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rb-red heart 5, 145.5×112.cm, oil ink on canvas, 2020
“예술이 다사다난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이 말이 꽤 자주 떠오르는 요즘, 인간에 대한 보호와 고통, 불안으로부터의 회복을 상징하는 작업을 하는 오윤석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작업실 전경
Q. 작가님께서 최근까지 해오신 작업 Herb 시리즈는 인간의 불안과 고통 이로 인해 야기된 여러 다면적 문제들의 치유라는 하나의 명제를 갖고 있는데,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우리가 마주한 삶의 내면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볼 수 없거나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고통, 갈등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유전인자처럼요.
저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 억누르고 잠재워 버린 부정한 감정의 기억들을 해방시키고, 유연한 본성을 찾아가게 하고자 합니다.
인간 마음의 원(怨)과 한(恨)의 실체인 마음의 병을 마주하고 꽃, 약초, 텍스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회복과 치유를 바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작품 속의 감정은 기억으로 연결됩니다.
저의 초기 작업은 은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정화하다>, <소통하다> 였죠. 이미 그때부터 불안과 고통, 갈등으로부터 세상을 정화하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저의 내면의 부정한 기억도 많이 해소됨을 느꼈습니다.
Hidden memories–260, 109.5×79cm×10, paper, 2014-2022
Hidden memories–260, 109.5×79cm×10, paper, 2014-2022
Q. 그렇다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A. 저의 작업에는 강렬한 신탁적 존재가 서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특정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살면서 찾게 되는 모든 영적인 것을 아우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저를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긴장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작품에 반영하죠.
저의 작업은 확실히 슬픔과 상처, 위안과 위로 등을 통해 끝없이 침잠합니다. 하지만 그 침잠은 오히려 진취적이며 작품 속 생동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herb-red heart 8, 120×120cm, ink, canvas on panel, 2021
herb-red heart 7, 120×120cm, ink, canvas on panel, 2021
그리고 지금의 Herb 시리즈로 확장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 속 다양한 심리적 경험들은 내면 깊이 끊임없이 축적되고 그 축적된 이미지들은 화면 가득 가시적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캔버스의 표면에 작가는 불안과 공포가 치유되기를 바라며 한호흡, 한호흡 강렬한 붓질을 한다.-
Hidden memories-월인천강지곡, 210×55cm, paper, ink, 2017
detail
Q. 인간의 불안한 감정, 내적 갈등 등을 줄곧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는데,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A. 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그것을 담아낸 작품들이 제 자신과 감상자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정적 기억이 있으며, 갈등과 고통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자각시키고, 혼자만이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작업이 그 불안정한 감정의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면, 우리의 부정적 기억들도 평온한 상태로 융화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Hidden Memories-text 1802, 114×82.5cm, ink on paper, 2018
Q. 텍스트를 필사하거나 오리거나 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을 하시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인간의 DNA 속 감정의 덩어리, 응어리 등 각자의 내면에 해소되지 못한 불안한 감각들을 해소하기 위해 텍스트의 필사라는 조형적 변형을 통해 각각의 파편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서사를 생성하고자 했습니다.
텍스트의 레이어가 늘어날수록 그 공간의 깊이는 확장되고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부정한 기억들이 해소되는 되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구현된 이미지보다 (칼로) 오려내고 다시 꼬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을 더욱 중요시합니다. 여기서 과정이란 ‘염원’이 담긴 구도자의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과정은 몰입과 집중력의 결정체이며,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herb-peace please 4, 120×120cm, Acrylic, ink, linen on panel, 2022
Q. 일상생활에서 작가님만의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는 방법은 있으신가요?
A. 앞에서 작업의 과정을 언급했듯이 과정을 통해 부정적 감정을 승화시킵니다. 저는 작업과 제 삶을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활자들의 사경은 치유의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적 행위로서의 불교 경전의 사경이 아니라 하나의 저의 루틴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 작업을 통해 저 또한 정화되거나 치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직업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잠시 비워 낸 삶의 여백을 채우기도 합니다. 변화하는 세계를 살아내면서 저도, 작품도 서서히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을 열어 보이며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제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잇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전시전경
-너무나 빠르고 복잡한 현대문명,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의 복잡한 정신적 심상들, 하지만 오윤석의 작품 앞에서는 무한한 쉼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감상자와의 공명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흡입력이 그런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Q. 마지막으로 감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저의 작업을 너무 어렵지 않게 봐 주셨으면 해요.(웃음) 감상자 모두가 제각각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작가로서는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다만,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익숙해져 있거나 혹은 두려워 외면하고 있던 기억 또는 감정들이 있다면 저의 작업들이 그 실체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주길 그리고 그것이 위안과 치유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인간 삶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그의 깊은 공감은 우리에게 평온함과 위안을 주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오윤석작가의 Herb 시리즈는 처절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가 바라는 대칭의 질서가 획득되어 더욱 깊어질 공명의 날들을 기대하며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오윤석(b.1971)은 인간본성에 대한 물음을 통해 예술적 치유라는 주제를 가지고 현재까지 작업하고 있다. 2003-2004년에 자신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은(銀)과 나’ 시리즈로 대전에서 3회 개인전을 열었고, 2007-2017년까지 동양의 직관과 영적인 사유체계에 대한 관심이 종교적 경전들과 금석문, 산수화 등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현대적 조형언어로 시각화 시켜 종이나 천을 오리고 빛을 통과 시켜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표현한 설치작업과 인간의 기억 속에 감춰진 내‧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갈등, 공포, 두려움 등 그것들로 기인된 여러 가지 다면성을 치유할 수 있는 바이오-디지털 코드 작업으로 서울, 대전, 청주, 부산, 홍성, 북경에서 20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덴마크 실케보르그 바드 아트센터에서 ⟪6인의 한국현대미술가들 / 2005⟫, 대전시립미술관의 ⟪프로젝트 대전 2014 : 더 브레인⟫, 2016 부산비엔날레⟪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 : 기호와 오브제, 이응노미술관, 대전 / 2017⟫전 등 국내외 다수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12년 제1회 고암미술상을 수상했다. |