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함께 감각하기
계급의 유령성, 투명한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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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를 볼 당시 이들의 ‘가이드’가 전시 설명문보다도 지금 시대에 필요한 질문과 담론을 작품에서 생산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가이드는 질문을 던지거나, 적절한 글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관람자의 감상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로 인해 관람자는—작가가 의도한 바와 같이—전시와 작품을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문제를 실제 삶에 투영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쉽게 고루해질 수 있는 ‘영구 소장품’—이 전시는 영국문화원의 영구 소장품 중 동시대 작가의 작품으로 이뤄졌다—의 위치를 한정된 시간에 붙박인,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현실을 위한 유동적이고 생산적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같은 날, 일민 미술관 《DO IT》 전시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옥인 콜렉티브의 「아트 스펙트랄 art spectral」책자[2]를 보게 됐다. 이 책은 리움 《아트스펙트럼 2016》전시를 위해 제작됐는데, 관람 시간의 제약 상 두, 세 챕터만 읽을 수 있었지만 공동의 장안에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위의 인용글도 이 책에 수록되어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옥인 콜렉티브를 알게 된 과정이며, 그들의 다음 전시를 기다렸던 이유이다.
십 년 전만 해도 다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믹스라이스도 그들과 파트너로 작업을 했고, 우정을 나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강제추방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생산업이 약해지며 공장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주 노동자들도 농업, 어업으로 직종이 바뀌면서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힘이 많이 약해졌다. 십 년 전에 세 가지 구호가 있었다. "1. 욕하지 마세요 2. 때리지 마세요. 3. 임금 주세요."
십 년 전에 하던 이야기를 요즘 다시 하고 있다. 길거리에 평범한 트럼프가 너무 많다. 그런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고 있자면 별로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절망적이다. 소수민을 배척하는 건 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 인간은 어떤 지점을 바라보며 가야 하는지, 공동체가 다시 힘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지점이 궁금하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만, 지속성이 중요하다. 믹스라이스도 몇 년간 해오던 MDF페스티벌(마석 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록 페스티벌)을 작년도부터 안 하게 됐다. 모두 흩어져서 행사를 하려면 우리끼리 해야 하는데, 사실 커뮤니티 없이, 소통이 없으면 이 페스티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세대가 달라지고 활동가뿐 아니라 이주민 간에도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커뮤니티 내부 지속성의 문제도 있다. 그런 지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
Okin Collective / 2018 Korea Artist Prize from koreaartistprize on Vimeo.
저희는 처음부터 이 콜렉티브라는 집단이 가지는 속성은 굉장히 임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흩어질 수 있고. 인터뷰할 때마다 ‘옥인 콜렉티브 언제까지 활동할 것 같아요?’ ‘내일도 당장 그만둘 수 있어요’라고 얘기한 적 많아요. 어떤 상황이 올 지 모르고, 그래야만 어떤 집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랬을 때, 왜 사람들은 이런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무리를 이룰까? 혼자일 때보다 더 많은 갈등 속에 있을 수 있는데, 왜 그것들을 유지하려고 하는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미래 사회에 대한 관심, 그것들에 대한 질문이 저희에게는 크고, 또 얘기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장소를 이동하면서 작업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문제에는 보통 대립 지점이 있잖아요. 그 대립점만 보면 답이 나오지 않아요. 그보다는 감각을 바꾸기 위해 놀이, 유머가 작품 속에 들어가요. 이건 우리 작품에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어떤 철학자는 이걸 세속화라고 하는데, 성스러운 것들을 세속화시키면서 만들어내는 또 다른 접근. 놀이라는 부분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작업에서도 이런 요소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남의 문제, 저런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를 내가 바라본다라는 객관적인 시점이 아니라 나도 그 안에서 그 문제를 감각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그녀(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 교육받은 계급의 일원이라고. 우리가 겪은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라고. 우리는 이런 현실을 마음속 깊숙이 담아두는 데 실패해 왔다고.❞ [7]
[1] 올해의 작가상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는 옥인 콜렉티브 소개글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2009년 결성)는 종로구 옥인 아파트의 철거를 계기로 형성된 작가 그룹이다. 개발 중인 도시 내에서 대면하게 되는 사회적 문제를 공동체와 개인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관찰하며, 영상과 퍼포먼스,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공동체 내외부의 관객과 조우해왔다. 옥인 콜렉티브는 철거 중인 아파트에 남겨진 주민들과 함께 상영회, 전시, 콘서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기타 회사 콜트콜텍에서 부당해고당한 노동자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재난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위험사회를 풍자하는 체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실행된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틀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개입한다. 미디어 속에서 단순화된 관계와 상황에 내포된 양가적이고 중층적인 사람들의 감정, 태도, 상황을 노출시켜, 근대 도시에서 공동체와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개인과 개인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 연대의 의미와 한계 모두를 다룬다. [2] 「아트 스펙트랄」 소개글 (출처: 작가 홈페이지) 「아트 스펙트랄」은 ‘사라지는 기술’ 혹은 ‘유령 같은 예술’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업은 ‘아트 스펙트럼’에 대한 메타적 성격을 띤다. 아트 스펙트럼이 동시대 작가들의 역량을 보여주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때 옥인 콜렉티브는 아트 스펙트럼이라는 말 자체를 키워드로 삼아 현재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와 역할, 위치에 대한 생각들을 다루려고 했다. [3] 올해의 작가상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는 믹스라이스 소개글 믹스라이스는 양철모(1977~)와 조지은(1975~) 두 명으로 구성된 미술그룹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인 이주 노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있는 (불법)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나 인권 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조명을 거부해왔으며,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주’의 상황들, 즉 ‘이주’의 흔적과 과정, 그 경로와 결과, 기억에 대한 탐구 등 다층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2006년 이후 마석 가구단지의 이주민 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자생적인 발언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예술가와 이주노동자가 협업하는 공장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들의 관심은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식되어는 식물들의 ‘이주’ 과정을 추적하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강제 ‘이주’된 아시아 근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작업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며 진행 중이다. [4] 'MMCA 아트 토크 : 믹스라이스와의 대화'에는 믹스라이스인 양철모·조지은, 디자인 평론가 박해천, 사회학자이자 시인 심보선이 참여했다. [5] 이 부재는 올해의 작가상 옥인 콜렉티브의 부재 '우리는 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에서 가져왔다. [6] 올해의 작가상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는 'critic' 글. 추천인은 <옥인 콜렉티브>가 이러한 계보를 잇는 예술가들의 소그룹 활동들 중 2010년대 한국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해오면서, 이전 세대들이 지녔던 문제의식이나 형식적 측면에서 확연히 다른 지점들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8년 동안 옥인 콜렉티브가 전개해 온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 활동은 (...) 그 방법론에 있어 기존의 사회 참여적 실천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7]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이후 출판사, 25쪽.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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