작품에 사용한다. 우유, 밀랍, 쌀, 꽃가루처럼 단순하지만, 매우 상징적인 유기물질을 사용한다.
Ⓒ MOMA, New York
라이브는 꽃가루 지구 생명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봄 여름이면 독일의 한 외딴 지역에 있는 자기 집 주변 들판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자라는 야생화와 덤불에서 꽃가루를 채취하고 정성껏 모은 꽃가루를 유리병에 넣어 전시하거나 바닥에 직접 채를 쳐서 전시실 안에 노란 꽃밭을 만들기도 한다. 재료는 인위적으로 재배하거나 기르지 않고 자연의 시간과 질서에 따라 채취하기에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 dreamideamachine.com
라이브는 한곳에 모아놓은 펼쳐진 꽃가루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을 선사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름다운 노란색이다. 라이브는 예술이 단순히 시각적인 것, 색, 색채에만 머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노란 꽃가루는 단순히 노란 그림과 같은 풍경이 아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헤이즐럿에서 온 꽃가루>, 2013, 뉴욕 현대 미술관 전시실 5.4 x 6.4미터 ⒸPhoto Jason Mandella
라이브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변하지만,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라이브는 이렇게 말한다. “서양 문화는 겉 보이는 형태가 무언지 보려고 합니다. 반면 오랜 동양 문화는 외적인 것은 다르지만 내적 본질은 같다고 하며 그 본질을 중요하게 여깁니다.”(2)
지난 30년 동안 라이브는 시간의 지속성, 물질에 대한 선택, 그 선택을 통해 우리를 기억, 감각적 즐거움, 사색의 영역으로 이끈다. 그는 자연과 예술, 물질과 정신적인 본질 그사이를 오가며 작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